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드러낸 채 뒹굴뒹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길고양이와 눈이 마주칩니다.
녀석은 땅에 등을 붙인 자세로 눈동자를 굴리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몸을 일으켜 바로 앞 암벽 위로 폴짝 뛰어오릅니다.
그저 달아날 의도였다면 아랫길로 가면 그만인데, 굳이 암벽 쪽으로 올라선 걸 보면
저 인간에게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인 것도 같고, 궁금증이 앞섭니다.
인간이 따라올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길고양이는 달아나면서도 여유가 넘칩니다.
턱을 시원하게 긁기 좋은 나뭇가지를 발견하고는 그새 턱을 치켜들어 봅니다.
가지가 가늘면서도 탄력이 있어, 부비적 부비적 턱 긁개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먼 하늘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고양이의 눈동자에 폭 빠져듭니다. 다른 고양이의 모습도
사랑스럽지만, 턱 밑을 긁을 때의 고양이 표정은 황홀경 속을 거니는 듯도 하고,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속한 것만 같아서 볼 때마다 매혹되곤 합니다.
하지만 길고양이의 그윽한 표정에서 느껴지던 여운이 다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어 암벽 정상을 노리며 등반을 계속하는 고양이입니다.
짧고 동그랗게 말린 꼬리도 꼭 토끼를 닮았습니다.
제 키의 몇 배나 되는 높이의 암벽을 등반 장비도 하나 없이 거침없이 오르는 솜씨가 놀랍습니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 땅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집고양이의 캣타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방대한 규모의 자연 캣타워입니다.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 [고양이 여행]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다리도 잘 오르는 똘똘한 길고양이 (3) | 2011.12.16 |
---|---|
길고양이 발가락, 까만 골무 하나 (6) | 2011.12.15 |
이중섭 거리에서 만난 아기 길고양이 (5) | 2011.12.12 |
캣맘들이 만든 ‘2012길고양이 달력’ (9) | 2011.12.09 |
진퇴양난, 길고양이의 정면돌파 (3) | 2011.12.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