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 이사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번잡스런 이삿날 당일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기 때문에, 자칫하면 고양이와 이산가족이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귀중품이나 파손 우려가 있는 물건은 바퀴 달린 배낭에 담아
운반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거기에 귀중품 목록이 하나 추가되었으니
스밀라가 타고 있는 바퀴 달린 이동장입니다.
스밀라와 함께 병원 다닐 때 쓰려고 2년 전에 급히 산 이동장인데,
바퀴가 작아 아스팔트 도로를 끌고 다닐 때면 덜덜덜 소리와 함께
진동이 크게 일어나는 바람에, 그 안에 타고 있으면 어지러울 것 같아
한동안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다시 꺼내어 썼답니다.
이사가 끝나는 저녁까지 스밀라를 내놓지 못할 것 같아, 이삿짐센터에서
사람이 오기 전까지는 밖에 내놓았다가 벨소리가 울리면 바로 이동장에
태울 생각이었는데, 아침에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스밀라를 미처
이동장에 태우기 전에 이삿짐센터 아주머니가 방문하신 것이죠.
아마 이사하는 날이라 문만 닫고 자물쇠를 잠그지 않았던가 봅니다.
아주머니가 신발 신은 채 뚜벅뚜벅 집안으로 들어오니 스밀라가 놀라서
“습격이다, 습격이야!” 하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달립니다.
벨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을 때는, 동생이 스밀라를 이동장에 넣으려고
안고 있었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강한 뒷발힘으로 박차고 나가는 고양이를
이길 수 없습니다. 발톱을 콱 박으며 뛰어내리는 고양이를 붙잡기란 힘들거든요.
다행히 스밀라는 현관 밖으로 나가는 걸 싫어해서 제발로 현관 밖으로 나가는 법이 없어
베란다 쪽으로 달아났기 때문에 큰 변이 없었지만 이삿날에는 어떤 변수가 생길 지 알 수 없습니다.
고양이가 30분쯤 먼저 더 답답하게 있는 것이, 고양이를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백배 낫습니다.
이사하는 날 주의사항을 알고 있더라도, 막상 당일 시간이 촉박해서 이것저것 챙기다보면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옮겨온 새 집. 스밀라가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구석으로만 숨으려 합니다. 낯선 집, 낯선 냄새, 낯선 구조.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습니다. 빨리 안전한 곳을 찾아야만 합니다.
포장이사를 하기는 했지만 짐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박스에 담아온 것이 많다보니 반포장이사가 되어서
어머니도 치울 엄두를 못 내고 망연자실 앉아 쉬고 계십니다. 그 와중에 스밀라는 베란다 문을 열어달라고
보채고 있네요.
예전 집에서는 항상 달려가 숨곤 했던 스밀라의 아지트가 있던 곳, 하지만 익숙했던 그곳에는 이제
스밀라의 은신처는 없고 웬 커다란 이삿짐 상자들만 가득합니다. 이상한 나라에 온 듯한 기분입니다.
집을 잃고 낯선 골목을 헤매는 어린아이처럼 황망해진 스밀라의 마음입니다.
혹시 나를 버리고 다른 데로 가려나, 구석으로 숨다가도 사람의 기척을 따라 문쪽으로 다가오는 스밀라.
이사 삼일째 새벽, 거실과 제 방의 경계선에서 살짝 엉덩이를 걸치고 나올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사한 지 삼일째 저녁, 이제 숨지 않고 바깥에 나와 누워있는 스밀라의 표정도
이사하던 날보다는 한결 편안해 보입니다. 그렇게 적응해가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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