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29. 2001 | 현미경으로 양파 세포를 관찰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물의 외관과 그 이면에 숨은 미시적 세계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것이다. 11월 24일부터 내년 2월 24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되는 황규태 개인전은 일상적인 사물을 마이크로렌즈로 확대한 컬러사진 ‘놀이’연작과 1960년대 찍은 흑백사진을 포토샵으로 편집한 ‘무제’ 연작 등 사진을 확대하거나 편집해 일상의 이미지를 재편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생태지향적이고 문명 비판적인 발언이 강했던 전작들에 비하면 황규태의 최근 작품들은 이질적이다 싶을만큼 크게 달라졌다. 현란한 색채도 그 변화의 일면이지만, 특히 2층에 전시된 컬러사진연작 ‘놀이’의 피사체를 보면 그의 관심이 일상의 재해석 쪽으로 기울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텔레비전 화면이나 PC 모니터 화면, 캡슐 알약, 심지어는 문방구에서 파는 원형 스티커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물들일지라도, 이를 클로즈업해 찍은 사진들은 생경하고 기괴한 이미지로 탈바꿈한다.
일상적인 사물의 외관을 극한까지 확대한 기이하고 낯선 이미지
예컨대 마이크로렌즈를 사용해 텔레비전 화면이나 모니터 화면 등을 극도로 가까이 다가가 찍은 사진은 사실적인 스트레이트 사진이지만, 초현실적인 풍경처럼 보인다. 화면을 구성하는 주사선의 색 입자가 일일이 보일 만큼 확대된 탓에 전자생물의 세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원형 스티커를 찍은 다른 작품 역시 얼핏 봐서는 컴퓨터그래픽으로 출력한 망점 같지만, 실은 작가가 직접 촬영한 것이다. 마치 관람자의 눈을 줌렌즈로 변화시킨 것처럼 대상을 밀고 당기며 시각의 변화를 유도하는 그의 작품은 ‘놀이(joy)’라는 연작 제목이 함축하듯 시각유희의 측면이 강하다.
3층에 전시된 흑백사진연작 ‘무제’는 ‘놀이’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미지를 재해석한다. 작가가 1960년대에 찍었던 흑백사진을 스캔하고 임의의 배율로 확대하거나 트리밍해 출력한 5백50여 점의 작품들은 원본과 유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된다. 이는 원작이 지닌 ‘불변의 아우라’라는 권위를 작가 스스로 해체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 사진의 일부분이 확대되고, 그 확대된 부분과 원본이 뒤섞여 새로운 맥락을 만드는 ‘무제’ 연작은, 까다로운 암실작업 대신 포토샵이라는 편리한 도구를 거쳐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된다. 전시장에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의 작품 ‘로어라토리오’(Roaratorio, 1979)는 그의 실험정신을 뒷받침하는 숨은 조력자다.
디지털 시대의 가변성 반영한 전복적 사진
평론가 이영섭씨는 “그의 재해석이 통쾌하다고 한 이유는 자신의 사진의 주제상, 구성상, 정서상의 통일성 같은 것은 싹 잊어버리고, 마치 아무렇게나 다뤄도 되는 재료처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유쾌하도록 낯설고 기괴하고 섬뜩하기까지 한 이미지들이어서 통쾌하다. 누군가 거침없이 말을 마구 뱉어낼 때 느끼는 통쾌함”이라며 황규태 사진의 전복성을 설명했다.
이번 전시의 부대행사로 12월 13일 오후 2시, 1월 19일 오후 3시에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며, 매주 주말 3시에 관람자를 위한 전시설명회가 열린다. 입장료 성인 2천원, 학생 1천원. 문의전화 02-733-8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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