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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일본

일본의 고양이 허수아비 '도리요케'

by 야옹서가 2008. 9. 27.
한국의 가을 들판에 참새 쫓는 허수아비가 있다면, 일본에는 눈빛으로 새를 쫓는 '고양이 허수아비' 도리요케 〔鳥よけ〕가 있다. 어떻게 눈빛만으로 새를 퇴치할 수 있다는 걸까? 그것도 진짜 고양이가 아닌, 가짜 고양이의 실루엣으로 말이다.  

한국의 허수아비는 농부 옷을 입고 들판에 서서 빈 깡통을 달그락거리며 새를 쫓는다. 요즘 새들은 영악해서 어설픈 허수아비 따위엔 잘 속지 않는다지만, 어쨌든 참새들도 순진했던 그 옛날엔 허수아비가 들판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톡톡히 한몫 했던 것은 사실이다. 언뜻 보기엔 사람처럼 차려입은 모양새에, 살아있는 것처럼 가끔 깡통 흔드는 소리도 한번씩 내주니, 조심성 많은 새들이 허수아비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허수아비가 '사람 같은 겉모습+깡통 흔드는 소리'로 새를 쫓았다면, 일본의 도리요케는 '고양이 모습의 실루엣+번쩍이는 유리구슬 눈동자'의 조합으로 새를 쫓는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싫어하는 새의 습성을 노린 것이다. 게다가 그 반짝이는 무언가가 새의 천적인 고양이 얼굴이라면? 새들도 지레 겁먹고 슬금슬금 피할 수밖에. 고양이 얼굴 모양을 한 도리요케는 그런 취지에서 고안된 일종의 '고양이 허수아비'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허수아비와는 다른 용도로 만들어졌지만, 새를 쫓아낸다는 목적에는 충실하다. 새〔鳥〕를 일본어로 읽으면 '도리'가 된다. 한글과 일본어가 엉터리로 뒤섞인 '잘못된 조어'의 사례로 빈번히 언급되는 닭도리탕(가운데 낀 한자를 풀면 '닭새탕'이 되어서 좀 웃긴다)의 그 '도리'다. 그러니까 도리요케는 '새 쫓는 도구'인 셈이다.

원래 도리요케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앞서 소개한 것처럼 고양이 눈을 흉내 낸 것이 있고, 다른 하나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창살을 아파트 베란다 등지에 설치하여 새의 접근을 원천봉쇄한 것이 있다.  농촌처럼 과수해의 피해가 우려되는 곳에서는 그물 모양의 도리요케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고양이형 도리요케는 새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도 환경친화적인 방법으로 새를 쫓는 데 반해, 창살형 도리요케는 생각없이 날아든 새가 다칠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엔 아무리 새 때문에 불편을 겪는 일이 있어도, 설치한 사람은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비록 효과는 100% 바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보다 온건하게 새를 쫓는 방식이 있다면...하는 생각에서 사람들이 선택한 것이 고양이형 도리요케이다.
실제로 고양이형 도리요케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찾아보았다. 2007년 여름 요코하마 야마테 지역에서 본 고양이형 도리요케이다. 사실 저 대문의 모습이 하도 특이하고 기괴해서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도리요케가 문 구석에 매달려 있었다.

 

검은 고양이를 정면에서 본 듯한 모습의 실루엣에, 눈 자리에는 투명하게 빛나는 유리구슬이 박혀 있다. 새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싫어하는 것은, 아마 천적인 고양이의 눈매를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2007년 여름 도쿄 세타가야 구의 주택가 대문 앞에서 본 도리요케. 이때까지만 해도 저 고양이 얼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처음에는 "이 집에 고양이가 살고 있어요" 하는 표지판 같은 것인 줄로 알았었다. 게다가 눈동자도 없이 얼굴만 달랑달랑 매달려 있지, 얼굴을 매달아 둔 철사는 녹이 슬었지, 어쩐지 으시시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올해 여름 야나카 주택가의 정원 나무에서 본 도리요케. 작년에 세타가야 구에서 본 것과 동일한 제품인데, 매단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상태도 좋고 눈동자도 제대로 달려 있다.  살짝 미소 짓는 듯한 도리요케를 보면서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새에게 고통을 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 멀리 쫓는 것만을 원한다면, 창살보다는 귀여운 고양이 모양 도리요케를 매달아두는 게 보다 인도적이지 않을까? 쉴 곳을 찾아 날아든 새를 무자비하게 찌르는 창살형 도리요케와 달리, 고양이형 도리요케에는 인간과 새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상생의 지혜'가 담겼다. 


마지막으로, 고양이 모양 도리요케와 고양이 눈동자 비교사진을 올려본다. 살아있는 고양이의 눈동자가 저렇게 구슬처럼 빛나는 걸 보면, 새들이 유리구슬 눈동자를 보고 실제 고양이와 맞닥뜨린 것처럼 착각할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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