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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빨대 30만개로 만든 초대형 얼굴 조각

by 야옹서가 2006. 2. 7.
[미디어다음/ 2006. 2. 7] 30만 개의 빨대로 만든 초대형 얼굴 조각, 국수로 만든 입술과 혓바닥 등 이색 재료로 만든 조각이 미술관에 전시되어 눈길을 끈다.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이달 12일까지 열리는 ‘여섯 개의 아뜰리에’전에서, 조각가 홍상식이 국수와 빨대로 만든 이색 조각품들을 만나본다.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국수나, 한 번 쓰고 버리는 1회용 빨대를 작품 재료로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철, 브론즈 등 전통적인 조각 재료와 달리 작품을 영구보존하기 어렵고, 자칫하면 가벼운 유희로 치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상식에게 국수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재료다. 어린 시절, 조각의 재미를 가장 먼저 일깨워준 추억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국수를 재료로 이용하게 된 건, 소면을 좋아하시던 아버지와의 어린 시절 추억 때문” 이라고 말한다.

국수 먹는 날, 가게에서 사온 소면 한 다발은 더없이 재미난 장난감이었다. 반듯하게 잘린 소면 가락을 손가락으로 밀면, 반대편으로 국수 가락이 동그랗게 밀려나와 재미난 형태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신나게 놀고 나면, 어머니가 끓는 물에 소면을 말아 맛있는 국수를 만들어주곤 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처음 국수 조각을 선보인 것이 1999년 대학 졸업작품전이었다. 누구나 한번쯤 어린 시절 국수 가락을 갖고 놀던 기억이 있기에, 그의 조각은 적지 않은 호응을 얻었다. 이에 힘을 얻은 작가는 이후 철사, 빨대 등의 재료로 관심을 넓혀 나갔다.

홍상식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미세한 점이 모여 선과 면을 이루는 ‘집합의 예술’이다. 그림으로 친다면 점묘화에 비할 수 있을까. 점의 요소가 모여 조각을 완성하기 때문에 표면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질감이 매력적이다.

또한 재료 중에 빨대는 가운데가 비어 있기 때문에, 조각 반대편의 형상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재미난 특성을 지닌다. 보는 각도와 위치, 거리에 따라 빨대 너머로 보이는 형상이 달라지는데, 빨대 구멍 하나하나에 비친 형상인 탓에 반대편 모습이 마치 모자이크처럼 보여지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작품 주제가 ‘들여다보기’인 것을 생각하면, 빨대 조각은 국수 조각과 또 다른 방향으로 형식 실험을 하게 된 셈이다.

작가가 2004년 제작한 작품 ‘30만 개의 빨대’. 가로 4.5m, 세로 1m, 높이 2.8m에 달하며, 제목처럼 빨대 30만개로 만들었다.


직경 6mm의 빨대로 표현된 미세한 점의 음영이, 고함을 지르는 사람의 얼굴 표정을 흥미롭게 재연한다.


전시된 작품 중 가장 많은 빨대를 사용한 것은 가로 3m, 세로 4m의 손바닥 모양 조각이다. 차곡차곡 쌓아 양을 가늠하기 힘들지만, 약 35만 개의 빨대를 사용했다. 개당 길이가 21cm인 규격품은 너무 짧아, 길이 50cm로 특별 주문 제작한 빨대를 사용했다고 한다.

높이 4m, 가로 길이 3m의 대작으로, 빨대를 차곡차곡 쌓는 데에만 하루가 소요된 작품이다. 사용된 빨대의 양은 35만 개로, 사과상자보다 더 큰 크기의 상자 60개에 담겨 미술관으로 공수됐다.
 
손 작품의 뒷면. ‘들여다보기’로 주제를 설정한 작가는 빨대의 빈 구멍 너머로 형상이 비치는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작품 정면에 선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만, 마치 영상을 보듯 평평한 것이 이채롭다.


비교적 소품에 속하는 입술 모양 빨대 조각도 길이 21cm의 빨대 8000개가 사용됐다. 또한 피라미드처럼 쌓은 국수로 만든 입술 조각에는 약 2만 가닥의 국수가 사용돼, 그 규모를 실감케 한다.

재료가 재료이다 보니, 호기심에 손으로 살짝 눌러보고 가는 관람객도 적지 않을 듯하다. 아니나다를까, 웃을 상황은 아니지만 작가가 털어놓는 푸념에 그만 웃음을 머금게 된다.

“관객들이 좋아는 하는데 너무 만져 놔서 속상합니다. 입술은 가운데를 눌러 놓고, 코 옆엔 오서방 점을 만들어 놓고…. 요번 주엔 원형 입술 작품 5개를 평평하게 만들어 버렸더군요. 특히 아이들을 여럿 데리고 온 부모들은 곤욕을 치르죠, 어른들도 눌러보고 싶어하는데 아이들은 오죽하겠어요? 한 놈 말리면 옆에서 다른 애가 누르고 있고, 난리 날 때가 여러 번이었죠.”

“만져보고 싶은 걸 이해는 하지만, 망가진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손 봐야 할 때 가장 곤혹스럽다”는 작가는 아직 고정에 대한 필요성이 그리 크지 않고 재료비에 대한 부담도 있어 당분간 지금 방식을 유지할 계획이다. 그러나 다음 번 전시에는 고정 형태의 발전된 형상도 볼 수 있을 거라고 귀띔한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작품을 만들어 보람을 느낀다는 작가는 “미술이 일반인과 동떨어진 별개의 분야가 아니라, 우리 곁에서 항상 존재하는 일상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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