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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사람들

by 야옹서가 2006. 5. 31.

참새, 비둘기와 더불어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고양이다. ‘길고양이’로 불리는 이 고양이들이 도심 생태계의 일원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들을 보살피는 사람들도 소리없이 늘고 있다. 굶주리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불임 수술, 질병 관리 등을 해온 자원활동가를 비롯해, 이웃 나라 일본의 길고양이 대처 사례, 의료인의 반응 등을 들어본다.                                        
 

1. 눈먼 고양이 돌보는 ‘신도림 냥이왕초’

‘한국고양이보호협회(http://cafe.daum.net/ttvarm)’에서 ‘냥이왕초’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50대 주부 김진희 씨의 활동은 단순히 집 앞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수준을 넘어섰다. 인터넷 애묘동호회 ‘냥이네’ 소모임에서 독립한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이하 ‘협회’)는 길고양이 식사 제공, 불임 수술, 길고양이 학대 방지 운동 등을 펼치는 이들의 모임이다.


‘협회’ 운영진이자 열성 회원인 ‘냥이왕초’님이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곳은 총 3구역이다. 하나는 자신이 사는 신도림 역 근처의 아파트 단지, 또 하나는 인근 공원, 마지막으로 이웃 아파트 단지 근처의 공터다. 공터 쪽은 원래 밥을 주지 않았지만, 도로를 횡단해 그가 사는 아파트까지 밥을 먹으러 오다 차에 치인 길고양이 소식을 듣고, 좀 멀어도 가게 됐다고 한다. 말이 쉬워 3구역이지, 밥을 놓는 세부 지점을 헤아리면 20여 곳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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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이왕초’님이 집 근처 공원에서 길고양이 사료와 물을 준비하고 있다. 낮에 사료를 주면 누군가 눈여겨봤다가 길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지나 않을지, 그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한다.

‘냥이왕초’ 님은 길고양이 사료를 양동이에 한가득 담고, 1.5리터 물병 두 개에 깨끗한 물을 담아 유모차에 싣고 집을 나선다. 사료 무게에 물 무게까지 만만치 않아 들고 다닐 수 없기에, 모양새는 좀 야릇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는 아파트 단지 내에는 매일, 집 근처 공원에는 닷새마다 한 번씩, 길 건너 아파트 단지 주변 공터에는 나흘마다 한 번씩 사료를 준다. 오후 7시가 못 되어 그와 만났지만, 고양이 밥을 주는 코스를 동행 취재하다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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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는 그렇다 치고, 웬 물병일까? 자칫 간과하기 쉽지만, 길고양이에게 사료만큼이나 절실한 것은 ‘깨끗한 물’이다. 물을 자주 먹을 수 없는 고양이들은 신장 질환에 걸리기 쉽다. 또한 웅덩이에 고인 오염된 물을 먹고 병에 걸릴 수도 있기에, 꼭 물을 챙긴다고 한다. 물그릇 역시 물이끼가 끼지 않도록, 이전에 담겨 있던 물은 비우고 닦은 다음 깨끗한 새 물을 부어준다. 5년 동안 길고양이에게 밥을 줘온 ‘냥이왕초’ 님의 밥 주기 요령은 다음과 같다.

1) 밥그릇의 청결 유지

길고양이 밥그릇이 지저분하면 사람들이 내다버린 쓰레기로 알고 치워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밥그릇은 늘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 밥그릇 바깥에는 안내 스티커를 붙여, 발견한 사람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한국고양이보호협회에서 제작한 이 스티커에는 길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짤막한 설명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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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길고양이를 위한 엄폐물 마련

경계심이 많은 길고양이들은 사방이 뚫린 공간에서는 안심하고 밥을 먹지 못한다. 이런 길고양이의 심리를 반영해, 인적 드문 화단 깊숙한 곳에 밥그릇과 물그릇을 놓고, 나무판자 등을 비스듬히 세워 엄폐물을 마련해준다. 이렇게 하면 비가 들이쳐도 사료가 젖는 것을 막을 수 있어서 좋다. 나무판자 앞에는 밥그릇과 마찬가지로 안내 스티커를 붙여, 함부로 치우지 않도록 유도한다. 


