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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보면 일단 달아나고 보는 길고양이지만, 따라갈 수 없는 좁은 틈새로 달아나거나 어느 정도
안전거리를 확보했다고 믿으면 여유가 생깁니다.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저를 돌아보는 모습에서 조금은
안심한 모습이 느껴집니다.
이제는 괜찮겠지 하는 표정으로 엉거주춤 엉덩이를 내려놓는 것을 보면, 가까이 가지 못할 것을 고양이도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냥 가버리지 않고 잠시 머물러 눈인사를 해주는 모습에 어쩐지 정이 갑니다.
고양이를 찍으러 다니다 보면 유독 애착이 가는 녀석이 있는데, 이곳에 사는 고양이 중에서도 제겐
카오스 무늬의 엄마냥과 노랑둥이 아기가 그렇습니다. 두 녀석이 살아가는 흔적을 연사로 담느라
메모리가 꽉 차고 나면, 집으로 가는 길에 또 다른 고양이와 마주쳐도 여분의 메모리가 없어
눈도장만 찍은 채 내려오곤 했습니다. 이 날은 섭섭하게도 윗동네에서 두 녀석을 만나지 못하고
허탈하게 언덕길을 내려가던 길이었는데, 그게 전화위복이었던 걸까요? 메모리 용량이 남은 덕에
이 녀석을 포함해서 근처의 다른 친구들 사진까지 여유롭게 찍을 수 있었으니까요.
살아가면서 운수 나쁜 날이라 생각했던 날이, 전화위복이 되어 운수 좋은 날로 변하기도 한다는 걸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제게는 길고양이가 선물해준 '운수 좋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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