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일본

고양이와 자전거, 도쿄 골목길 풍경

by 야옹서가 2008. 10. 16.

인파로 북적이는 관광지에선 쉽게 고양이를 만날 수 없지만, 골목으로 접어들면 정겨운 풍경이 있습니다. 고양이가 다니기 좋은 아담한 골목이 있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은 고양이가 노는 풍경을 스쳐 지나갑니다. 조금은 무심한 듯, 그러나 아주 무관심하지는 않게. 가끔 주차된(?) 자전거 앞에서 노는 고양이를 쓰다듬어주기도 하면서요. 

일본에는 왜 유독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하고 궁금했는데, 대중교통비가 비싸다보니, 짧은 거리는 자전거로 오가는 편이 좋긴 하겠더군요. 딱, 페달을 밟는 자신의 힘만큼만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는 연료도 필요 없고 공해도 유발하지 않는, 가장  환경친화적인 이동수단이기도 하지요. 자동차로는 통과하기 힘든 좁은 골목길도 씽씽 지나갈 수 있고요. 그래서인지, 주택가에서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가 일렬로 주차된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길고양이를 찾아서 골목을 타박타박 걸으며, 내게도 자전거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배낭에 구겨넣은 자료들과 손에 든 카메라의 무게 때문에 허리는 쑤셔오고, 다리는 무겁고, 공기는 후끈후끈해서, 그만 카메라도 배낭도 버리고 맨몸으로 걷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짐바구니에 배낭을 싣고, 동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슬렁슬렁 페달을 밟으며 다닌다면 여행길이 훨씬 가뿐했을 텐데. 골목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발로 걷는 것이지만, 시간이 빠듯한 여행자에겐 자전거 여행도 좋을 것 같아요. 

사람마다 여행의 취향이 다르겠지만, 저는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사람 많은 번화가를 떠밀리듯 걸을 때보다 골목을 걷는 쪽이 편안합니다. 서울에서도, 한옥들이 가득한 동네에서 7년을 내리 살다가 처음 대단지 아파트로 이사 갔을 때 참 낯설더라고요.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로 난 '동선'은 있지만, '길'은 사라진 것 같았거든요. 길이나 동선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가 체감하는 둘의 차이는 뚜렷했지요. 골목과 골목을 잇는 길에 이야기가 있다면, 동선에는 효율성만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고요. 어쨌든 골목은 저에게 고향 같고, 친구 같은 공간입니다. 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곳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려 애쓴 흔적을 보면, 씨익 웃음이 나지요. 밋밋한 회벽에 담쟁이덩굴을 올리고, 꽃을 키우는 풍경 말이에요.  
    

그리고, 그 골목의 추억을 더욱 특별하게 해주는 고양이들이 있지요.

낯선 사람의 손가락 끝에도 순순히 턱을 맡기고, 그윽한 표정을 짓는 고양이 말이에요. 


'가라오케'라는 간판이 붙은 골목의 어느 가게 앞에서 어슬렁 걸어나온 고양이들이 슬며시 자전거 앞에 몸을 누입니다. 목줄 여부로 집고양이인지, 길고양이인지를 구분하는데, 이 녀석들은 모두 집고양이들이네요. 도쿄 역시 서울처럼 대도시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길거리를 다니는 고양이들에게 싸늘한 눈빛을 보낸다거나 해코지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지, 고양이를 묶어두거나 집에 가둬 기르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기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몇십 년은 묵었음직한 오래된 목조주택 앞에도, 자전거가 있는 풍경은 빠지지 않네요. 집 입구에 녹색 기운을 가져다 줄, 자그마한 화단을 꾸며 놓은 모습도 그렇고요.


도쿄의 골목길에서 가장 많이 본 것을 꼽으라면, '자전거-고양이-화단'이 아닐까 싶어요. 보통은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어야할 자리에, 자전거가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삼색고양이 한 마리가 주차장 관리원이나 되는 것처럼 진지한 얼굴을 하고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네요.


자전거를 지키는 일이 무료했는지, 고임목으로 대어놓은 나무토막에 앞발을 대고 발톱을 박박 갑니다. 그런데 저 녀석 표정이 너무 웃겼어요.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들은 알 테지만, 저렇게 눈을 반달 모양으로 뜨고 입을 오므린 모습은 고양이들이 끙아(일명 맛동산)를 생산할 때의 표정과 똑같거든요. 스밀라는 힘을 줘서 맛동산을 밀어낼 때마다 입술에 '음!' 하고 힘을 준답니다.

자전거는 자동차와 달라서 앙상한 뼈대만 있으니 몸을 숨길 곳이 마땅치 않은데도, 고양이들은 곧잘 그 언저리에 모여있곤 합니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손가락을 내밀었더니, 물고 핥고, 열렬히 반응해주십니다. 그러나 한 녀석은 그저 시큰둥할 뿐...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갈길 바쁜 여행자가 아니라 산책가가 되어 동네를 슬렁슬렁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골목길로 스며들어가 한동안 머물렀으면 좋겠어요.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신나게 달리다가, 길고양이와 만나면 잠시 페달을 멈추고 여유롭게 놀기도 하면서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