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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고양이 스밀라

병원 다녀온 날, 심기가 불편한 고양이

by 야옹서가 2011. 6. 26.


스밀라가 신부전 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간다.

치료를 시작하면서 여러 수치가 안정적인 범위로 접어들었고, 병원 검진도 3개월 간격으로 

하게 되면서 한동안 투병일지 적는 걸 걸렀는데, 최소한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만이라도

기록해놓아야겠다 싶었다. 미미한 변화라고 해서 기록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기억을 못해서

후회할 수도 있으므로... 어제가 스밀라의 정기검진 예약일이라 병원에 다녀왔기에 기록해둔다.


병원 예약 날짜를 잡을 때만 해도 이렇게 비가 많이 올 줄 몰랐는데, 예고도 없이 이른 장마가 시작되어 

이동장을 가지고 병원에 가는 길이 힘들다. 이동장과 스밀라 무게를 합하면 6kg 정도인데

혼자 들고 가는 게 힘드니 동생이 스밀라가 탄 이동장을 들어주곤 한다.


병원에 즐겁게 가는 고양이가 어디 있을까마는, 평소에는 이동장에 안 들어가려 버티는 정도에서 끝나더니, 

어제는 종합검사를 할 것을 육감으로 알았는지 이동장 안에서 몇 번이나 불만 어린 목소리로 앵알거린다. 

스밀라는 3개월마다 혈액검사, 6개월마다 뇨검사와 방사선 촬영, 초음파 촬영을 포함한 

종합검사를 받는데, 어제는 종합검사를 받아야 하는 날이었다. 특히 뇨검사를 하면 방광에 바늘을 꽂아

소변을 빼내야 해서 피검사만 할 때보다 스밀라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소변검사할 때

배 언저리를 닦은 소독약이 털을 적셔서 이동장 안에 들어가면 소독약 냄새가 코를 톡 쏠 정도라,

냄새에 민감한 고양이들이 힘들겠다 싶은데 소독을 안할 수는 없으니 방법이 없고.


검사가 끝나 병원 테이블에 돌아온 스밀라는 얼른 집에 가고 싶어서 제발로 이동장 안에 들어가버린다.

이동장 안으로 들어가면 집에 갈 거라는 걸 알기에. 왜 나를 바늘로 찔렀냐고, 성이 나서

하악거리는 스밀라의 등을 토닥토닥 해주면서 약이 다 지어지기를 기다린다. 

보통 토닥여주면 그릉거리는데, 병원에서는 심통이 나서 가만히 있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상태가 더 나빠지는 일 없이 BUN은 41, Cre은 2.1로 정상범위와 큰 차이가 없다. 

석 달치 약값과 100ml 수액 30개, 종합검사비를 포함한 병원비는 약 71만원. 한 달에 24만원 쯤이다.

예전에는 한 달 평균 30만원 정도 들었던 것 같은데, 그나마 4월부터 하루에 한 번만 약을 먹어도 

괜찮을 정도가 되었고, 칼시트리올도 처방받지 않아서 약값만 약간 줄었다. 다만 단백뇨 기가 있는 것 같아

정밀검사를 보냈는데 월요일 저녁에 결과가 나온다고 하니 그 결과만 확인하면 될 듯.


3일에 한 번씩 놓는 피하수액도 주사 간격을 좀 띄워봐도 괜찮겠다고 하셨다. 탈수 증상도 많이 잡혔으니

수액을 2주 정도 맞히다가 잠깐 끊어보면 어떨까 하셨는데, 이미 석 달치 수액을 받아간 데다가

3개월 동안 수액을 안 맞히면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들어서, 일단 5일 간격으로 늘려보면서 상태를 지켜보기로.  

수액줄과 바늘은 의료기기 판매사이트에서 싸게 구할 수 있는데, 100ml 수액이 4800원이라

수액을 도매로 구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겠지만 별 방법이 없다. 약국에서도 팔지 않고...



병원에 다녀온 스밀라가 기분전환 겸 피신해 있는 곳은 베란다방 책꽂이 맨꼭대기층 은신처다.

동생이 이동장을 내려놓자마자 앵 울더니 내 방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베란다 책꽂이로 뛰어올라갔다.

거기 있으면 등도 시원하고 기댈 수도 있고 방해도 받지 않고. 그래서 좋아하는 모양이다.

조금 편안한 얼굴이 되어 내내 잠을 잔다. 병원까지 왕복 세 시간에, 검사하느라 오줌보를 바늘로 찔려,

팔목에서는 피 뽑아, 다른 진료받는 동물들 울음소리도 들려, 여러가지로 피곤하고 힘든 하루였을 것이다.


컴퓨터 책상이 있는 내 자리에서 이렇게 스밀라 있는 곳을 올려다보면, 무슨 성벽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 스밀라도 그런 느낌 때문에 이 자리를 좋아하는 거겠지.



스밀라는 그렇게 아무도 범접하지 못할 성의 맨 꼭대기 방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힌다. 어제도 오늘도

그 자리를 고집하면서... 잠깐씩 외출하는 것 빼고는 다시 이 자리로 올라와 오랜 시간을 보낸다.

금세 그윽한 표정을 짓는 스밀라 얼굴을 보면서, 내게도 스밀라의 은신처 같은 다락방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식빵 굽는 고양이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구석에 가만히 웅크려 있으면 마음이 좀 조용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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