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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일본

외톨이를 위한 치유의 만화 '나츠메 우인장'

by 야옹서가 2008. 10. 8.
도쿄 여행 중에, 복고양이를 모시는 신사에서 만화 '나츠메 우인장'〔夏目友人帳〕에 등장하는 '야옹 선생'을 만났다. 만화 속 야옹 선생이 '마네키네코 인형 속에 봉인된 요괴'로 설정된 만큼, 마치 만화의 한 장면이 현실로 재현된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의뭉스런 눈빛, 통통한 몸통이 만화 속 야옹 선생과 똑같았다. 신사에 봉납된 '야옹 선생'인형은 특별 제작된 것으로, 올 여름 시즌부터 '나츠메 우인장'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자, 성공을 빌며 복고양이 신사로 유명한 이곳에 봉납한 것이라고 한다. 주인공 나츠메 역을 맡은 성우 카미야 히로시 역시 '야옹 선생'이란 이름의 집고양이를 실제로 키우고 있어 흥미롭다.
   
'나츠메 우인장'은 요괴를 볼 수 있는 소년 나츠메(夏目)가, 요절한 할머니 레이코의 유물인 '우인장'(요괴의 이름을 적은 명부)을 물려받으며 겪는 모험담을 그린 만화다. 우인장에는 오랜 옛날 레이코에게 져서 복종을 약속했던 요괴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우인장의 주인은 그 요괴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하지만 나츠메는 자칫하면 오용될 수 있는 우인장의 힘을 쓰며 사욕을 채우는 대신, 요괴들에게 이름을 돌려주기로, 즉 자유를 주기로 결심한다.  

츤데레 고양이, 야옹 선생의 매력
우인장의 힘을 몰랐던 나츠메에게, 그 위력과 위험성을 최초로 알려준 것이 바로 야옹 선생이다. 나츠메가 요괴에게 쫓기다 우연히 신사에 봉인된 복고양이 인형의 봉인을 깨뜨리면서, 그 속에서 야옹 선생이 풀려나온 것이다. 야옹 선생은 나츠메가 죽으면 우인장을 자신이 갖기로 하고, 대신에 나츠메가 살아있는 때까지는 그를 지켜주기로 계약을 맺는다. 복고양이 인형에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었기에, 야옹 선생의 모습도 역시 복고양이처럼 우스꽝스럽지만, 본모습인 요괴 '마다라'로 변신할 때는 엄청난 위력을 보인다. 마다라가 어떤 요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꼬리가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을 보면 고양이 요괴인 '네코마타'에서 착안한 것 같기도 하다. (네코마타에 대한 설명은 http://catstory.kr/606 참조)


사람들 앞에서는 집고양이 흉내를 내며 나츠메와 계약동거를 시작한 야옹 선생의 존재는 흥미로운데, 실제 고양이들이 흔히 보여주는 '츤데레'적인 속성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냐옹 선생은 때론 무뚝뚝하게 툭툭거리면서도, 약해빠진 나츠메를 내심 걱정하고 돌봐준다. 사소한 걸로도 삐치고, 맛있는 걸 무지무지 좋아하고, "난 고양이가 아니라니까" 하고 호통치면서도, 고양이 장난감을 보면 무의식중에 달려들고 마는 야옹 선생은, 나츠메와 더불어 만화의 투톱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다. 

유약한 외톨이의 성장담을 그린 치유의 만화
우인장에 적힌 이름을 돌려달라고 나츠메를 찾아온 요괴들, 혹은 우인장을 빼앗아 요괴들을 부리고자 들이닥친 악당 요괴들을 만나면서 나츠메가  겪는 모험담을 그린 만화지만, '나츠메 우인장'은 사실 공포물이라기보다는 요괴만화의 외피를 쓴 성장만화이자 잔잔한 치유계 만화에 가깝다. 악한 요괴와 싸우는 과정에서 소소한 액션 신이 등장하지만, 만화의 주를 이루는 정서는 상처와 치유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주인공인 나츠메가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고,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요괴를 볼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외톨이로 자랐다는 설정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어린 나츠메를 향해 '기분나쁜 아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배척이 담겨 있다. 어린 나츠메가 자신의 다름을 인지했을 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내면으로 침잠하여 말없는 외톨이로 성장하는 것, 그리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그러나 나츠메는 요괴를 볼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요괴를 제압할 힘도 지녔던 할머니 레이코의 우인장을 계기로 성장해나간다.  이름을 돌려달라며 찾아온 요괴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해결하면서, 때론 악한 요괴를 물리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우면서 외부 세계와 교류하게 되고, 요괴를 보는 능력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던 마음도 어느새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요괴를 볼 수 있다는 능력은 나츠메 자신에게는 일종의 결함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 역시 나츠메의 일부이다.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리잡은 마음속의 그림자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 만화가 완결되지 않았기에 결말은 알 수 없지만, 나츠메는 아마 요괴를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지언정, 더 이상 괴로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요괴를 해방시키는 과정에서, 이미 자신의 내면 속에서 빛나는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힘은 '남과 다른 존재'로서의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자기 확신에서 나온다. 이는 나츠메가 자신의 외톨이 세계에 방어적으로 갇혀있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처럼 상처 입은 인간과 요괴들을 해방시키고, 연민의 마음으로 끌어안는 과정에서 주로 보여진다. '나츠메 우인장'을 성장만화이자 치유의 만화라고 느끼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야옹 선생이, 물리적인 힘으로 따지만 약하기 짝이 없는 나츠메를 힘으로 제압하는 대신, 번거롭기 짝이 없는 계약을 한 것도, 나츠메의 내면에 자리잡은 힘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역시 냐옹 선생은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예리한 눈을 가진 '선생님'이시다.

야옹 선생과 함께 한 나츠메. 반딧불 요괴의 에피소드에서, 나츠메는 자신의 삶을 옭아매는 족쇄였던 '요괴를 볼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지, 요괴를 볼 수 없게 된다면 정말 행복할지를 자문하게 된다.  이는 나츠메가 자신의 '다름', 마음의 그림자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계기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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