3) 철저한 위생 관리

길고양이로 인한 냄새 등의 민원을 막기 위해, 냄새가 조금이라도 날 것 같으면 밥 주는 장소 근처에 탈취제를 뿌린다. 먹다 남은 사료 등을 치우는 것은 물론이다.

‘냥이왕초’님은 5년 전 아파트 앞마당에 어슬렁거리던 늙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길고양이 보호 운동에 동참했다고 한다. 요즘은 200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눈먼 길고양이에게 ‘심군’이라 이름을 지어주고 앞마당에서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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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길고양이 '심군'을 어루만지는 '냥이왕초'님. '심군'은 한쪽 눈이 없고, 다른 한 쪽 눈도 시력을 잃어 앞을 볼 수 없다. 

“이제는 고양이에게 밥주는 일이 생활이 됐다고 해야겠죠. 얘들이 목숨을 부지하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할 수 있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고…. 그걸 보고 누군가 어떤 사람 하나라도 ‘아,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기도 하는구나’ 하고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



2. 11년째 길고양이 돌봐온 ‘목동 고양이 엄마’ 

개인적으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냥이왕초’님과 달리, 목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부 서정숙(55) 씨는 인근 주민들과 힘을 합쳐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사료 공급 등 체계적인 대응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서 씨는 11년째 길고양이에게 밥을 제공해 온 베테랑 봉사자다. 새끼를 낳고 지쳐 쓰레기통 옆에 쓰러져 있던 어미 고양이가 측은해, 집에 있던 햄을 던져 준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무엇을 줘야 좋은지 몰라서 집에 있는 음식을 주기도 했지만, 요즘은 고양이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들어있고 냄새도 잘 나지 않는 고양이 전용 사료를 사서 준다. 서 씨가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아파트 화단에서 밥을 기다리는 녀석들도 늘어나, 지금은 찾아오는 고양이만 10마리 가량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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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는 서정숙 씨. 화단 사이 길고양이가 자주 모여드는 장소에 밥을 뿌려준다.

“밥을 줄 때 밥 주는 장소를 요령 있게 분산시켜야 하는데, 고양이가 한 군데로 많이 모여들면 주변에서 민원이 들어오거든요. 요즘은 사람들이 뜸할 때, 오후 7~8시쯤 늦게 밥을 줍니다. 8kg 들이 사료가 나흘 만에 바닥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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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씨의 집 앞에는 길고양이용 사료, 불임수술 전에 길고양이들의 안전한 포획을 위한 통덫, 케이지 등이 상시 비치되어 있다.

정기적으로 먹이를 주면 고양이들이 몰려들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하루 한 번 제공되는 사료 덕분에 길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뜯지 않으니, 이들을 방치할 때보다 쾌적한 환경이 유지된다고 한다. 게다가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는 쥐가 들끓기 마련인데, 고양이 덕분에 쥐 걱정을 하지 않아서 좋다고.


길고양이 사료 공급에서 중성화 수술까지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아파트 생활이다 보니, 고양이를 싫어하는 주민들의 항의도 만만치 않다. 어떤 동에서는 길고양이가 자주 드나드는 화단 한 블록을 철망으로 모조리 감싸 접근을 원천봉쇄했다. 눈에 띄는 길고양이를 모두 포획하거나 밥을 주지 말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들도 서 씨가 살고 있는 단지의 길고양이들을 함부로 하지는 못한다. 바로 TNR 프로그램을 통해 관리되고 있는 고양이들이기 때문이다.


