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로이드 고양이] 005. 고양이 젤리, 곰돌이 젤리 고양이라면 누구나 젤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른바 '곰돌이 젤리'라는 것인데요. 네 개의 발바닥에 말랑한 쿠션 재질이 있어서 고급 신발에 장착된 에어쿠션처럼 뛰어내릴 때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고양이 젤리라고 하지 않고, 곰돌이 젤리로 부르는 이유는 발바닥의 제일 넓은 면이 테디베어의 얼굴과 두 귀를 꼭 닮았고, 네 발가락은 각각 테디베어의 팔다리 모양 같아서 그렇답니다. 포도젤리처럼 까맣던 발바닥은 흙먼지로 희뿌옇게 변하고 , 야들야들 부드러웠던 분홍색 젤리에 굳은 살이 생기고 때가 낍니다. 길고양이들이 때때로 발바닥을 열심히 핥는 건, 뭔가 달콤한 위로가 그 안에서 스며나오기 때문 아닐까요. 인간이 고양이의 폭신폭신한 발바닥을 어루만지며 위로를 받는 것처럼. 길고양이의 발바닥 젤리를 보면서 짠.. 2010. 6. 3. 식빵에서 등나무로 변신한 길고양이 천년 묵은 여우는 사람으로 변신을 한다지만, 그건 전래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싶지요. 하지만 우리 주변에 흔한 길고양이도 나름대로 자신의 장기를 활용해서 변신할 줄 안답니다. 단, 이것은 아무 고양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섣불리 따라하다 인간에게 혼쭐 나는 길고양이가 없길 바랍니다. 길고양이 변신술에 가장 필요한 것은 주변 환경이니까요. 이 길고양이는 처음 만났을 때 잘 구운 식빵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계란물로 한껏 무늬를 낸 카스테라처럼, 고운 줄무늬를 온몸에 바르고 있었지요. 저를 빤히 바라보는 고양이는 뭔가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사실 등나무로 변신할 줄 안다옹." "아니, 지금 그 표정은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거냐옹?" 제가 뜨악한 표정.. 2010. 6. 2. 길고양이가 걷는 만리장성 사람마다 즐겨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다니는 가장 빠른 길을 선호하는 사람, 주변에 풀과 나무가 많아서 보는 즐거움이 있는 예쁘고 아기자기한 길을 선호하는 사람, 지름길보다 돌아가더라도 오가는 사람이 많고 가로등도 많아서 음침하지 않아 보이는 길을 최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사람. 그럼 길고양이가 선호하는 길은 어떤 것일까요? 길고양이가 즐겨 다니는 길은 사람이 쉽사리 자신에게 접근할 수 없는, 만리장성처럼 높고 길다란 담벼락 위의 길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그저 낡고 허술한 담벼락에 지나지 않지만, 길고양이의 작은 발로 꾹꾹 즈려밟으며 지나다니는 그 길은, 어떤 적의 도발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또 잽싸게 방어태세를 취할 수 있는 곳입니다. 비록 길고양이를 위해 지어진 시설은 .. 2010. 6. 2. [폴라로이드 고양이] 004. 등받이 길고양이 두 마리가 햇빛 아래 몸을 옹송그리고 잠을 청합니다. 은신처에 숨어 편히 누워서 자면 될 텐데, 마침 따끈하게 데워진 돌방석 위를 떠나기가 싫었던 모양입니다. 엉덩이는 엉거주춤 붙이고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어디에든 머리를 좀 기댔으면 하는 눈치입니다. "웅...졸리긴 한데... 그냥 자긴 불안하고...." "나한테 기대면 되잖아. 얼른 코 자" "정말? 그럼 너만 믿고 잔다." "..." 말은 그렇게 해 놓고 둘 다 곤히 잠들어 버렸습니다. 서로 기대니 편안했나 봅니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았을 때 오래 앉아 얘기할 일이 생기면, 등받이 의자가 있는 곳인지 아닌지부터 먼저 살피게 됩니다. 척추디스크 진단을 받은 뒤로, 등을 기대지 않고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뻑뻑해지는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습.. 2010. 6. 1. 길고양이, 세파에 시달린 중년의 눈빛 흰색 물감에 퐁 담갔다 꺼낸 것처럼 꼬리 끝만 하얀 길고양이를 만났습니다. 강한 아이라인 속에 금빛 눈동자가 번뜩이는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입니다. 먹이를 찾다 저와 눈이 딱 마주친 고양이의 눈에 경계심이 가득합니다. 세상 물정 다 알아버린 중년의 눈빛. 저 고양이도 어느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다면 "우리 고등어, 아이라인도 참 예쁘다"는 칭찬에 내심 우쭐대며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길 위에서의 거친 삶은 고양이의 얼굴을 세파에 찌든 아저씨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길고양이는 경계심을 풀지 못할 때 낮은 포복으로 이동합니다. 잔뜩 수그린 상체와 힘껏 모아쥔 앞발에는 금방이라도 달아날 수 있도록 발가락 하나하나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 모습이 꼭, 주눅들어 어깨 펴지 못하고 걷는 아저씨 같습니다.. 2010. 5. 31. 고양이 입양과 연애결혼의 공통점 스밀라가 우리집 식구가 되기 전에, 만약 나의 첫 고양이를 선택한다면 어떤 고양이일까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예쁜 고양이는 많지만, 누구나 바라던 이상형은 있는 거잖아요. 다른 집의 고양이들을 보면서 막연하게나마 생각한 이상형이 있다면 '분홍 입술에 분홍 발바닥을 가진 고양이였으면...' 하는 거였습니다. 특히 웃는 것처럼 분홍색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고 잠든 노랑둥이들 사진은 코피가 날 만큼 예뻐 보였죠. 딸기젤리 같은 앙증맞은 발바닥은 또 어떻구요. 그런데 인생이 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라서, 저의 첫 고양이는 까만 입술, 까만 발바닥을 가진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스밀라가 다크서클 낀 눈을 부릅뜨고 한쪽 입술을 일그러뜨린 채 저를 볼 때면, 그 얼굴이 왜 그리 귀여워 보이는지. 제일 .. 2010. 5. 30.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