한국의 대표적 석학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이어령이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디지로그(Digilog)’를 표방하고 나섰다. 디지로그란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의 정서가 한데 어우러진 문화 코드를 뜻한다. 이어령은 디지털 기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감 넘치는 아날로그 문화를 접목함으로써, 한국이 후기 정보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리라고 설파한다.

사실, 기존 디지털 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날로그적 감수성에 대한 회귀 내지는 접합이 시도되어왔다는 것이 그리 새삼스러운 발견일 수는 없다. <디지로그>(생각의나무)에 수록된 원고도 중앙일보에 2006년 1월 한 달간 매일 연재된 신년 에세이를 보완해 다시 묶은 것으로, 단기간 생산된 글들인지라 호흡이 다소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로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적지 않은 것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 전반에 대한 이어령의 해박함과 연륜에 기댄 바가 크다. 즉 오늘날의 디지털 문화와 필자의 풍부한 경험을 어떻게 접목시켜 풀어놓는가에 대한 관심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책을 읽으면 그러한 기대는 상당 부분 충족된다. 한국의 음식 문화를 미디어와 매끄럽게 연결시키는 도입부가 그러하다. 이어령은 청년 시절 한국말에서 유난히 ‘먹는다’는 말이 많은 것에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이를 한국 문화의 가난함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곧 “한국인이 먹는 것에 집착했던 이유는 어떤 미디어도 먹는 것만큼 강력한 소통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설파하며 음식 문화에 내재된 힘을 파헤친다. 예컨대 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돌맞이 시루떡이나 고사떡을 돌리는 행위는 애경사를 넌지시 알리는 매체, 즉 미디어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가정사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 흉이 되지만, 맛있는 떡을 매개로 퍼져나간 소식은 덕담 속에 마을 전체로 은은하게 퍼져 나간다. 이밖에 제사 음식은 가족뿐 아니라 죽은 자와 소통하는 수퍼 미디어가 된다거나, 한솥밥을 먹는다는 말 역시 끈적끈적한 공동체 의식의 발현이라는 발언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어령은 과거처럼 미디어(음식)를 통해 정이 오가는 문화를 디지털 문화 속에 심자고 주장하면서, 시루떡에 묻은 떡고물로 오늘날 한국의 블로그 문화를 설명하기도 한다. 해외 블로거들이 대개 텍스트를 기반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비해, 한국의 블로거는 ‘떡고물’이 풍부하게 묻은 복합 콘텐츠, 즉 사진, 동영상, 음악, 이모티콘이 풍부하게 어우러진 감성적이며 인간적인 콘텐츠로 블로그를 꾸민다는 것이다. 뒤이어 그는 정보(情報)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정(情)을 알리는(報) 것’이 되지 않겠느냐며, 정보기술 속에 담긴 정과 믿음의 복원을 주장한다.

이밖에도 젓가락 문화를 비롯해 쌀밥 문화, 김치 문화, 나물 문화, 비빔밥 문화, 부대찌개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식과 관련 문화를 매개로 현란하게 풀어내는 이어령의 입담이 쉼 없이 펼쳐진다. 1988년부터 컴퓨터를 다루기 시작했다는 그의 연구실에는 3만여 권의 책과 데스크톱 컴퓨터 3대, 노트북 컴퓨터 3대, 태블릿 PC 한 대, 2대의 스캐너가 갖춰져 있고, 이를 모두 직접 운용해 자료를 모으고 정리한다고 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망설임이 없는 노학자의 열정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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