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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일본

복고양이 축제가 열리는 골목, 오카게요코초

by 야옹서가 2008. 12. 19.

애묘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고양이에 대한 미신은 존재한다. 오래 산 고양이에겐 영묘한 힘이 생겨, 꼬리 둘 달린 요괴 ‘네코마타’로 변신한다는 속설은 그 대표적 사례다. 때문에 과거에는 네코마타로 변신하지 못하게 고양이 꼬리를 자르기도 했다니, 미신 때문에 고양이가 겪는 수난이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존재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고양이의 습성을 이해하지 못해 생겨난 ‘고양이의 복수’ 이야기가 있다. 길고양이가 불쌍해 먹을 것을 줬더니, 며칠 뒤 집 앞에 죽은 쥐를 갖다놓아 배신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다. 길고양이의 입장에서는 먹을 것을 받았으니 자신도 소중한 것을 주겠다는 일종의 ‘보은’인 셈인데,  “잘 지내보자”는 뜻으로 건넨 그 선물이, 인간에게는 혐오동물이니 ‘고양이의 해코지’라는 오해를 살 수밖에. 
 
마네키네코-친근감을 불러일으킨 최초의 고양이 캐릭터
한데 일본에서도 한때 ‘요물’로 인식되던 고양이가 복을 불러오는 동물로 새롭게 위상을 정립할 수 있었던 데는 ‘마네키네코’, 즉 복고양이 인형의 힘이 컸다. 이는 앞발을 치켜든 고양이 인형이 돈과 손님을 불러온다는 설정을 일본 상인들이 재빨리 확산시켜 상업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이 어쨌든 간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고양이의 모습이 널리 퍼지면서 요괴로서의 고양이 이미지도 서서히 사라진 게 아닐까. 이러한 복고양이 인형들은 아직 캐릭터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고양이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전파시킨 일등 공신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이번 취재에서는 ‘성공적인 고양이 캐릭터’의 초기 원형을 담은 복고양이 관련 문화 사업을 살펴보고자 했다. 또한 긍정적으로 묘사된 고양이 인형이 단순히 상품으로 소비되는 단계를 넘어,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축제의 소재로 도입된 사례를 찾아보았다.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http://catstory.kr)

 

일본 미에 현 이세 시에 위치한 ‘오카게요코초’는, 에도 시대의 목조 건물 거리를 재현한 거리이다. 요카케요코초에는 여느 상업 지구와 달리 특별한 축제가 있다. 매년 9월 29일을 전후해 1주일가량 열리는 복고양이 축제 ‘쿠루후쿠 마네키네코 마츠리’(来る福招き猫まつり)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 마네키네코클럽에서 1995년 제정한 복고양이의 날(9월 29일)은, 인간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복을 불러준 고양이들에게 ‘1년에 하루 정도는 감사를 표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9월 29일이 복고양이의 날로 된 것은, 이 날짜의 발음이 ‘쿠루후쿠’(来る福)와 유사하고, 두 팔을 치켜들어 오른손으로는 돈, 왼손으로는 손님을 부르는 복고양이의 모습과 숫자 929의 모양이 닮았기 때문이란다.

2008년 들어 14회째를 맞이한 ‘쿠루후쿠 마네키네코 마츠리’에서는 매년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된다. 고양이 분장을 하고 복고양이 인형을 모신 가마를 멘 주민들의 축제 행렬이 펼쳐지는 가운데, 복고양이 전문 작가들의 창작 인형 전시, 복고양이 인형 제작 체험교실 개최, 전국 일반인을 대상으로 나만의 복고양이 디자인을 공모해 수상작을 전시하는 등의 행사가 그것이다. 


 
축제가 없을 때도, 1천마리의 복고양이를 보는 즐거움
오카게요코초를 방문한 시점이 11월 말이었기에, 축제는 이미 두 달 전에 끝난 상황. 그래서 아쉽게도 축제 현장을 취재하지는 못하고 관련 자료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축제가 열리지 않아도 ‘오카게요코초’를 찾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곳이 있다. 복고양이 축제를 보러온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바로 ‘복을 부르는 가게’(招福亭)가 있기 때문이다.

지붕 위에 누워 햇볕을 쬐는 길고양이 조각이 인상적인 이 가게에서는, 1000종이 넘는 일본 각지의 복고양이를 총망라해 전시·판매한다. 가게이기는 하지만, 일반 관광객을 위한 염가 기념품 판매과 더불어 작가들이 만든 정교한 고양이 인형을 함께 전시해 전시에도 초점을 맞췄다. 이곳에서 지역별로 모습이 다른 일본 복고양이의 유형을 일별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또한 이 가게뿐만 아니라 오카게요코초 곳곳에 고양이 조형물이 숨어 있어, 생활 속의 고양이가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그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흥미롭다.  


길고양이 생명권에 초점을 맞춘 축제를 준비하며
지금까지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열린 전시들은 몇 차례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보다 산발적이고 개별적인 활동에 그쳤던 것이 현실이다. 이를 좀 더 확장하여, 소외된 길고양이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이들을 돕기 위한 축제가 정례화된다면 어떨까. 누군가는 길고양이의 생명권을 알리는 방법으로 1인 시위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환경부나 살처분을 주도하는 공기관에 끊임없이 공문을 보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는 험난한 삶 속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는 길고양이 사진이나, 길고양이를 테마로 한 조각, 영상 등의 작업을 통해, 우리 곁의 작은 생명인 길고양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고 싶다. 


그 축제는 준비하는 사람도, 참여하는 사람도, 보러 오는 사람도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오되, 돌아갈 때는 길고양이의 생명권에 대한 묵직한 생각거리를 하나씩 가져갈 수 있는 행사였으면 좋겠다.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나처럼 길고양이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길고양이 조각품도, 길고양이를 테마로 한 영상작업도 있었으면 좋겠다. 요물이나 해충과 같은 모습으로 왜곡된 길고양이가 아닌, 긍정적인 시각으로 길고양이를 보여주는 다양한 시도들이 늘어날 때, 길고양이에 대한 사람들의 근거 없는 편견도 조금씩 걷혀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는 '인도적인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방식'인 TNR프로그램(포획-중성화수술-원 서식지에 안전하게 방사)에 대해 알리는 소식지를 전달함으로써, 작품도 감상하고, 정보도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거문도 길고양이 문제를 바라보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었다. 사실 관계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은 뉴스나 다큐멘터리의 역할이다. 사람들이 뉴스나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기대하는 것 역시 어떤 사안에 대한 공정하고 중립적인 시각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길고양이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어야 하지만, 길고양이의 생명권을 염두에 두고 인도적 방법으로 점진적 개체 수 조절을 시도하는 이야기도 들려주어야 공정하다. 그러나 '요괴영화의 주인공'이나 '무적의 미니호랑이'처럼 부풀려진 길고양이의 모습만을 매체에서 접하게 된다면, 평소 길고양이에 대한 악감정이 없던 사람들조차 불필요한 편견을 깔고 길고양이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는 길고양이에 관한 중립적 시각을, 거문도 길고양이 프로젝트를 통해 펼쳐보이고 싶다.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http://catstory.kr)

* 이 글은 한국블로그산업협회에서 후원하는 블로그 지원사업 '블로거!, 네 꿈을 펼쳐라'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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