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26. 2001 | ‘전통조각은 딱딱하고 재미도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끗이 불식시킬 전시가 로댕갤러리에서 열린다.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 주최로 9월 28일부터 11월 18일까지 개최되는 ‘새로운 발견! 조선후기 조각전’은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까지 제작된 불교조각, 능묘조각, 토속신상 등 70여 점을 선별해 기존 미술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전통조각의 다양한 양상을 부각시킨 전시다.
불교적 경궤의 영향 벗어난 다채로운 조각 선보여
전시된 작품 면면을 보면 불교의 의례적인 제작양식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불·보살상을 전시목록에서 최소화하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암굴 속에서 수도하는 나한상, 시중을 드는 동자상과 동녀상, 불교적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는 사자형 법고대와 코끼리형 좌대 등 작가의 개성을 발현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제약이 덜한 작품들을 선보인 것도 그런 의도에서다. 텁텁한 맛과 투박한 돌의 질감이 살아있는 벅수, 알록달록 채색한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한 나무꼭두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번 전시의 매력이다.
전통조각이라면 금도금을 한 불상이나 무덤의 석상이나 탑파 등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조선 전기 이전의 조각이 사찰의 불상, 능묘를 장식하는 석인(石人)·석수(石獸)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들어 실학이 성행하고 새로이 부를 축적한 계층이 늘어나면서 조각의 수요층이 다양해지고 그 양상도 세분됐다. 죽은 사람의 마지막 호사로 상여를 장식할 꼭두조각이나 능묘에 세울 벅수를 주문하는 민간인이 늘어났고, 선비들은 개, 닭, 두꺼비, 해태 등 해학적인 동물 모양의 백자 연적을 곁에 두고 아꼈다. 종교생활과 장례의식, 어린이들의 노리개에 이르기까지 조각은 일상생활과 합쳐지면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여실히 담은 생동감 넘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조선후기 조각의 자태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결은 그 이전시대의 조각보다 훨씬 다채롭다.
종교적 염원과 생의 욕망을 한자리에 담아
전시된 작품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생생히 보여주는 나무꼭두들이다. 얼굴에 흰 분칠을 하고 입술을 붉게 물들인 채 물구나무를 선 재인꼭두의 담담한 듯 하나 서글픈 모습, 봉황에 가부좌한 동자를 태워 망자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기봉꼭두, 호랑이를 탄 염라대왕을 상징해 상여 꼭대기 용마루에 앉힌 기호꼭두 등 실용적인 목적에서 제작한 조각들은 울긋불긋 화려한 원색으로 채색됐지만,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채색의 결에서 세월의 흔적이 더듬고 지나간 자취를 읽을 수 있다. 모란꽃과 가지 사이를 노니는 새가 어우러져 창살을 이룬 꽃살문, 섬세하고 세련된 조각기법과 은은한 채색이 매력적인 사자형 법고대 등 정련된 솜씨를 보여주는 다른 조각들 사이에서 서툴고 무딘 솜씨로 제작된 이들 나무꼭두가 두드러지는 건, 삶의 무상함을 이기려는 민중의 질긴 욕망이 반영돼있기 때문이다.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해 매일 오후 1시, 3시에 전시설명회가 열리며, 갤러리 내 비디오실에서 ‘한국의 보물: 나무 위에 새긴 극락세계-경국사 목각탱’(10분)과 ‘한국 재발견-사천왕상’(20분)을 수시로 상영한다. 개관시간은 화∼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목요일은 9시까지 연장) 월요일은 휴관한다. 입장료는 일반 4천원, 학생 2천원. 문의전화 02-2259-77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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