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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킬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 정식 개봉(3.27~) 삵 한 마리가 대로변에 누워 있다. "이제 그만 일어나, 자동차가 달려들지도 모르잖아." 귀에 대고 속삭여도, 녀석은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길을 건너다 로드킬을 당했기 때문이다. 고양이과 동물 중에서는 길고양이와 가장 많이 닮은지라 삵을 보면 친근한 마음이 들곤 했는데... 포스터 속 죽은 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아직 사체 훼손은 심하지 않지만, 누군가 치워주지 않으면 곧 차 바퀴에 짓눌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고 말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로드킬을 다룬 영화 를 상영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2007인디다큐페스티벌 상영작 중 하나로 한 달 가까이 일민미술관에서 상영했지만, 다니던 회사에서 창간할 잡지 준비로 정신없던 무렵이라 가질 못했고 내내 마음이 쓰였다. 한데 이번에 하이퍼텍나다에서 .. 2008. 3. 11.
고양이가 말없이 내려다볼 때 아침에 눈을 뜨면, 고양이가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가 가끔 있다. 어제 아침도 의자 위에 도사리고 앉아서 저렇게 빤히 보고 있더라는...스밀라가 '난 네가 어젯밤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듯한 눈초리로 내려다볼 때면,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나 하고 돌이켜본다. 최근 들어 스밀라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일이라고는, 뭉친 옆구리털 풀어준 것밖에 없는데. 의자 밑을 내려다보는 스밀라의 등을 위에서 바라보면 이런 모습. 이젠 회색 털이 풍성하게 자라서, 어쩐지 긴머리 아가씨 같은 느낌이 든다. 이불로 내려와서도 여전히 새침한 표정. 2008. 3. 9.
야나카 뒷골목 고양이들 닛포리역 근처 재래시장 야나카 긴자로 가는 길에, 혹시 고양이가 있을까 골목길을 들여다보았더니 있었다. 방울이 달린 목줄을 했고, 근처에 주홍색 밥그릇도 놓인 걸 보니 집고양이다. 집고양이나 길고양이나 관계없이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듯, 방울 단 고양이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집안에만 갇혀 사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는 고양이들. 그리고 고양이만큼 자주 볼 수 있었던 자전거. 교통비가 비싼 일본에서라면, 자전거가 가장 저렴한 이동 수단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찍는 동안 스르르 나타난 고등어무늬 얼룩 고양이가, 흰고양이와 카메라 사이로 끼어들어 엉덩이를 붙이면서 슬며시 내 눈치를 본다. 2008. 3. 2.
스밀라와 놀아주기 방문을 조금 열어두고 문틈으로 손가락을 꼼질꼼질하면, 스밀라가 몸을 잔뜩 움츠리고 달려올 준비를 한다. 사냥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턱은 땅바닥에 닿을 듯이 낮추고, 앞발은 짐짓 몸 아래 슬쩍 감추고, 엉덩이는 살짝 들고, 뒷발은 동당동당 제자리뜀을 하다가 순식간에 내달린다. 제딴에는 '들키지 않게 몰래' 시동을 거는 것이겠지만, 엉덩이를 실룩거리는 것만 봐도 녀석이 뛰어올 게 빤히 보이니 웃음만 날 뿐이다.우다다 달려온 스밀라 앞에서 얼른 손가락을 치우면, '아까 그 녀석은 어디 감췄어?' 하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게 기울여 문틈 너머로 눈길을 주면서. 스밀라는 집에 사람이 있는 걸 알면 혼자 놀려고 하질 않아서, 문 앞에 앞발을 딱 모으고 앉아 고함을 .. 2008. 3. 2.
너의 맑은 눈 사람이든 동물이든 관계없이 눈을 마주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그의 눈동자에 내가 담겨 있고, 내 눈동자에 그가 담겨있다는 건, 생각해보면 경이로운 일이다. 탁구공만 한(고양이에게는 유리구슬만 한) 동그란 무언가에 온 세계가 담긴다는 것도, 두 눈이 마주보는 순간 두 세계가 이어진다는 것도 그러하다. 그러나 시선이 마주치지 않으면, 그 경이로운 순간은 금세 사라져 버린다. 열릴 뻔했을지도 모르는 한 세계가 다시 닫히는 것이다. 2008. 2. 29.
15만 원짜리 비닐 수십 만 대가 팔린 '대박 상품'이라는 음식물쓰레기 건조기를 샀다. 축축하고 퀴퀴한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게 유쾌한 일도 아니고, 말려서 버리면 간편하고 좋을 것 같았다. 물건은 주문한 지 이틀만에 도착했다. 온라인 숍 고객 후기에는 배송이 늦다는 불평이 가득했는데 의외였다. 기대하면서 페트병에 모아 둔 음식물쓰레기를 붓고 건조기를 작동시키는데, 동생이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부른다. 1회 건조할 때마다 19시간을 연속 가동해야 한단다. 처음 듣는 얘기다. 사이트에 접속해 광고 페이지를 읽어보니 과연 '19시간 사용 시 한 달 전기료 2천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말은 '한 달 동안 배출된 음식물쓰레기의 총량을 건조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한 달 내내 모두 더해서) 19시간' 정도이고, 전기료의 총합도 .. 2008.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