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14. 2001 | 사람들이 미디어아트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중적이다. 더 이상 새롭게 보여줄 것이 없는 예술을 대신하는 대안적 예술이라는 긍정적 시각과, 현란한 형식이 눈길을 끌뿐이라는 비판이 교차한다. 신촌 쌈지스페이스에서 6월 20일까지 열리는 'Pick & Pick - 불가능한 미디어전'은 미디어를 매체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스스로 말하는 긍정과 비판의 시각을 다뤘다.
이번 전시는 쌈지스페이스가 중진 미디어아트 작가 홍성민을 참여작가로 1차 선정하고, 다시 그가 동료 및 후배작가들을 추천해 함께 전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을 통해 계원조형예술대학과 한국종합예술학교 미술원 출신 작가들, 후배 작가 서현석이 추천한 외국작가들을 포함, 총 12명의 미디어아트 작가가 전시에 참여했다.
미디어아트에 대한 찬반양론 엇갈려
작가들은 이번 전시에서 미디어아트를 이용해 원본과 모사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예를 들어 마유미 레이크는 'Mimicking Series'에서 접히고 갈라진 신체 일부를 클로즈업한 동영상을 보여주며 성기가 연상되게끔 교묘히 조장한다. 가짜임을 알면서도 관람자의 시선은 화면을 가득 메운 살덩어리 속으로 빨려든다. 탄 핀핀의 'Lurve Me'에서는 거대한 손이 바비 인형의 옷을 벗기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비춘다. 인형놀이의 형식을 빌린 영상에 음향효과가 첨가되면서 성적 환상이 극대화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다룬 미디어아트는 인간의 기억이나 생명처럼 관념적인 대상도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정성윤의 웹아트 'Memory Installation'과 'Love Letter'는 손에 잡히지 않는 기억, 감정 등 실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시각화했다. 또한 구성규는 'Text to me Text to you'에서 벽에 비친 텍스트가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해 움직이는 인터랙티브 작업으로 가상의 디지털 생명체를 만들었다.
위에서 예시한 작품들이 미디어아트의 가능성을 보여한다면, 일부 작가들은 최근 몇 년간 유행처럼 번진 일련의 미디어아트 전시를 비판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김연용의 'Video Tape Work'다. 이 작품에서 김연용은 8분여에 걸쳐 비디오 테이프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장면을 단조롭게 보여준다. 완전히 해체돼 쓸 수 없게 된 비디오 테이프는 더 이상 '새로움'이라는 시각적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미디어아트의 죽음을 상징한다.
쌈지스페이스 관장 김홍희씨는 "기존의 페인팅이나 조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개념이 미디어 예술의 탄생을 촉발했듯, 미디어가 담아내지 못하는 새로운 컨텐츠가 '미디어를 초월하는(beyond media)' 또다른 예술을 낳을 것"이라며 '불가능한 미디어'란 전시명을 붙이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중견작가와 후배작가가 함께 전시하는 기획전 형식의 'Pick & Pick'전은 2001년 한 해 동안 네 번 더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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