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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이중섭 거리에서 만난 아기 길고양이

by 야옹서가 2011. 12. 12.

제주 서귀포시에는 한국전쟁 중 이중섭이 피난살이를 하며 잠시 머물렀던 주거지가 있습니다.

그 주거지 인근에 이중섭을 기리는 거리가 생겨나고, 옛 주거지 복원과 미술관 건립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면서 관광명소가 되었지요.

거리 자체는 작지만 이중섭 작품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도상을 가로등 기둥 따라 세워두어

한 가지씩 구경하며 걷는 맛이 있고, 이중섭을 테마로 한 금속공방이나 화가의 이름을 딴 식당도 있습니다.

이중섭 그림에 등장하는 어린아이들과 민화를 접목시켜놓은 벽화가 눈에 띄어 사진을 찍으려는데,

발치에서 작은 털뭉치 하나가 쭈뼛쭈뼛 다가섭니다. 노란 카오스 무늬의 아기 길고양이입니다.

이제 겨우 5~6개월쯤 됐을까, 작은 덩치에 굼뜬 몸놀림으로 또박또박 걸어 벽화 뒤 담벼락으로 몸을 옮깁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무심코 스쳐지나갈 걸로 여겼는지, 가만히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눈이 딱 마주치자

엇,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거리 한가운데를 향해 내달립니다.


그래도 멀리 가지는 못하고, 근처 찻집 화단의 데크 아래 빈 공간에 몸을 숨기는

어린 길고양이입니다.

새벽부터 당일 취재로 돌아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라 길고양이를 만날 수 있겠나 싶었는데

짧은 만남이지만 반갑기도 하고, 여린 몸으로 추운 겨울을 나야할 녀석이 안쓰럽기도 했었지요.

출장에서 돌아오고 이틀 뒤엔가 제주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딘가에 녀석을 돌봐준

따뜻한 손길이 있었기를 바랍니다. 이중섭 거리 초입의 중섭공방 근처에 출몰하는 고양이였으니

혹시 근처를 지나신다면 녀석과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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