‘길고양이의 인도적인 포획(Trap)→중성화 수술(Neuter)→방사(Return) 후 지속적인 관리’의 약자인 TNR 프로그램의 핵심은 중성화 수술이다.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하게 되면 지나친 개체 수 증가를 막을 수 있을 뿐더러,  어릴 때부터 반복되는 길고양이들의 임신으로 인한 수명 단축을 피하고, 과밀 증식으로 인한 영역 싸움 등을 예방할 수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밥을 주기만 했던 서 씨 역시 인터넷 동호회 등을 통해 길고양이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 중성화 수술의 필요성을 깨닫고, 인근 리즈동물병원의 협조를 받아 수술을 지원해왔다. 너무 어리거나 수유 중인 고양이, 나이가 많아 수술을 하지 못한 고양이를 제외하면, 현재 그가 관리하는 지역의 길고양이 중 대부분이 중성화 수술을 거쳐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내 돈 들여 좋은 일 하면서도 욕먹는” 이중의 어려움이 가장 힘겹다. 서 씨는 “길고양이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것도 답답하지만, 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냐며 항의하는 사람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라고 토로한다.

죄 짓는 사람처럼 어둠을 틈타 밥을 줘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밤에 밥을 주면서 길고양이 포획을 시도할 경우, 동물병원이 문을 닫는 시간이라 어려움이 많다.
중성화 수술을 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제적인 지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고양이와 그렇지 않은 고양이를 구별해 포획할 인력과, 이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동물병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서울 지역에서는 이와 관련한 제도적 뒷받침이 거의 없다고 한다.

밥 주다 눈 맞은 고양이, 업둥이로 들이기도

서 씨는 유독 울음이 많던 얼룩고양이를 길에서 데려와 ‘까망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애지중지 기르기도 했다. 애묘가들은 이렇게 길에서 데려온 고양이를 ‘업둥이’라 부른다. 8년을 함께 살다가 얼마 전 병으로 죽은 까망이를 잊지 못해, 서 씨는 까망이의 사진과 유골단지를 고이 보관하고 있다.


까망이가 떠난 빈자리는 마찬가지로 길에서 데려온 두 살배기 업둥이 ‘꼭지’가 채우고 있다. 하얀 털옷을 입고 두발을 새침하게 모은 꼭지의 자태에서 길고양이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길고양이도 사회성을 습득할 무렵인 3주~9주 사이 입양되어 인간에게 사랑받고 잘 관리된다면, 집고양이나 다를 바 없다. 값비싼 품종 고양이만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님을, 서정숙 씨가 돌보거나 입양한 길고양이들의 사랑스런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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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로 태어난 꼭지. 길고양이도 어렸을 때 입양되어 인간에게 사랑받고 잘 관리된다면 집고양이나 다를 바 없이 사람을 잘 따른다. 

3. ‘턱시도 길고양이 형제’ 먹이는 회사원 홍주연 씨

한편 출퇴근길 눈에 띈 길고양이가 안쓰러워, 날마다 소량의 사료를 갖고 다니는 회사원 홍주연 씨 같은 이도 있다. 그가 보여준 쇼핑백에는 사료 봉투, 은박지 밥그릇, 물을 담은 500ml 페트병이 들어 있다. 이를테면 휴대용 길고양이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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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부터 밥을 주기 시작해서 한 때 여덟 마리가 밥을 먹으러 왔는데, 도중에 사라진 애들도 있고, 사고로 죽어 제가 묻어준 애들도 두 마리나 돼요. 생각만큼 고양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거나 하지는 않아요. 지금은 저 두 녀석만 눈에 띄네요.”


홍주연 씨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려 보니, 주차장 한쪽 구석에 한 마리, 철책 너머 화단에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온 몸이 까맣고 가슴팍이 하얀 ‘턱시도’ 차림의 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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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연 씨 역시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과 몇 번 마찰을 겪었다. 놓아둔 밥그릇이 하룻밤 사이에 없어진 것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제는 요령이 생겨, 퇴근 때마다 화단 근처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밥그릇을 두고 사료를 먹인다. 그가 저녁만 되면 사료 봉투를 챙겨나가는 걸 보고 회사에서도 “고양이 밥 주러 나가느냐”고 인사를 건넬 정도가 됐다. 

