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부커스/ 2001. 6. 2]
  '만드는 사진'이란 개념을 도입하면서 사진과 순수예술의 간극을 좁혀온 사진가 구본창의 개인전이 6월 24일까지 로댕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개인전에는 자기성찰을 담은 초기작 <열두 번의 한숨>(1985)부터 추상회화에 가까운 최근작 <자연의 연필>(2001) 연작까지 모두 40점의 작품과 싱글 채널 비디오 <샘>(1997)이 전시된다.

형식에 대한 과감한 실험, '만드는 사진'
사진이 오랫동안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사진이 현실세계의 단순복제에 그친다는 인식 때문이고, 두 번째는 필름 원본이 있으면 얼마든지 복수 제작이 가능하므로 희소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한국 현대사진사에서 구본창의 사진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는 사진에 에디션을 표시하고 사인해 작품에 희소성을 부여했고, 기성품 대신 손수 제작한 인화지를 사용하는 등 실험을 통해 사진을 순수예술과 대등한 자리로 끌어올렸다.

1985년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구본창은 첫 번째 연작 <열두 번의 한숨>을 발표했다. 서로 무관한 듯한 여러 장의 사진을 함께 배치해 한 작품을 구성하는 형식은, 한 장의 사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연속적인 의식의 흐름을 보여준다. 피를 암시하는 붉은빛과 우울한 푸른빛이 충돌하는 폴라로이드 사진 연작 <열두 번의 한숨>이 암울한 내면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자화상이라면, 뒤이어 제작된 흑백사진 연작인 <긴 오후의 미행>(1985-1990)은 일상적인 이미지 속에 숨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초기작에서 드러난 인간 존재에 대한 그의 의식은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 형식에 대한 실험도 보다 과감해지면서 이른바 '만드는 사진'이 등장한다. <태초에>(1991-1998) 연작에서 여러 장의 인화지를 재봉질로 연결한 인체 사진, 감광유제를 바른 한지에 곤충 사진을 인화한 <굿바이 파라다이스>(1993) 연작, 포토그램 기법을 사용한 초현실적인 느낌의 <굿바이 파라다이스-블루>(1993)가 그 예다. 이 시기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바늘을 이용한 구멍뚫기나 붉은 얼룩은 내면의 상처와 그 치유에 대한 작가의 의식을 반영한다. 한편 1995년의 <숨> 연작은 비슷한 시기의 다른 작품과 달리 형식적인 면에 손대지 않음으로써, 역으로 관람자가 '유한한 삶'이란 숙명을 지닌 피사체에 집중하도록 한다.


사진으로 소멸의 극복을 꿈꾼다
구본창의 사진은 199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자연이라는 캔버스 위에 그린 담백한 추상회화를 연상시킨다. 벽에 남은 먼지의 흔적은 <시간의 그림>(1998)이, 흰 벽에 남은 담쟁이덩굴의 자취는 <화이트>(1999) 연작이 됐다. 쓰러져 누운 풀 위에 쌓인 눈을 찍은 최근작 <눈>(2001)이나 떨어진 솔잎을 찍은 <자연의 연필>(2001) 등, 사물의 특정 부분을 클로즈업한 사진은 작가의 관조적인 경향을 반영한다. 인화지의 테두리를 칼로 반듯이 자르지 않고 손으로 불규칙하게 뜯어내 마무리한 사진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이다. 구본창은 끊임없이 자기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던 혼돈의 시간을 지나 자연 속에서 평온을 찾았다. 그의 카메라 속에 사로잡힌 피사체는 셔터가 열렸다 닫히는 짧은 순간, 시간의 지배를 벗어나 영원한 삶을 얻는다. 사진을 통해 소멸에 대한 극복을 꿈꾸는 최근 작품 속에서 그가 찾는 '파라다이스'의 미래상을 짐작할 수 있다.


본 전시의 개관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월요일 휴관). 문의전화 02-2259-7781.

사진작가 구본창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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