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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인형연극으로 되살아난 괴테의 숨은 걸작 ‘우어파우스트’

by 야옹서가 2001. 10. 18.

 Oct. 18. 2001
| 상징성과 환상성을 강조한 블랙테아터 기법, 줄인형극, 그림자극, 애니메이션 기법 등 복합적인 기법의 ‘인형연극’ 장르를 선보여온 극단 그림연극의 여섯 번째 작품 ‘우어파우스트’(Urfaust)가 10월 28일까지 김동수 플레이하우스에서 공연된다. 대문호 괴테의 원숙한 역량이 유감 없이 발휘된 《파우스트》 2부작이 빛과 어둠을 오가며 선을 지향하는 인간의 의지를 형상화했다면, 혈기 넘치는 20대의 괴테가 쓴 초고 《우어파우스트》는 삶의 참된 의미, ‘사랑’의 발견에 무게중심을 뒀다. 연극 ‘우어파우스트’는 이 《우어파우스트》에 괴테가 즐겨봤다는 줄인형극 ‘닥터 파우스트’를 참고해 재해석한 것이다.

다양한 매체 이용한 ‘시각적 연극’ 시도 돋보여
극단 그림연극의 ‘우어파우스트’는 배우의 연극 연기는 물론 인형, 마스크와 같은 사물(material)을 표현수단으로 가져와 관람자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들이 말하는 ‘인형연극’은 단순히 인형을 극 속에 도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배우의 연기와 인형, 조형예술이 어우러진 새로운 연극예술을 의미한다. 예컨대 극의 도입부분에서 늙은 파우스트가 등장하는 장면은 블랙테아터 기법으로 마치 유령이 등장한 듯하다. 블랙라이트 조명을 받아 푸르스름한 흰 빛을 발하며 암흑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마스크와 갈구하는 듯한 두 손은 파우스트의 고뇌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연기자가 얼굴에 마스크를 쓰는 대신, 검은 옷을 입고 손에 마스크를 씌워 움직이면서 얼굴과 손이 서로 다른 몸에 붙은 지체인양 너울너울 움직이며 밀쳐냈다 합치는 모습은 초현실적인 느낌을 증폭시킨다. 파우스트가 정령을 불러내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에서는 흰 배경에 애니메이션 영상이 투사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독특한 형식미는 파우스트의 상대역 마가레테를 줄인형으로 설정한 장면에서도 돋보인다. 마가레테는 파우스트의 입장에서 볼 때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기쁨의 세계를 상징하지만, 마가레테 자신의 주체적 관점에서는 인간과 악마의 계약이라는 운명적 사건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존재다. 청순하고 연약한 소녀 마가레테의 이미지는 외부의 힘에 의해 조종되는 작고 앙증맞은 줄인형의 이미지에 그대로 부합된다. 또한‘우어파우스트’에서는 마가레테의 죽음 뒤 파우스트의 회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원작과 시간 순이 바뀌는데, 마가레테의 죽음에서 삶으로, 다시 죽음으로 되돌아가는 이 순환의 고리는 파우스트로 분한 배우 이현찬이 줄인형 마가레테를 조종하며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음으로써 표현된다. 줄인형과 살아있는 배우의 조합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사랑의 격정에 들뜬 파우스트로 분한 이현찬, 유들유들한 메피스토로 분한 정만식, 주책스런 이웃집 여자 마테로 분한 김영아 등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극의 완급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파우스트를 통해 되새기는 사랑의 고귀함
 파우스트 역과 연출을 겸한 이현찬씨는 “연구에만 전념하던 한 노학자가 내면의 따뜻한 감성을 깨우쳐 가는 이야기 속에 현대인들이 간과하는 사랑의 문제를 표현하려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이어서 그는 “한국 연극도 대사 전달 위주의 연극에서 벗어나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연극’을 지향하는 다양한 실험을 계속했으면 한다”며 앞으로도 독일 유학시 익힌 인형극과 신체적인 움직임, 배우의 연기 등을 도입한 실험적인 시도를 계속 펼쳐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상의 빛과 어두움을 모두 체험하며 삶의 진실을 탐구하는 《파우스트》의 심오함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파우스트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우어파우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단 이 사랑이 서로에게 파괴적으로 작용하지 않아야 함은 논할 여지가 없다. “철학, 의학, 법학, 신학까지 인생을 바쳐 연구했지만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내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다”고 절규한 파우스트 박사의 독백은, 타인을 사랑할 여유조차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우어파우스트’의 공연시간은 평일 7시 30분, 토·일 3시, 6시(월요일 공연 없음)이며 관람료는 일반·대학생 1만5천원, 학생 8천원이다. 문의전화 02-766-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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