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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을 짜릿하게 감싸는 퓨전 스타일리스트 - 신발디자이너 이겸비 Oct. 31. 2001 | 나이키 스타일의 가죽운동화 옆면에 한복을 입은 요염한 여인의 모습을 프린팅한 ‘어우동 운동화’, 높이가 10센티미터는 됨직한 구두 뒷굽에 ‘나가자, 진로소주의 맛’이란 뜻의 한자를 새긴 ‘진진로미소주(進眞露味消酒) 구두’, 복슬복슬한 토끼털가죽 위에 보라색 메탈가죽으로 바를 정(正)자를 새긴 ‘바르게 살자 슬리퍼’. 세상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 듯한 독특한 신발을 만들어내는 신발디자이너 이겸비씨의 작품들이다. 원색적인 화려함과 수수한 아름다움, 진지함과 장난스러움이 묘하게 어우러진 그녀의 신발은 톡 쏘는 탄산음료처럼 자극적이면서도 달콤한 매력을 지녔다. 발을 살짝 집어넣는 순간 찌릿, 전기가 통하거나 작은 소용돌이가 이는 건 아닐까 하고 상상할 만큼이라면 설명이 될까. 동양풍.. 2001. 10. 31.
그리스 가부장제 사회가 ‘여신 죽이기’ 앞장섰죠 - 철학자 장영란 Oct. 31. 2001 | 그리스 신화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신을 말해보라고 하면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여신이 헤라다. 그런데 이 헤라는 ‘변변히 하는 일도 없이 질투와 간계를 일삼고 영웅들을 못살게 굴기만 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원래 위대한 대지모신(大地母神)이었던 헤라가 왜 그리스신화에서는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전락했을까? 그리스 철학을 전공한 장영란씨가 펴낸 《신화 속의 여성, 여성 속의 신화》(문예출판사)는 이런 의문점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녀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 내에서 결혼이라는 가부장적 제도를 통해 남편과 아내 자식간의 위계질서가 성립되면서 헤라나 아프로디테처럼 결혼한 여신들은 귄위를 잃게 되고, 아르테미스나 아테나 같은 처녀신들은 힘이 어느 정도 축소된 상태에서만 자신의 기능을 유지.. 2001. 10. 31.
아내폭력은 ‘집안 일’이 아닙니다 - 여성학자 정희진 Sep. 26. 2001 | 공적인 장소에서의 폭력과 달리, 가정 내에서의 폭력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거나 ‘집안 일’이라는 이유로 은폐돼온 것이 현실이다. 특히 가부장제 사회 내에서의 가정폭력은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이라는 문제와 결부돼 복잡한 양상을 띠며, 그 유형도 성적 학대, 의처증, 남편의 경제적 통제, 무능력, 협박, 알콜 남용, 시집과의 갈등, 외도, 폭언 등 언어적, 심리적, 육체적, 경제적, 성적 폭력을 동반한다. 정희진씨의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또하나의문화)는 이처럼 여성이 가정 내에서 경험하는 폭력을 ‘아내폭력’으로 정의한다. 서강대 종교학과 재학시절까지만 해도 여성문제에 관심 없는 ‘운동권 명예남성’이었던 정희진씨는 1992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시작한 ‘여성의 전화’.. 2001. 9. 26.
거품 속의 비수 같은 숨은 예술가를 찾아서― 미술평론가 박영택 Oct. 16. 2001 | 한 작가를 평가하는 가장 큰 기준은 무엇일까? 당연히 작품의 질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적어도 한국 미술계에서 작품의 질은 ‘선택사양’에 지나지 않는다. 화랑주와 컬렉터가 요구하는 좋은 작가의 기준은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 수상경력이 있는지, 지금 어느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지, 심지어는 집안이 얼마나 좋은지 등 작품 외적인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연, 인맥과 무관하게 작품에만 몰입하는 작가들은 작품을 평가받고 판매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화단의 제도와 권력에 얽매이지 않는 숨은 작가들 현재 경기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중인 미술평론가 박영택씨(38)는 이 같은 미술계의 병폐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봐 온 이 중 하.. 2001. 9. 16.
30대의 들판을 내달리는 축구선수처럼 살고 싶다-소설가 김별아 Sep. 11. 2001 | 대개 ‘∼처럼 살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하는 글은 많지만, ‘∼처럼 죽고 싶다’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소설가 김별아씨는 독특하게도 첫 산문집 이름을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이룸출판사)로 정했다. 작가로서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83살에 모든 걸 버리고 훌쩍 떠나 “그래, 끝이구만. 별것도 아니구만…”이란 말을 남기고 객사한 톨스토이. 김별아씨는 그를 통해 죽음의 신비주의를 걷어낼 수 있었다. 20대와 영원히 작별하고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며 삶에 대한 신비주의를 걷어낸 30대의 눈은 세상을 어떻게 관찰할까. 그 해답을 35편의 산문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별아씨는 ‘여행은 가고 싶은데 애를 맡길 핑계가 없어서’산문집을 펴냈다고 눙친다. 서른 두 살.. 2001. 9. 11.
역사의 행간에 묻힌 생활사를 발굴하는 사학자-정연식 Aug. 15. 2001 | “훌륭한 역사가는 전설에 나오는 식인귀 같아서 사람의 살 냄새를 찾아다닌다”던 사학자 마르크 블로크의 말처럼, 옛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녹아있는 생활사를 정리한 대중역사서가 출간됐다. 서울여자대학교 사학과 정연식 교수가 조선시대 생활사에 대한 자료를 모아 펴낸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1》(청년사)는 연대기적 성격의 역사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상생활의 면면이 흥미로운 에피소드 중심으로 전개됐다.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1996년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청년사)를 공동 집필했던 정연식씨는 생활사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자료를 모아왔다. ‘조선조의 탈것에 관한 규제’, ‘조선시대의 시간과 일상생활’, ‘조선시대의 끼니’ 등 논문도 틈틈이 발표했다. 그렇게.. 2001.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