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05. 2001
| 일반적으로 책이라고 하면 사각형의 형태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북아티스트 최영주씨의 생각은 다르다. 최씨는 책이라고 하면 손안의 예술, 접촉의 오브제, 만질 수 있는 즐거움, 작가와 독자와의 의사 소통의 매개물, 공간과 순간의 연속성,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담은 컨테이너 등을 떠올린다. 북아트의 세계는 이처럼 다양하다.

지난 5월 23일부터 29일까지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는 독립된 예술 장르의 관점에서 북아트에 접근한 최영주씨의 '이런 books'전이 열렸다. 이 전시에는 최 씨가 1998년 영국의 캠버웰 칼리지 오브 아트 대학원에서 북아트를 공부하면서 제작했던 작품과 한국 전래동요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함께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최씨는 북아트에서 이야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직접 책장을 넘겨보는 재미란 이야기의 재미와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북아트로서의 책은 '오브제로서의 책'과 '손에 잡고 넘기면서 보는 책'으로 나뉘는데 제 작업은 후자에 속해요. 직접 펼쳐보는 재미가 있고, 이야기가 중심이 되니까요. 유학을 가게 된 것도, '다른 사람들의 일만 해주다가 내 책은 언제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제 책에서는 이야기가 중요하거든요."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가 책의 형태로 바뀌어
이런 이야기성은 최씨의 작업에서 전반적으로 만날 수 있다. 영국 유학시절에도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물에 대한 인상을 흘리지 않고 책으로 만들었다. 이방인의 눈으로 본 런던은 온갖 이야기가 가득한 아이디어의 원천이었다. 11월에 피는 장미도, 12시 15분에 벨을 울리는 빅벤도, 심지어는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빨간 2층 버스와 우체통, 전화부스도 최영주씨의 눈에 사로잡히면 작품의 소재가 됐다.

"전 복잡하고 개념적인 게 맞지가 않아요. 그래서 생각난 걸 그대로 책으로 옮기는 작업이 대부분이에요. 이야기의 구조가 책의 짜임새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고요."

예컨대 《Winter, Covent Garden》 는 유학생활 중 코벤트 가든에서 군밤장수를 발견하고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군밤을 구워주시던 추억을 떠올려 책으로 만들었다. 군밤 껍질을 까듯 상자를 열고, 순서대로 종이를 '까' 나가면 맨 마지막엔 얇은 철망 아래 앙증맞은 군밤 하나가 놓여있다. 이 책을 영어로 만든 이유도 이야기의 재미와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이 영어로 된 것도 이유가 있어요. 영어랑 한국어가 어순이 다르잖아요. 영어로 하면, 한 장씩 종이를 펼치면서 내용을 조금씩 볼 수 있게 하는 책 형식에 맞는데, 이걸 한국말로 바꾸면 미리 내용이 중간에 나와버려서 재미가 없거든요."

중고 에그컵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11 Nursery Rhymes of Egg》는 글자로 된 계란이 에그컵 위에 올라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투명필름에 인쇄한 에그컵 사진과 영국 전래 동요를 번갈아 제본했다.

"에그컵 모양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작한 거에요. 책을 만들고 나서 담을 상자를 찾다가 재래시장에서 상표 없이 파는 계란 상자를 발견했어요. 그런데 상자만 따로 팔지 않아 계란을 얼마나 사먹었는지 몰라요."

이처럼 만드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덕분에 재미있는 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 《11 Nursery Rhymes of Egg》는 실제 계란을 깨듯 점선을 뜯어 밀봉된 표지를 열 수 있고, 책장을 넘길수록 동요가 짧아져 계란을 먹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최영주씨는 최근 책을 펼치면 동시가 적힌 종이가 꽃처럼 활짝 펼쳐지는 《아름다운 책이 피었습니다》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시작하는 동요를 소재로 삼은 《원숭이와 백두산》 등 한국의 전래 동요나 동시를 입체적으로 묶은 책을 만들고 있다. 또한 런던 유학 중에 만들었던 아트북 중에서 11월에 피는 장미에 얽힌 사연을 담은 《The Roses Bloom in The Corner of The Backyard》는 판형을 늘리고 한국어로 번역, 그림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최영주 씨의 아트북 <뒤뜰에 장미가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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