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02. 2001 | ‘멀리서 보았을 때 꽃인가 싶었다가, 가까이서 보니 아름다운 여인이었더라’는 이야기는 언뜻 듣기에 낭만적이지만, 그 여인의 몸이 조각조각 해체된 모습이라면 묘한 모순을 느낄 수밖에 없다. 10월 16일부터 11월 11일까지 쌈지스페이스 1, 2층에서 열리는 장희정전은 해체된 인형의 신체를 오브제로 사용하거나, 가짜 꽃 그림 등을 등장시킨다. 사용한 소재들로 봐서는 페미니즘 계열 전시가 아닐까 싶지만, 장희정이 관심을 갖는 것은 아름다운 가짜들이 지닌 그로테스크한 매력이다. 그녀는 대상을 분해하고 다시 새로운 형태로 재조립하면서, 아름답게 보이는 외관 속에 숨은 실체를 해부하듯 파헤쳐 보인다.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과 보여지는 사물 사이의 간극
전시장 2층에 마련된 꽃무늬벽지 방은 그 대표적인 예다. 벽지에 인쇄된 하늘하늘 떨어지는 연분홍색 꽃송이는 사람의 팔다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녀의 꽃무늬벽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관람자는 두 번 놀라게 된다. 첫 번째는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팔과 다리들의 기괴한 조합 때문이고, 두 번째는 분해된 신체 부위가 대칭을 이루며 모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꽃을 닮았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진짜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실상을 파악한 관객은 그 아름다움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꽃무늬벽지로 도배된 방 한가운데에는 작은 유리병들이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여있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물체들 역시 ‘페티시즘 숭배자의 케잌’이라 이름지어도 좋을 만큼 엽기적이다. 각양각색 인종별로 잘라 넣은 인형 손, 앙증맞은 분홍빛 구두를 신은 발 한 쪽, 얼굴에서 도려낸 눈과 귀, 색색의 머리카락 등이 유리병에 담겨 하나의 아름다운 케잌 형상을 이루는데서 관람자는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예쁘고 귀여운 인형에 대한 원 관념과 눈앞에 실재하는 사물의 해체된 모습의 간극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사물에 대한 관념과 보여지는 사물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려는 시도는 1층에 전시된 장희정의 또 다른 작품 ‘가짜 꽃 그림’에서도 읽을 수 있다. 바로크 시대 네덜란드 정물화를 연상시키는 섬세하고 화려한 꽃 그림은 실제로는 손으로 일일이 그린 것이 아니라 꽃무늬 천을 꼴라주한 것이다. 작가는 단지 이어붙인 꽃과 꽃 사이가 어색하지 않도록 검은색으로 틈을 메꿔 놨을 뿐이다. 작가는 이 작업을 시작한 동기가, 사물의 본질과 허구가 충돌할때 파생되는 생경함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너무 직설적인 것보다 아름다움으로 포장한 가짜들을 그려보고 싶었다. 나의 꽃 그림들은 언뜻 보면 그냥 꽃 정물 같지만 내가 그려 넣은 것 반, 이미 꽃무늬 천에 프린트되어 있는 꽃들이 반이다. 방부액에 보존된 인형의 손, 발, 눈, 입, 등 그 밖의 작품을 보면, 사물 그 자체보다는 그 본질성과 허구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이함, 생경함에서 쾌감을 느낀 것 같다. 최근작인 인형거울그림, 가짜 꽃 그림 등은 이전 작의 거울 이미지에서 느낀 허무를 아름다움으로 포장해 나간 작업들이다.”
지각심리학적 유희의 대상물이 된 신체
미술비평가 린다 노클린은 《절단된 신체와 모더니티》(조형교육)에서 “미술작품에서 조각난 신체들이 나타내는 것은 자아의 파괴와 사회 전체성의 해체라는 근대성의 일면이다. 신체의 단편들은 미술작품에서 구성의 형식적인 측면을 해결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며, 근대의 익명성과 가변성, 우연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렇듯 ‘절단된 신체’는 제의적, 성 심리적인 측면과 환유적, 제유적 측면에서 많은 내용을 함축하는 테마”라고 밝힌 바 있다. 1990년대 들어 몸에 대한 담론이 급부상하면서 파편화된 신체 이미지에 억압된 여성상을 투영해 문제를 제기하는 작가들이 대거 등장한 것과는 달리, 이번 작업은 작가 자신의 말에 따르자면 지각심리학적인 유희의 일종으로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장희정이 많은 사물 중에서도 조형적 요소로 굳이 ‘여성의 몸’을 선택하게 된 내적 이유는 무엇인지, 그녀의 말대로 ‘인형을 다루는 게 편리하기 때문’만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쌈지스페이스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관하며, 3층에서는 백미현 개인전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관람료 무료. 문의전화 02-3142-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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