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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인터뷰

상처 입은 아이 마음 글쓰기로 치유합니다 ― 이호철 선생님

by 야옹서가 2001. 7. 31.


 Jul. 31. 2001
| 변산공동체학교 교장 윤구병씨와 아동교육가 이오덕씨가 ‘해방 이후 초등학교 교육현장에서 최대의 교육성과를 거뒀다’고 입을 모아 평가한 초등학교 교사 이호철씨. 살아있는 글쓰기 교육을 실천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그가 펴낸 《학대받는 아이들》(보리)은 어른들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의 경험담을 모은 책이다. 작은 잘못으로도 매를 맞거나 입에 담기 어려운 폭언을 듣는 아이,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 때문에 늘 우울하고 슬픈 아이, 친구나 형제자매와 비교하는 부모님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이, 성추행을 당한 뒤 불안에 떠는 아이들의 모습은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경북 사투리와 평소 쓰는 입말까지 그대로 실어 아이들이 글 쓸 때의 상황과 격한 감정이 생생히 와 닿는다.

이호철 선생님은 학대받는 아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글로 풀어낼 때 ‘상처받은 기억을 겉으로 드러내어 곪지 않게 치유한다’고 설명한다. 상처는 덮어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에 축적돼 나중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어른들은 솔직하게 쓴 일기를 읽고 아이를 더 심하게 꾸짖기도 한다. 아이의 상처받은 마음을 글에서 읽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게 아니라 ‘왜 남부끄럽게 그런 일까지 일기에 썼냐’며 오히려 아이를 억압하고, 그나마 글쓰기로 뚫린 숨통마저 막아버리는 것이다.

글쓰기는 상처를 곪지 않게 드러내 치유하는 것
“아이들이 어른들에 대한 불미스런 이야기를 쓰는 것이 비교육적이란 생각은 어른들의 잘못된 사고 방식 탓입니다. 어른들의 좋은 모습과 나쁜 모습을 둘 다 직시하면서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소유물로 여기거나, 사회에서 쌓인 울분을 약자인 아이들에게 분풀이하는 일이지요.”

지금은 아이들과 떨어져 사는 생활을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이호철씨가 처음부터 교사가 되리라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가정형편상 4년제 대학을 가는 것이 어려워 2년제 대학인 안동교육대학을 들어갔고, 1975년 11월 경북 울진군에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이호철씨가 아이들의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동료인 최지훈씨가 펴내던 학급문집 《꽃교실》 일을 이어받으면서부터였다. 수업이 끝난 뒤 날마다 시간을 내 글쓰기를 지도하고 매주 학급문집을 펴내다 보면 하루 일과가 끝나는 시간이 보통 새벽 한 시를 넘겼지만 아이들 글 솜씨가 늘고 마음이 자라는 걸 보면서 피곤을 잊을 수 있었다.

“처음 학급문집 《꽃교실》을 낼 때 아직 글쓰기 지도 방향을 잡지 못했는데도 저를 믿고 글쓰기 교육에 도움을 주시고, 제 삶까지도 깨우쳐주신 이오덕 선생님은 제 마음의 아버지 같으신 분이죠. ‘이오덕 선생님이 글쓰기 지도 이론을 정립하셨는데 나는 그 방법대로 실천이라도 제대로 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좀 더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과 교육의 방법을 하나 하나 찾아내고 싶어요. 잘못된 관념들을 깨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요.”

‘참, 사랑, 땀’을 실천하는 삶
20년이 넘은 교직생활 동안 아이들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가 연구하고 고민한 흔적들은 보리출판사에서 펴낸 ‘교육혁명 시리즈’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살아있는 글쓰기》, 《살아있는 그림 그리기》,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 등의 책 속에는 이호철씨의 교실에 걸린 ‘참, 사랑, 땀’이란 급훈처럼 거짓 없이 진실하게 사는 삶, 못나고 보잘 것 없고 버려진 것들을 감싸 안는 따뜻한 삶,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삶을 실천하는 아이들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호철씨는 이번에 《학대받는 아이들》을 출간하면서 전문 지식이 부족해 구체적인 치유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처음에는 《학대받는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의 자존심’에 대한 이야기도 펴낼 계획이었지만, 둘 다 너무 무거운 주제라 일단 한 권만 먼저 펴내기로 했다.

아이들의 글을 모아 출판하면서 이호철씨가 바라는 것은 한 가지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달라는 것.

“‘나는 아이들을 학대한 일 없어’, ‘나는 아이들과 상관없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꼭 아이들의 소리를 들어줬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렇게 아이들의 소리를 모아 어른들에게 들려줄 생각입니다. 아이들의 눈으로 본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도 보여 줄 계획이고요. 이제는 보리출판사에서 의뢰받은 《살아있는 학급 운영》 책도 빨리 완성해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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