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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향한 대장정의 삶 - 피에르 신부

by 야옹서가 2001. 6. 12.

June 12. 2001 | 프랑스에서 매년 실시하는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인' 설문조사에서 8년 간 일곱 차례나 1위에 오를 정도로 사랑 받는 사람이 있다. 전세계 44개국 350여 곳에서 활동중인 빈민 구호 공동체 '엠마우스'의 창시자 피에르 신부(90)가 그 주인공이다. 사제의 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인종탄압에 맞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고, 종전 후에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가 빈민 구호 운동가가 된 피에르 신부. 그가 쓴 자전적인 기록《단순한 기쁨》(백선희 옮김, 마음산책) 속에 드러나는 삶의 궤적은 실천하는 휴머니스트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훗날 피에르 신부로 불리게 될 앙리 그루에스는 1912년 프랑스 리옹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 프란체스코를 본받아 안정된 미래를 버리고 19세에 카푸친 수도원으로 들어간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가 된다. 게슈타포에게 쫓기는 유대인과 함께 목숨을 걸고 스위스 국경을 넘었고, 피신 중인 유대인에게 신발을 벗어주고 맨발로 눈길을 걸어 돌아가기도 했다. 이즈음 신변보호를 위해 썼던 가명 중 하나인 '피에르'가 그의 새 이름이 됐다.

종전 후에는 정치적인 힘으로 사회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그에게 있어 정치인이란, 누구에게서 돈을 얻어내어 재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곧이어 피에르 신부는 직접 소외된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1949년 뇌이-플레장스에 세워진 빈민 구호 공동체 '엠마우스'가 그 시작이었다.

엠마우스-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보금자리
'엠마우스'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엠마오의 순례자 이야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두 순례자가 초라한 행색의 예수에게 쉴 곳과 음식을 대접했듯이, 피에르 신부는 전쟁으로 비참해진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피에르 신부를 찾아온 사람들은 내면의 고통 때문에 자기 자신조차 사랑할 수 없는 '상처 입은 독수리들'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물질적 도움이 아니라 '나는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는 믿음이었다.

그래서 '엠마우스'는 자활공동체에 가까운 성격을 띠게 됐다. 피에르 신부는 엠마우스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자급자족의 원칙을 지키도록 해서 땀과 노동의 가치를 일깨웠다. 거둬들인 것은 똑같이 나누게 했고, 자신보다 더 비참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동안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깨닫도록 했다.

엠마우스를 찾아온 첫 번째 방문자는 난봉꾼 아버지를 죽이고 감옥에 간 동안 가정이 붕괴돼 자살을 기도한 남자였다. 절망에 빠져 도움을 구하는 그에게 피에르 신부는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대신,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집 짓는 일을 도와달라는 말로 그를 놀라게 했다. 그는 나중에 피에르 신부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신부님께서 제게 돈이든 집이든 일이든 그저 베푸셨다면 아마도 저는 다시 자살을 시도했을 겁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살아갈 방편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피에르 신부의 노력은 1954년 겨울,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얻는다. 집세가 밀려 거리로 쫓겨난 노파가 동사체로 발견됐고, 피에르 신부가 이 비참한 현실을 언론에 호소한 것이다. 곧 프랑스 전역에서 노숙자 문제와 실업문제가 부각됐고, 극적으로 100억 프랑의 주택건설자금 대출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때의 상황을 그린 영화 '겨울 54'는 1989년 세자르 영화상을 수상할 만큼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가난하고 소외된 삶을 변화시키는 꿈
피에르 신부의 투쟁대상은 프랑스 내의 도시빈민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피에르 신부는 인류의 빈곤, 실업, 사회의 부패 등 인간을 위협하는 사회악에 맞서는 것이야말로 평화를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기심이나 민족 우월주의를 내세워 타인을 배척하는 데서 생기는 문제들, 예컨대 인종차별주의와 불법 이민에 대한 비인도적 대응 역시 피에르 신부가 박애주의의 이름으로 반대해 온 대상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라고 사르트르는 썼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반대라고 확신한다. 타인들과 단절된 자기 자신이야말로 지옥이다"라고 한 피에르 신부의 말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단순한 기쁨을 되새기게 한다. 사랑으로 해방을 이룰 수 있다는 그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사유를 고스란히 실천으로 옮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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