“나름대로 깨끗하게 관리하는데 길고양이 밥을 주는 게 그렇게 싫을까, 어떻게 생각하면 각박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밥만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중성화 수술도 해줘야 하는데, 경계가 심해서 고민이에요. 고양이 탐정님께 부탁드려서 애들을 데려다가 수술을 해줘야 할지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고양이들이 건강하고 예쁘게 살아있는 게 큰 보람이죠.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 다른 생명도 사랑할 줄 안다고 믿어요.”



4. 일본의 경우-온 동네 주민들이 함께 키우는 ‘지역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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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분들을 취재하면서, 가까운 일본에서는 길고양이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으며 어떤 대책을 취하는지 궁금했다. 우송대 일본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하시카와 코이치(35) 씨와 동물보호운동가 이다운(25) 씨를 소개받아 일본의 길고양이 대책을 들어보았다.

“한국에서는 ‘밥을 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착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본에서는 밥만 주는 것에서 끝낸다면 ‘무책임한 일’로 생각합니다. TNR(포획-중성화 수술-방사)까지 마쳐야만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의 책임을 다한다고 보는 것이죠.”

하시카와 씨에 따르면, 한국의 길고양이에 해당하는 떠돌이 고양이를, 일본에서는 ‘지역고양이’로 부르며 동네 사람들이 공동으로 돌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 ‘지역고양이’가 앞마당에 마음대로 들어오거나 해도, 주민들은 고양이를 괴롭히는 대신 밥도 챙겨주고, 먹은 자리도 치워주곤 한단다. 고양이를 가둬 기르지 않는 대신, 자유방임적인 공동 양육을 하는 셈이다. 이런 일본에서도 길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은 필수다.

일본 거리의 길고양이 관련 표지판.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분들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먹이를 주는 것은 기쁘게 생각하지만 부탁이 있습니다. 먹다 남은 먹이 치우기, 거세나 중성화 수술, 똥오줌 치우기, 불행한 고양이를 늘리지 않기, 근처 분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당신의 따뜻한 마음을 믿습니다.  냥이!!라고 씌어 있다. (자료 제공 및 번역: 하시카와 코이치)


“옛날에는 일본의 공원에 가면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지 말라’는 경고문이 씌어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밥을 주려면 중성화 수술과 병행해야 한다’고 씌어 있지요. 일본에도 고양이는 요물이라는 편견이 있기는 하지만, 배고픈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이고, 최소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지는 않게 된 것 같습니다.” 

 

하시카와 씨 역시 오가며 만난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챙겨주면서 동물보호 차원에서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동물사랑실천협회 회원인 약혼녀 이다운 씨가 길고양이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의 영향이다. 한때 보신탕 반대 운동을 했던 이 씨는, 다친 채 버려진 고양이 미루(3)도 길에서 데려와 키우고 있다. 


“처음에는 뭐라고 했죠.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20년 가까이 사는데, 그 기간을 책임질 각오가 되어 있느냐고요. 저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이라 나중엔 승낙했는데, 고양이 발에서 피가 나더군요. 발톱이 없는 거예요. 발톱 제거수술을 받다 도망쳤는지, 수술이 잘못되어 버려졌는지…. 그 후유증으로 몇 차례 다시 수술을 했어요.”


