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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안은 소녀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 나는 길에서 동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강아지든 고양이든, 보드라운 털을 만져보고 싶어서 어쩔 줄 몰랐고, 만질 수 없다면 한참 쳐다보기라도 해야 했다. 덩치 큰 진도개를 겁도 없이 만졌다가 물려서 원피스가 찢어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 옷만 물려서 다치지는 않았지만... 어린 길고양이를 보고 '그냥 구경만 할까, 한번 안아볼까' 마음속으로 고민하는 듯한 여자아이를 보면서, 나도 어린 시절에 저랬을까 싶어 웃음이 났다. 아이는 한동안 망설이더니 고양이를 덥석 안아들었다. 지금껏 누군가를 안아주기보다, 누군가의 품에 안기는 일에 더 익숙했을 어린 아이이니, 고양이를 안는 폼은 영 서투르다. 가뜩이나 고양이 엉덩이가 아래로 쑥 빠질 것 같은데다가, 아깽이가 바둥거리며 뛰어.. 2008. 10. 3.
여행지에서 맺은 '고양이 이웃'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리워지는 곳은, 행복한 길고양이가 사는 동네다. 길고양이를 귀찮거나 몹쓸 동물로 여기지 않고 사랑스럽게 여기는 곳, 길고양이와 함께 스스럼없이 장난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풍경 앞에 서면, 그 속으로 스며드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진다.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없어도, 다시 가보고 싶어진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곧 돈이라고들 한다. 새로운 것을 보아도 모자랄 시간에, 이미 갔던 동네를 다시 가는 건 너무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들 한다. 그러나 새로움에 환희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익숙함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오래된 기억 속의 풍경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픈 사람도 있다. '모범적인 여행 루트'와는 거리가 먼 여행 일정을 짜서, 굳이 야나카 긴자 입구의 .. 2008. 9. 24.
고양이가 인도하는 백화점 속 헌책방 작년 여름 도쿄의 진보초 헌책방거리에 갔을 때, 고양이가 등장한 깜찍한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고양이가 광고모델을 맡은 헌책시장이라... 게다가 시내 한복판인 신주쿠 케이오백화점에서 헌책을 판다고? 귀여운 고양이 밀짚모자와 피크닉 바구니, 지도와 책... 여름휴가철에 잘 어울리는 연출이다. 헌책시장에 고양이를 내세운 것도 궁금했지만, 도대체 백화점에서 반짝 열리는 헌책시장이란 어떤걸까 궁금했다. 궁금증이 도져서 꼭 가보고 싶었지만 작년에는 여행 일정이 끝난 뒤에나 헌책시장이 열리는 터라 아쉽게 포기했는데, 올해엔 헌책시장이 열리는 기간을 맞춰 다시 도쿄를 방문했기에 드디어 찾아가볼 수 있었다. 오다큐선 전철 내부에 걸린 케이오백화점 헌책시장 광고. 올해에도 어김없이 고양이가 등장해 헌책시장 홍보대사를 .. 2008. 9. 2.
어린쥐 사냥하는 일본의 길냥이 여행지에서는,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따라 하루가 달라진다. 아침 골목길에서 어린쥐를 사냥하던 길고양이를 만난 그날은 내게 '운수 좋은 날'이었다. 한번도 직접 볼 수 없었던 쥐사냥 장면을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길고양이에게는 어쩌면 운수 나쁜 날이었을지도. 나는 여행지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기보다 타박타박 걷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차로 이동하면 이동시간은 단축될 것이다. 일찌감치 문을 닫는 일본 관광지에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이 지점에서 저 지점까지 이동하기까지 버려지는 시간을 줄이고,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습기, 열기, 모기'의 3종 세트와 싸워야 하는 한여름의 일본여행이라면, 그냥 속 편.. 2008. 8. 30.
나 억울해! 검은 길고양이의 항변 나는 사람들이 재수없다고 구박하는 까만 고양이. 인상이 어둡다고, 마녀의 고양이 같다고, 심지어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 까지 들먹이며 나를 불길하다고 해. 눈처럼 하얀 털옷을 입은 내 친구가 빛의 고양이라면, 나는 어둠의 고양이지. 내가 친구와 함께 있을 때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해. "아, 저 예쁜 흰고양이 좀 봐. 어쩜 길고양이인데도 저렇게 단정하고 깔끔할까?" "근데 저 까만 애는 뭐래...무섭게 째려보는 것 좀 봐." 사실 내 눈매나 친구 눈매나 비슷한데, 나는 왜 만날 이럴까. 하지만 나도 열심히 털 고르기를 한다고. 흰 옷에 먼지 묻으면 티도 안 나지만, 까만 옷은 얼마나 간수하기 힘든 줄 알아? 비듬 하나 떨어져도 지저분한 놈 소리나 듣고 말이지. 뭐, 혀빠지게 닦아도 별로 티는 안 나.. 2008. 8. 27.
일본 공동묘지에서 열린 고양이 만찬 화려한 식탁도 진수성찬도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따뜻해지는 고양이 만찬. 만약 일본여행 중에 야나카 레이엔(谷中霊園)을 들를 기회가 있다면, 운좋게 그 광경을 목격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일본의 유명한 공동묘지 야나카 레이엔에서 열린 '고양이 만찬' 장소를 찾아가봤다. 일본에서 길고양이를 만날 확률이 높은 곳을 세 군데만 꼽으라면 단연 묘지, 절, 주택가 골목이다. 골목이야 한국에서도 길고양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묘지나 사찰에 길고양이가 있다는 건 의외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외진 곳에 있는 데다 인적도 드물어 먹을것도 없어 보이는 한국 묘지와 달리 주택가 한가운데서도 묘지를 흔히 볼 수 있어, 머물 곳이 마땅치 않은 고양이들의 쉼터로 애용된다. 특히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의 손길은 이들 묘지 고양.. 2008.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