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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길고양이, 코에 담긴 고단한 삶

by 야옹서가 2009. 2. 24.

저는 사람을 만나면 손을 봅니다. 물론, 가장 먼저 얼굴을 보며 눈을 맞추고 인사합니다만,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유심히 바라보는 것은 손이지요.  손금을 보는 건 아니고 손의 느낌이나 인상을 봅니다.
 
손에는 그 사람이 말로 들려주지 않는 삶의 내력이 스며있습니다. 얼굴을 성형하는 사람은 많아도, 손을 성형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손은 그 사람이 방심한 채 드러내는 맨얼굴 같은 부분인지도 모릅니다. 예민한 신경이 느껴지는 가늘고 섬세한 손, 오랫동안 같은 도구를 힘줘 잡아 단단히 못박힌 손, 이상하리만큼 손톱을 바짝 깎아서 아파보이는 손, 자잘한 흉터가 많은 손… 손이 인상 깊은 사람을 만나면, 나중에는 그 사람의 손이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하지만, 길고양이를 만나면 가장 먼저 보는 곳은 코입니다. 길고양이의 콧잔등에는, 그 고양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이 담겨있거든요. 아직 험한 세상을 겪지 않아 반질반질 윤이 나는 분홍코는 어린 길고양이에게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먹이 환경이 좋은 고양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길고양이들은 콧잔등이 까맣습니다.  인간이 버린 음식 찌꺼기를 뒤져서 배를 채우기 때문에, 코끝이 기름때로 절어버린 게 아닐까 짐작할 따름입니다. 때론 콧잔등의 털이 벗겨진 고양이도 만나게 됩니다.

길고양이의 코를 유심히 보게 된 건 ‘행운의 삼색고양이’  때문이었습니다. 2002년 여름에 처음 만났고, 한동안 모습을 감췄다 1년 만에 엄마가 되어 나타난 고양이의 콧잔등은 털이 듬성듬성해지고 세월의 때가 묻어 있었습니다.

아기고양이 시절 보았던, 솜털 뽀송뽀송한 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길에서 사는 신산스러운 삶, 제 몸 하나 건사하기 급급한 길고양이 어미로 산다는 것의 고단함이 느껴져, 가슴 한 구석이 뻐근했던 기억이 납니다.

잠적 1년만에 새끼를 데리고 나타난 행운의 삼색고양이. 엄마 노릇이 힘들었던지, 뽀얗던 코털도 벗겨지고 앞발 털도 빠졌다.

코의 상태 때문에 오래 기억이 남는 고양이로는 딱지냥이 있습니다. 자주 들르는 고양이 은신처에서 1년 넘게 지켜보는 동안 콧잔등에 내내 동그란 딱지 같은 것이 앉아있어, 딱지냥이라고 부릅니다. 

이후로는 길고양이를 만날 때마다 코끝의 상태로 생활 환경을 짐작해보곤 합니다. 세상의 길고양이들이 엄마 뱃속에서 갓 태어날 때 그랬던 것처럼, 깨끗하고 뽀송뽀송한 콧잔등을 지닌 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또 다른 길고양이를 만나러 거리로 나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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