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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김영하, 노석미, 마리캣-길고양이 데려다 키우는 작가들

by 야옹서가 2006. 6. 28.
[미디어다음 | 2006.06.28] 생명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충무로 애견 거리에서조차 ‘입양’이란 표현을 관용적으로 쓰는 게 요즘 추세다. 하지만 동물의 나이, 혈통에 따라 상품 가치를 매기고, 그 상품성에 따라 동물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에서, 입양이란 말은 그저 사탕발림일 뿐이다. 갖가지 이유로 길에 버려진 동물들은 정작 입양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러나 버려진 동물들을 데려다가 식구처럼 함께 살며, 진정한 ‘입양’을 실천해온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 김영하, 화가 노석미, 일러스트레이터 마리캣이 들려주는 길고양이 입양기.

1. 소설가 김영하-그 남자의 유쾌한 고양이 입양기

누구나 반려동물에 대한 이상형이 있다. 소설가 김영하도 처음엔 그랬다. 어차피 여러 마리 기를 것도 아닌데, 이왕이면 하얀 터키쉬 앙고라나 페르시안 고양이처럼, 도도하고 우아한 녀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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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쯤, 처음 왔을 때 긴장한 방울이. 콧잔등에 잔뜩 난 긁힌 자국이 험난했던 거리 생활을 보여준다.


한데 정작 처음 그의 집에 온 고양이는, 엉뚱하게도 평범한 잡종 고양이였다. 잠실 한복판에서 구출됐다는 새끼 고양이는 두어 집을 전전하다 그의 집에 잠시 맡겨졌다. 처음엔 입양되기 전까지 일주일만 데리고 있을 생각이었다. 정들까봐 이름도 대충 지었다. “방울이 어때? 목에 방울 달고 있잖아.” 그렇게 즉석에서 결정된 이름이, 방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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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이미 '김영하 가족'이 된 방울이. 처음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나 한가해요~" 하는 포즈를 취한 모습이 귀엽다.

처음엔 아끼는 스피커 뒤에 실례를 하고 도망가는 방울이가 얄미웠다. 버리려고 쌓아둔 책을 꺼내, 고양이가 기어들어갈 틈새를 막는 바리케이드로 썼다. 하지만 집에 온지 하루 만에 쫄래쫄래 그의 뒤를 따르고, 시행착오 끝에 화장실을 가리는 모습은 내심 기특했다. 결국 삼일 째 되던 날, 방울이의 매력에 항복하고 함께 살게 됐다.

 

그렇게 방울이를 데려오고 6개월쯤 지났을 때, 이번엔 주차장에서 검은 얼룩무늬 새끼 고양이와 마주쳤다. 대개 길고양이는 사람을 보면 피하는데, 녀석은 도와달라는 듯 비틀거리며 다가와 아내의 발 사이에 몸을 눕히더란다.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또 데려온 녀석이 둘째 깐돌이다. 이젠 그와 아내, 두 마리 고양이까지 식구가 넷이다.   


꼬질꼬질한 길고양이 티를 벗고 거실을 우다다 누비며 노는 방울이와 깐돌이는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김영하는 고양이들도 버려졌을 때 겪었던 배고픔, 불안, 공포 등의 기억을 평생 안고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가 있다. 깐돌이가 살이 찌기 시작하기에, 체중 조절을 하려고 한동안 사료를 적게 줬다. 그런데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한 깐돌이가 하지 않던 짓을 했다. 제 화장실이 아닌, 사람 이불에 오줌을 싼 것이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고양이가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런 행동을 한대요. 얘가 허기지니까, 길에서 떠돌던 옛날 생각이 나는 거야. 깐돌이가 어미를 잃고 버려졌을 때 배가 고팠겠죠? 그러니 허기라는 게 단순히 배고픔의 문제가 아니라, 버려졌던 어린 시절 기억과 심리적으로 연합되어 버린 거죠. 어쩔 수 없이 밥을 다시 늘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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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비슷한 덩치로 자라난 방울이와 깐돌이. 약간 바랜 듯한 밀크티 빛깔의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버려졌던 고양이를 키울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경이로운 순간이 있다. 처음 집에 왔을 때 모든 것을 경계하고 불안해하기만 하던 고양이가, 어느 순간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것을 느낄 때다.

