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틀샘터/ 2001년 1월]
장욱진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가족, 집, 나무, 해와 달, 가축들의 형태는 아이들이 그린 듯, 쓱 칠하고 그린 붓질로 이뤄져 있어 `예술이라면 뭔가 난해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하고 긴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심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덩치가 작고, 묘사가 단순하다고 그의 그림을 가벼이 평가할 수는 없겠지요. 세계를 손바닥만 한 종이 위에 눌러 담았다고 했을 때, 그 압축된 세계의 밀도라는 건 아마 1:1의 비율로 그린 그림보다 더 크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장욱진이 작은 그림을 고집한 것도 아마 그러한 밀도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첫 번째로 소개할 그림은 장욱진이 종군화가로 활동했던 1951년의 `자화상`입니다. 뒤에 소개될 그림 대부분에서 등장하는 가족이나 집의 모습도 이 작품 속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길동무는 검은 개 한 마리뿐이고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전업 작가로 걸어온 길과, 또 가야할 앞으로의 먼 길...... 인적 없는 황금 들판 사이로 난 황톳길을 따라 걷고 있는 작가의 모습은, 지친 다리를 쉬며 한숨 돌리는 것 같기도 하고, 끊어진 길 앞에 망연자실 서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연미복을 입고 실크햇과 우산을 손에 들고, 붉은 길 위에 서 있는 당당한 모습 뒤로 쓸쓸함이 엿보입니다.

그래도 길이 끝나는 곳에는 늘 작가를 기다려주는 풍경이 있었습니다. 마을 한 가운데 서 있는 둥글고 푸른 나무, 그 위에 까딱거리고 있는 까치, 신비롭게 공존하는 해와 달, 어슬렁거리는 엄마 소와 아기 소, 촐랑거리며 뛰노는 강아지, 그리고 그 익숙한 풍경 사이에 드문드문 서 있는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이들은 언뜻 보기에는 자유분방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 같지만, 각 요소간의 균형이 세심하게 계산되어 미묘한 대칭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77년의 작품 `나무와 까치`를 예로 들면, 흰 나무를 중심으로 화면이 좌우 대칭을 이룹니다. 왼편 하늘에는 붉은 해, 오른편 하늘에는 푸른 달이 떠 있는 것이 그러하고, 화면 아래 왼쪽의 정자와 오른쪽의 원두막이 서로 짝을 이루는 것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칭성은 다른 작품에서도 거의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으로, `서로 다르지만 한 쌍인 것`을 병존시키며 작은 화폭 안에 세계를 축약해서 담게 되는 것이죠.

또한 장욱진의 그림 속에서 유독 집이라는 소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전업 작가로 생활하면서 경제적인 면에서는 변변한 가장 노릇을 할 수 없었던 작가가, 비록 그림이긴 하지만 가족들을 위해 아기자기한 정경이 있는 집을 만들어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집 속의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이 집 그림을 그릴 때 그러하듯, 벽이 없는 저 너머에서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앉아있는데, 간혹 벽을 그릴 때면 꼭 문 앞에 사람들을 모아놓아 빈집이 아님을 확인시키는 듯한 모습도 특이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유작이 된 1990년 작품 `밤과 노인`을 보면, 어두운 언덕 위에 쓸쓸히 서 있는 텅 빈 집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승천하는 듯 지면에서 떠오른 노인과, 놀란 듯 입을 크게 벌리고 달려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아마도 작가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게 아닐까요.

그의 작품 중 194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초까지의 작품들은 앞에 소개한 `자화상`의 경우처럼 다소 두터운 질감으로 마무리한 것이 눈에 띄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물감을 기름에 엷게 풀어 채색하는 기법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유화 물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담백한 표현 기법을 통해 토속적인 정경을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묘사한 장욱진의 그림을 보다보면, 잔잔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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