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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고양이가 좋아하는 '자동차 동굴'

by 야옹서가 2009. 2. 23.
가끔 자동차 아래를 보면 고양이가 동그랗게 몸을 옹송그린 채

앉아있습니다. 높은 곳을 좋아해서 캣타워는 물론이고 책꽂이

위로도 종종 뛰어올라가는 집고양이들을 생각하면,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어둠의 세계'로만 숨어드는

길고양이들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그저 인간 위주의 관점인지도 모릅니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빛의 밝기에 따라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동공

덕분에 어두운 곳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다닐 수 있고, 원래부터

야행성 동물에 가깝다보니 밤의 어둠을 더 익숙하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그곳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건, 내가 아는 고양이의 습성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친근한 고양이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나는 자동차 아래 쭈그리고 앉아 고양이를 구경합니다.

자동차 동굴 아래에서 몸을 숨기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리를 구경하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한번도 와 보지 못한 곳을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걱정도 두려움도 가라앉고, 어느새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내가 고양이를 구경하고 있을 때도 고양이는 나를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그냥 제 옆에 쌓인 맥주상자나 잡동사니 더미처럼, 혹은 자기 머리 위에 있는 자동차처럼

무생물 같은 존재인 양 담담하게 대합니다.


어둠침침한 자동차 동굴에 가장 어울리는 드레스 코드가 있다면, 역시 까만 털코트겠지요.

몸도 까맣고 그늘도 까매서, 자동차 아래 숨은 고양이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네요.


자동차 동굴 아래서 만나는 고양이들 중에는,

한쪽 눈만 살짝 내놓고 반짝반짝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녀석도 있고..


쓰레기가 뒹구는 자동차 밑에 몸을 옹송그린 채 추위를 피하는 모습도 만나게 됩니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 부신 듯 찡그리면서도, 고양이는 달아날 기색이 없습니다.

기껏 구한 자동차 밑 동굴의 아늑한 공간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서이겠지요.

 

동굴에 몰래 숨은 듯 자리를 잡은 길고양이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넉살 좋게 네 다리를 뻗고,

자동차 아래 그늘이 제 안방인 양 여유를 부리는 녀석도 만납니다.

저는 동네 터줏대감 고양이에게서 풍기는, 대책없는 자신감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누워있어도 아무도 자길 건드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거든요. 


오늘도 집에 들어가는 길에, 자동차 밑에 숨은 고양이는 없는지 기웃거리게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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