길고양이 입양에 얽힌 추억을 털어놓는 하시카와 씨에 이어, 이다운 씨는 “버려진 동물들을 보니,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키우려는 책임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며 “살다보면 결혼이나 이사도 하게 되고,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길 텐데 끝까지 책임질 수 없는 각오가 없다면 동물을 키우지 않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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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아닌 다른 동물에게도 관심과 애정을 줄 수 있는 게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고, 인간의 위대한 점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하시카와 씨. 그는 길고양이의 이해를 돕는 지침서 <들고양이학(野良猫學) 입문>의 번역을 막 끝내고, 이를 자료로 펴낼 준비를 하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길고양이를 이해하고, 관용으로 대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5. 인도적인 길고양이 대책 꿈꾸는 수의사 김재영 씨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분들을 취재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이야기가 불임 수술의 필요성이다. 왜 그들은 이 이야기를 반복해 강조하는 걸까?


6년 간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지원해 온 태능동물병원 원장 김재영(44, 한국동물병원협의회 이사) 씨 역시, 봉사자들이 누차 말했듯 “중성화 수술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는 교미음이 없어지고, 번식을 위해 가출하려는 행동이 줄어들며 얌전해진다”고 설명했다. 단, “수컷의 경우 중성화 수술을 한 뒤에 영역 싸움에서 도태되기도 하므로, 길고양이 삶의 질을 위해서는 되도록 암컷을 중심으로 수술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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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은 최근 길고양이 처리 문제로 첨예한 논란을 빚었던 ‘한강맨션 사건’의 중재를 시도하기도 한 장본인이다. 지하 변전실에 숨은 길고양이를 구출하지 않고, 변전실 자체를 폐쇄하겠다고 선포해 고양이 학대 논란을 불러온 한강맨션 사건은 극적으로 합의를 이룬 듯하다가, 안타깝게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이런 사안에서는 감정적으로 치닫기 쉬운 주민과 동물보호단체 사이의 중재자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주민들은 길고양이를 포획해가면 단순히 보호시설에 수용된다고 생각하지, 법적으로는 한 달 뒤에 안락사 된다는 사실을 잘 몰라요. 길고양이들에게 밥 주는 분들이 고양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면, 이들에게 기생충 약도 먹일 수 있고 건강 상태도 볼 수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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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화 수술을 마친 길고양이의 귀에 이 도구로 V자형 표식을 만들어, 불임 수술을 받은 고양이와 그렇지 않은 고양이를 구분한다.  


결국 가장 인도적이며 효율적인 길고양이 관리는, 각 지역에서 길고양이를 지속적으로 돌봐온 봉사자들의 활동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데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이와 더불어 김 원장은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너무 쉽게 버려져 길고양이가 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한국 토종 고양이들에게 새 이름을 찾아주자고 주장했다. 그는 중성화 수술로 개체 수를 조정해 길고양이가 인간과 공존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길고양이의 대다수를 이루는 한국 토종 고양이의 위상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길고양이, 도둑고양이 같은 부정적인 이름은 부정적인 인식을 부르거든요. 사실 품종 있는 고양이들은 잘 버려지지 않잖아요. 우리 스스로 한국 토종 고양이를 사랑하고 값어치 있는 동물로 자리매김할 때, 버려지는 고양이들도 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 취재를 마치며

취재를 다니면서 여러 마리의 길고양이를 만났다. 길고양이가 자주 다니는 길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수풀이 우거지고 숨을 공간이 많은 곳, 사람 냄새 나는 골목이 남아있는 곳, 매연 펑펑 뿜어내며 자동차가 기어 올라오지 않는, 그런 길 말이다.

어쩌면 길고양이가 뛰어놀기 좋은 곳은, 인간의 삭막한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환경이 그나마 남아있는 곳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고양이가 행복한 곳이라면, 사람 역시 행복할 수 있는 곳일 거라는 생각이 든 건 그런 이유에서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이들의 노력을 씨앗 삼아, 길고양이와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해법을 발견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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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으로 취재하면서 다른 기사 쓸 때보다 서너 배는 발품을 팔았습니다-_-;
인터뷰 건으로 찾아뵈었던 다섯 분이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계셨던지라...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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