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22. 2001 | 베를린 국회의사당과 파리의 퐁네프를 하얀 천으로 둘러싸고 콜로라도 계곡에 거대한 장막을 치는 등, 세계의 명소와 자연풍광을 말 그대로 ‘포장’하는 설치미술로 유명한 대지미술가 크리스토와 쟝 클로드 부부전이 개최된다. 11월 16일부터 12월 6일까지 박여숙화랑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뉴욕 센트럴 파크에 설치할 예정인 ‘게이츠(The Gates)’프로젝트와 콜로라도 아칸소강에 설치될 ‘오버 더 리버(Over The River)’프로젝트 등 최근 추진중인 작품과 관련된 드로잉 및 사진 총 28점을 선보인다.
설치와 해체 과정에서 환경을 전혀 훼손치 않아
1960년대 말경 상업화된 예술에 대한 반발과 환경운동에 대한 관심이 결합돼 탄생한 장르가 대지미술인 만큼, 크리스토 부부는 작품의 영속성을 부정하며 작품 설치기한을 2주로 제한했다. 창작과정을 중시하는 이들의 작품은 설치와 해체 과정에서 환경을 전혀 훼손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상을 드러내는 대신 감춤으로써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크리스토 부부의 작업은 ‘낯설게 하기’라는 표현으로 집약된다. 가려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외부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들의 작품은 관람자가 일상의 공간을 주목하게 해 새로운 시각으로 공간을 지각하게끔 한다.
예컨대 전시된 드로잉 중 1990년대 초반부터 추진돼온 ‘오버 더 리버(Over The River)’프로젝트는 콜로라도 아칸소강 위를 투명한 직물로 덮는 작업이다. 강바닥에서부터 최저 3미터, 최고 7미터 위로 투명한 천을 띄워 강 위를 덮는 이들의 작업은 아칸소강을 따라 이어지는데, 그 총 길이가 10.7킬로미터에 달할 만큼 방대하다. 이 프로젝트 드로잉은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졌는데, 하늘에서 조망한 시점의 드로잉은 대지에서 솟아난 은빛 띠 같고, 배를 타고 지나가며 위를 바라보는 시점의 드로잉은 투명한 천 아래로 푸른 하늘과 구름이 그대로 비쳐 하늘을 천에 옮겨 담은 듯하다.
빠르면 2004년 경 센트럴 파크의 산책로에 설치될 또 다른 작품 ‘게이츠(The Gates)’ 프로젝트 역시 서정적이면서 독특한 시각적 체험을 유발한다. 높이 4.5미터의 문을 일렬로 세우고 황금빛 천을 늘어뜨려 그 아래로 보행자들이 통과하도록 한 이 작품은 고층빌딩 숲 사이에서 부드럽게 일렁이는 금빛 강 같은 장관을 연출하게 된다. 아직 실제 공간에 설치되지는 않았지만, 드로잉만으로도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묘사가 구체적이다.
크리스토 부부가 이처럼 섬세한 드로잉을 제작하는 이유는 프로젝트의 규모가 방대한 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결과를 예측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작품이 팔 수 있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프로젝트와 관련된 드로잉, 판화, 콜라주 등을 판매한 수익금으로 작품 제작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작품이 설치될 공간의 지도, 사진과 함께 크리스토 부부의 지시사항이 기록된 드로잉은 일종의 개념예술로서 독립된 예술작품으로 기능한다.
전시관람으로 완성되는 실천적 참여미술 프로젝트
두 프로젝트의 기금 마련을 위해 개최되는 크리스토와 쟝 클로드 전은 도록을 포함한 전시입장료가 1만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이에 전시를 주최한 박여숙 대표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우리는 관객으로서, 그리고 후원자로서 그의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열린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라며 관람행위 자체가 크리스토 부부의 프로젝트에 간접적으로 참가하는 의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박여숙화랑에 전시된 작품 28점 외에도 크리스토 부부의 프로젝트 드로잉 중 대작에 속하는 7점은 성수동에 위치한 ㈜신도리코 본사 사옥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자세한 문의는 02-549-7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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