 

“예전에도 개는 키워봤지만, 그땐 돈을 주고 사서 길렀거든요. 그런데 길에서 데려온 고양이들에게는 훨씬 더 애틋한 감정이 있어요. 잘 적응도 못하고, 안으면 깨물고 하던 애가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큰 즐거움이죠. 어쩌면 그런 고양이를 데려다가 함께 사는 자체가, 인간에게도 어떤 자기 구원의 가능성을 주는 것 같아요.”

실제로 길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막연히 가졌던 품종 고양이에 대한 동경도 어느덧 사라졌다. 이젠 ‘코숏(코리안 숏헤어의 줄임말)’이라 불리는 잡종 고양이도 값비싼 품종 고양이 못지않게 아름답다며, 도리어 ‘코숏 예찬론자’가 됐다.


“값비싼 장모종 고양이는 얼굴과 털 뭉치만 보이고 그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안 보이죠. 하지만 코숏 고양이들은 등과 배, 꼬리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의 형태, 움직일 때 드러나는 몸의 근육 등이 대단히 아름다워요. 동물치고는 보기 드문 미적 완성도랄까, 그런 게 느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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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돌이와 함께 거실에서 한때를 보내는 김영하. 그는 평범한 단모종 고양이들의 몸에서 느껴지는,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김영하는 “괜히 비싼 돈 들여 품종 고양이를 사서 브리더들만 배불리는 것보다, ‘냥이네’ 같은 동호회에서 버려진 고양이들을 데려다가 키우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넷 카페 ‘냥이네’는 김영하가 처음 고양이를 키우면서 자주 들러 조언을 구했던 국내 최대의 고양이 동호회다.

동물이라면 이유 없이 무서워하던 그의 부인도 ‘냥이네’를 거치면서 한때 고양이 구조대로 활동했을 만큼 열성적인 고양이 애호가가 됐다. 요즘은 모임에 직접 참여하진 못하지만, 서울 근교의 길고양이 보호소에 이불이며 사료 등을 꾸준히 보내고 있다. 

  

“제 처는 길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 부르면 흥분하는데요, 사실 호감을 갖고 본다면 도둑고양이라는 말도 귀여운 것 같아요. 뭔가 훔쳐서 도둑이라기보다는, 조심스럽고 섬세한 고양이의 속성을 잘 표현한 말이잖아요. 담을 타넘는 괴도 루팡처럼, 행동에서 드러나는 발랄한 이미지도 있고, 사사삭 움직이는…. 그래도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길고양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죠. 워낙 고양이를 싫어하는 뿌리 깊은 전통이 있으니까.” 


김영하의 유쾌한 길고양이 입양기는 미니홈피를 비롯해 《랄랄라 하우스》(마음산책)에도 짧게나마 소개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글만 읽고서 고양이와 사는 생활이 마냥 재미있기만 한 걸로 오해될까 우려했다. 그들과 함께 살고 싶다면, 달라질 삶을 받아들일 준비부터 해야 하는데 말이다.


“고양이가 집에 있으면, 먼저 고양이 방식대로 살게 돼요. 밥 줄 시간에 일어나야 하고, 매일 똥 치워줘야 하고, 발톱으로 긁을까봐 비싼 가구 못 사고, 고양이가 드나들어야 하니 방문도 못 닫고… 특히 예전에는 여행도 훌쩍훌쩍 떠나곤 했는데, 고양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 보니 이젠 힘들어요. 모든 게 예전과 다른 삶이 되죠. 그런 마음의 준비가 될 때 입양을 하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있다면, 키워보는 것도 좋죠. 고양이는 그 자체로 충분히 매혹적인 동물이니까요.”


2. 화가 노석미-오래 함께 살면, 그 녀석이 ‘명품 고양이’죠
일상의 이야기를 친근한 그림체로 그려내는 화가 노석미(35). 그는 홈페이지에 그림 에세이 ‘나의 고양이 이야기’를 연재하는 고양이 마니아이기도 하다. 경기도 동두천시에 위치한 작업실 겸 집에서 네 마리 고양이와 함께 사는 노석미를 만났다.

유림사거리에 내려 노석미가 알려준 아파트를 두리번거리며 찾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사거리 한복판으로 나가 십분 넘게 비탈길을 올라서야 저 멀리 언덕배기에 아파트가 보인다. 번잡한 서울을 떠나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늘뿐더러, 작업 공간도 넓어지고 고양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기에 굳이 동두천으로 왔다고 한다.


