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여행'의 즐거움 강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산책 나온 할머니가 잠시 사라진 동안, 나는 젖소무늬 길고양이의 뒤를 따라갔다. 낯선 사람을 만난 고양이가 대개 그렇듯이, 젖소고양이도 인기척을 느끼고는 얼른 구석진 곳으로 숨는다. 그때 내가 들고 있던 짐들은 15킬로그램쯤 되는 배낭 1개, 20인치 기내용 트렁크 1개, 10킬로그램쯤 나가는 카메라 가방, 그리고 우산. 하여간 그 짐들을 바리바리 메고 끌고 길고양이를 따라갈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오사카 체류 마지막 날이었고, 공항으로 가던 길에 잠시 들른 거라 코인로커에 짐을 맡길 생각도 못한 터였다. 3초쯤 고민하다가, 기내용 트렁크는 길에 세워두고, 귀중품이 든 배낭은 메고, 카메라는 들고 젖소고양이를 따라 뛰었다. '이거 무슨 극기훈련도 아니고...'하고 잠시 생각했.. 2009. 2. 13. 자전거 타는 일본의 강아지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 고양이가 자발적으로 산책을 즐기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스밀라는 우리 집으로 입양되기 전에 한번 버려졌던 기억 때문인지, 밖에 나가는 걸 극도로 무서워한다. 얌전히 품에 안겨 있다가도, 신발 신고 나가려는 시늉을 하면 침을 꿀꺽 삼키면서 발톱을 내밀어 내 어깨에 콱 박고는, 뒷발로 밀치며 아래로 뛰어내린다. 한번은 바깥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이동장에 넣어 집 앞 공원으로 데리고 나왔더니, 스밀라는 땅바닥에 붙은 껌처럼 벤치를 껴안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괜히 불안한 마음만 자극할 거 같아 다음부터는 고양이와 함께하는 산책을 포기했다. 고양이가 겁먹지 않게 바깥구경을 시켜줄 수는 없을까? 오사카의 복고양이 신사에서.. 2009. 2. 12. 고양이의 표정연기 '귀엽네' 고양이는 기분전환 삼아 그루밍을 자주 합니다. 털에 침을 묻혀 청소하는 거지만, 마치 표정연기를 연습하는 것 같은 재미난 얼굴을 볼 수 있어요. 스밀라도 평소의 점잖은 모습과 달리 그루밍 중에는 색다른 표정연기를 보여준답니다. *한번 웃자고 만든 설정 샷이니 너무 진지하게 보진 마시길^^; 평소의 스밀라 모습. 그러나 스밀라는 곧 엄청난 사건을 겪게 됩니다.. 집에 못보던 새 캣타워가 들어온 걸 발견하고 득의만면한 웃음을 짓는 스밀라. 하지만 예전부터 캣타워 대신 즐겨놀던 낡은 의자가 없어진 걸 깨닫고, 망연자실합니다. "캣타워 필요없다, 내 의자 돌리도~" 하지만 의자는 너무 낡아 이미 분리수거해 버린 지 오래... 스밀라는 이를 악물고 원통해하는군요. 스밀라가 하도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길래, 보다못.. 2009. 2. 11. 아름다운 맨섬고양이 기념주화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맨섬고양이 기념주화에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일본의 꼬리짧은 고양이 ‘재패니즈 봅테일’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영국령인 맨섬에도 꼬리짧은 ‘맨섬고양이’(manx cat)가 있습니다. 이 맨섬고양이를 기려 1988년부터 제작된 고양이 기념주화에는, 매년 다른 종의 고양이 그림이 정밀하게 새겨져 수집욕을 자극합니다. 거문도 고양이 관련 아이템을 찾고 있던 저에게는 눈이 번쩍 뜨이는 기념품이었습니다. 맨섬고양이 역시 섬고양이거든요. 맨섬고양이 주화에는 금화, 은화, 백동화의 세 가지 버전이 있고, 이것의 변종으로 고양이 문양에 색을 입한 채색주화가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고양이 주화를 전부 다 모으기엔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겠지만, 좋아하는 타입의 고양이가 새겨진 은화나 백.. 2009. 2. 6. 숨이 섞인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스밀라가 현관 앞 방석에 몸을 동그랗게 부풀리고 고요히 앉아있다. 예전에는 신발 벗는 곳까지 걸어나와 우두커니 앉아있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매번 붙잡혀 네 발을 닦이고 나더니,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대신 현관까지 와서 내 다리에 머리를 부빈다. 온몸으로 환영인사를 하는 스밀라를 번쩍 안아들고 얼굴을 바짝 댄다. 아르마딜로처럼 등을 둥글게 한 스밀라가 색색ㅡ 숨을 몰아쉰다. 앙증맞은 갈색 코에서 흘러나오는 콧바람이 얼굴에 닿는다. 살아있는 것이 내쉬는 숨은 따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차다. 그렇게 조그만 코에서 흘러나오는 콧바람도 나름 바람인 거다. 나도 지지 않고 스밀라 얼굴에 콧바람을 흥흥 불어넣다가, 스밀라가 뿜어낸 숨을 들이마신다. 허공에서 숨이 섞인다. 2009. 2. 5. 인간과 동물 사이, 몽환적인 인형들 [예술가의 고양이 1] 인간과 동물 사이, 몽환적인 인형들-인형작가 이재연 인형작가 이재연의 작품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환상동화 속에서 걸어나온 듯한 그 인형에는, 낯설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경계를 의식하지 않는 존재들이 늘 그렇듯,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어디로든 스스럼없이 스며든다. 기묘하고 매혹적인 판타지를 인형으로 빚어내는 작가 이재연을 만났다. 이재연의 일산 작업실 입구는 피규어로 쌓은 성벽 같다. 어두운 지하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유리관처럼 투명한 상자에 담긴 피규어들이 벽을 따라 빼곡히 들어찼다. 그의 작업실이 피규어 쇼핑몰의 창고도 겸한 까닭이다. 피규어 성벽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니, 그제야 작업공간이 보인다. 컴퓨터 .. 2009. 2. 5. 이전 1 ··· 25 26 27 28 29 30 31 ··· 5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