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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엄마가 된 '행운의 삼색 고양이'

by 야옹서가 2003. 8. 9.
한 생명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처럼 경이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같은 장소에서 꾸준히 길고양이 사진을 찍다 보면,

마냥 까불며 놀기만 할 것 같던 어린 고양이가 어느새 어엿한 엄마가 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밀레니엄 타워에서 만난

‘행운의 삼색 고양이’ 역시 1년 뒤에 네 마리의 새끼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어린 고양이답게 토실토실하던 몸이 자라서 늘씬해지고,

얼굴 살도 홀쭉하게 빠져서 그런지 처음에는 행운의 삼색 고양이라는 걸 몰라볼 정도였다. 하지만 집에 와서 찍은 사진을 훑어보는데

얼룩무늬가 어쩐지 낯익어, 1년 전 사진과 대조해보니 그 녀석이 확실했다.



새끼 네 마리를 홀몸으로 건사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걸까. 하얗게 빛나던 콧잔등에도 때가 묻고, 찹쌀떡처럼 폭신하게 보이던

발등의 털도 듬성듬성 빠져 볼썽사납게 변했다. 불과 1년 만에 초라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어미 고양이를 보면서, 그동안

무슨 일을 겪었을까 궁금했다.


고양이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한동안 화단에 앉아 있다가 멀리 가 버렸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벤치 위로 훌쩍 뛰어오르더니, 등을 돌린 채 밀레니엄 타워 주차장 난간에 몸을 누이고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기 싫다는 듯이, 단호한 태도로. 


평소 같았으면 끝까지 고양이를 뒤따라가 코앞에서 사진을 찍었겠지만, 그날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배고프다고 보채고,

장난친답시고 달려들어 여기저기 물어뜯는 새끼 고양이를 재워놓고 잠시 휴식을 청했을 어미 고양이를 귀찮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잠깐이나마 어미 고양이가 온전히 쉴 수 있기를, 그 짧은 휴식을 아무도 깨뜨리지 않기를 바라며

조용히 물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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