하긴 덩치가 듬직한 네 마리 고양이와 동거해야 하니, 넓은 공간이 필요할 만도 하다. 길고양이 출신인 삼색고양이 시로(9), 태어날 때부터 어수룩했던 시로의 아들 똘똘이(7), 시로의 또 다른 아들인 비만 고양이 후추(5), 그리고 4년 전 겨울  의정부 시장에서 주워온 길고양이 봉봉(4)까지, 네 마리가 아옹다옹 그의 집에 살고 있다. 노석미가 유독 고양이 그림을 즐겨 그리고, 또 사람들이 그의 고양이 그림에 열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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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상다반사적인 걸 많이 그리는 편이라 주변에서 소재를 많이 얻는데 고양이는 아무래도 제 식구니까요. 20대 중반에 독립을 하면서 데려온 시로와 8년간 함께 살았는데, 가족을 제외하면 누군가와 이렇게 오래 산 건 시로가 처음이죠. 가족이야 뭐, 자아란 개념이 거의 없을 때 부모님 보호 아래 살았던 거고….”

시로는 원래 후배가 길에서 데려다 키웠던 고양이다. 1998년 선배와 함께 시골의 낡은 주택을 빌려 작업실을 차렸다가, 우여곡절 끝에 연고도 없는 그곳에 혼자 내려가 살게 됐다. 개를 기르고는 있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메워준 게 고양이 시로였다.


“후배에게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고 했더니, 한 달 된 새끼랑, 길에서 데려온 1년 된 새끼(?)가 있대요. 근데 어린 애는 입양이 잘 되니까, 은근히 나이든 애를 데려갔으면 하는 눈치더라고요. 결국 성남까지 가서 데려왔는데, 개만 기르다가 고양이를 처음 기르니까 홀딱 빠진 거죠.”


어린 시절 시로는 예쁘고 영리하고 날쌨다. 한 마디로 고양이의 매력을 다 가진 고양이였단다. 각박한 도시에서라면 불가능했겠지만, 한적한 시골에 살다보니 고양이를 자유롭게 놓아기를 수 있었다. 시로는 다섯 마리의 남편을 만나 스물네 마리의 새끼를 낳고, 불임 수술을 받았다. 시로가 마지막 임신을 했을 때 일어난 러브스토리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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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미가 가장 예뻐하는 고양이 시로. 덩치는 작아도 아홉 살 된 할머니 고양이다.


“예전엔 발정 나서 집을 나가도 반나절이면 돌아오곤 했는데, 사흘이 지나도록 안 오는 거예요.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속이 타잖아요. 고양이는 낮에는 사람들 안 보이는데 있으니까 밤마다 손전등을 들고 시로야, 하고 찾으면서 다녔어요. 아마 사람들이 미친 여자인줄 알았을 거예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시로 얼굴을 알다 보니, 이런저런 증언들이 들려왔다. 누군가 ‘시로가 까만 고양이랑 붙어 다니는 모습을 봤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젖소목장 풀 위에서 두 녀석이 한가롭게 누워 있더라’고도 했다.

“‘아, 이 년이 또 사랑에 빠졌구나’ 싶더라고요. 그래도 배가 고프니까 돌아오긴 했어요. 근데 시로가 며칠 동안 창밖만 바라보는 거예요. 가만 보니 그 까만 고양이가 집까지 찾아왔어요. 원래 야생에서 짝짓기가 끝나면 다시 만나거나 하지 않는데, 그 녀석이 너무 잘 생겨서 사랑에 빠질 만하더라고요. 며칠 그렇게 ‘비련의 사랑놀이’를 하다가, 시로는 집고양이가 된 지 오래라 결국 안 따라나서고, 그렇게 둘이 헤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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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노석미의 작업실. 곳곳에 걸린 고양이 그림이 사랑스럽다.


시로의 아들인 똘똘이나 후추와 달리, 봉봉이는 노석미가 직접 길에서 데리고 왔다. 4년 전 겨울, 의정부 재래시장에서 신발 좌판 근처를 맴도는 노란 얼룩고양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신발 파는 아저씨 말로는 빈 건물에 버려진 녀석을 구조해 꺼내놓았다는데, 다른 곳에 갈 생각은 않고, 좌판이 펼쳐지면 와서 난롯불을 쬐고 가더란다. 이미 사람 손을 탄 고양이여서 추워지는 날씨에 살아남을까 걱정도 되고, 깨끗하게 씻기고 먹인 후에 입양 보내리라 결심하고 데려왔다. 하지만 봉봉이 역시 결국 그의 집에 눌러앉게 됐다.


“봉봉이는 길고양이 출신이면서도 개처럼 살갑게 굴어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지. 보통 낯선 사람들이 오면 다른 고양이들은 서먹해하는데, 얘는 손님이 오면 나름대로 접대를 한다고 할까, 그만큼 친절해요.”


가장 붙임성 좋은 ‘접대묘’라는 말에 혹시나 하고 손을 내미니, 마치 강아지처럼 쉼 없이 핥핥핥 핥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 정도면 고양이가 아니라 숫제 강아지다. 지금은 사랑으로 자라나 당당하고 예쁜 고양이가 됐지만, 봉봉이도 처음엔 남다른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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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봉봉이. 길고양이 출신이지만 붙임성이 대단한 접대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거든요, 어린 시절 아픈 기억이 있는 애들은. 봉봉이도 어떤 순간 보면, 정서적으로 다른 애들이랑 다른 면이 있어요. 봉봉이는 분명히 어미한테 일찍 버림받았을 거라고요. 저랑 4년 넘게 살았으니까 그런 기억도 잠깐일 텐데,  ‘꾹꾹이’라고 엄마젖 빨 때 하는 버릇 아시죠. 그게 보통 1년 내에 없어지거든요. 근데 봉봉이는 거의 3년을 갔어요. 덩치는 이만한 놈이 나한테 계속 ‘꾹꾹이’를 하는 거예요. 제 꼬리도 빨고. 그런 느낌이 드니까 너무 안쓰럽더라고요.”

 

그래서 노석미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엄마젖 먹을 만큼 먹이고 3개월 이상 됐을 때 입양해라. 어미의 따뜻함을 충분히 느낀 애들하고, 그때 애정을 충분히 못 받은 애들하고는 많이 다르다” 하고 조언한단다. 특히 귀여운 고양이 모습만 보고 “나도 고양이 한번 키워보고 싶어요”하며 무턱대고 들이대는 사람에게는 냉정해진다.

“특히 직장여성들이나 혼자 사는 여자들이 많이 기르고 싶어 하죠. 고양이랑 함께 사는 생활에 판타지를 많이 갖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고양이를 기르면 10년 이상 산다. 그동안 결혼하고 애도 낳고, 이민이나 유학갈 수도 있고, 다양한 변수가 있을 텐데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마음이겠냐, 자식을 낳을 때도 심사숙고해서 낳듯이, 입양하고 분양하는 것도 쉽게 생각할 게 아니다’ 그런 얘길 일부러 막 해요.”


그의 말마따나, 그렇게 심사숙고해서 데려온 고양이일수록 더 오래,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의 부주의나 미성숙한 사고방식 때문에 버려져 길거리 신세가 되는 동물들도 더 이상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서는 동물을 사고팔기보다 유기동물 보호소 등지에서 입양해 오는 사례도 많다고 설명하니, 노석미는 “한국에서는 사람도 입양이 잘 안되는데, 버려진 동물은 더 하겠죠. 사실 고양이도 그렇지만 유기견도 걱정이에요. 유기동물 보호소를 보면 고양이보다 개가 많지 않나요?”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유기동물 입양이 활성화되지 않는 건, 이른바 ‘명품 고양이’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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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와 아들 똘똘이가 책꽂이 위에 올라가 주변을 관망하고 있다.


“사람들이 명품 좋아하듯이, 과시적으로 예쁜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 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목욕시킬 때 보면 어떤 고양이나 골격은 다 똑같아요. 러시안 블루건 페르시안이건. 명품 개, 명품 고양이 같은 건 다 장삿속으로 만들어 낸 거라고 생각해요. 뭐, 명품이 따로 있겠어요? 같이 오래 살면 그 녀석이 명품 고양이죠.”


3. 일러스트레이터 마리캣-‘고양이가 행복한 나라’ 그리는 고양이 엄마

고양이 애호가라면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일러스트레이터 마리캣. 그는 2001년 길고양이 후원금을 마련하려고 고양이 달력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고양이 전문 일러스트레이터가 됐다. 다섯 마리 고양이와 함께 서울 삼성역 근처의 아담한 연립주택에 사는 마리캣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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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먹은 마리 고양이, 일명 '마리옹춘'과 함께 한 마리캣. 벽에 걸린 액자 속 고양이 모델도 마리다.


마리캣의 고양이 그림은 한 마디로 환상적이다. 단순히 사실적이기만 했다면, 그의 그림이 그렇듯 매력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고양이에 대한 따뜻한 사랑, 언젠가 현실 세계에서도 구축하고 싶은 ‘고양이 천국’에 대한 꿈이 그 속에 스며있다. 그의 그림에서 모든 고양이들은 품종에 관계없이 평등하고 행복하다.

달력과 다이어리 등 아트상품으로 만들어진 그림만 보다가 큼직한 원화를 직접 보니, 섬세한 털 한 올 한 올이 금방이라도 바람결에 하늘거릴 듯 생생하다. 처음에는 고양이 모델을 ‘냥이네’ 등지에서 모집했지만, 요즘은 자기 고양이를 그려달라며 여기저기서 수시로 메일이 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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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도 하고, 다섯 마리 고양이를 키우며 놀아주기엔 좁아 보이는 방에서, 마리캣은 그저 여유로운 얼굴이다. 처음 고양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땐 고양이 사료 값도 모자랄 만큼 쪼들렸다. 물론 지금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6년 동안 고양이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 발생된 수익금 일부를 동물보호단체와 유기동물을 보살피는 개인에게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이유 없이 고양이가 좋았다던 마리캣은 1998년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 고양이를 키웠다. 대학 시절에도 모피반대 운동을 할 만큼 동물 보호에 관심이 많다 보니, 품종 고양이보다 자연스럽게 딱한 처지의 길고양이들에게 눈길이 갔다. 그의 집을 점령한 고양이들 다섯 마리 모두 길고양이 출신이다. 


“처음엔 저도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죠. 그땐 고양이 동호회도 별로 없고 조그만 모임 정도가 있었는데, 누가 아주 어린 새끼를 데리고 있대요. 가봤더니 못생긴 다 큰 애가 있는 거예요. 신림동 약국 앞에서 거지꼴로 우다다 하는 걸 길에서 잡았대요. 결국 몇 다리 건너 저희 집에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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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라서 예뻐하긴 하는데, 너는 내가 봐도 성격이 쉣이야.” 마리캣의 장난스런 핀잔에도

그렇게 데려온 녀석이 얼룩고양이 마리(8)다. 마리캣이라는 닉네임도 마리에게서 따왔다. 둘째 노며(7)는 ‘아빠가 고양이를 자꾸 때린다’며 도와달라는 동물학대방지연합 게시판의 사연을 읽고 안양까지 달려가 데려왔다.

마리캣이 ‘거지 삼총사’로 부르는 노마(4), 삼순(4), 시도(4) 삼형제는 2003년경 집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버리고 간 녀석들이다. 저것들을 내버려 두면 다 죽겠다 싶어서, 일단 데려왔다가 입양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개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혀 제2, 제3의 업둥이를 들이기 마련. 마리캣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형제를 찢어놓으려니 마음도 안 좋고, 한 마리는 입양 갔다가 너무 울고불고 난리가 나서 도로 데려와서 다 같이 살아요. ‘내가 미쳤지, 너희들을 주워오고. 낚였다, 낚였어~’ 만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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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였군, 낚였어” 를 연발하지만, 가족 같은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옆에 도사리고 앉은 노마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푸념도 해보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가족이 된 걸. 고양이가 다섯 마리니, 이사 다닐 때마다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다. 한번은 주인이 트집이라도 잡을까 싶어 작은 가방에 마리와 노며를 각각 넣고, ‘거지 삼총사’ 세 마리는 한 가방에 넣고 짐인 양 옮겼는데, 한꺼번에 세 마리를 옮기다가 그날로 제사상 받는 줄 알았단다.

 

길고양이 하면 흔히 사람을 잘 안 따르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한다는데, 실제 키워보니까 어떤지 넌지시 물어봤다. 무지 활발하단다. 힘도 너무 세서 상상을 초월하는 짓을 많이 한다.


“얘들은 제가 옆방에서 자면 문도 막 열고 들어오고요, 문을 항상 잠그니까 나중에는 창문을 열고 들어와요. 한번은 화장실에서 제 몸보다 큰 변기 뚫는 도구를 물고 나와서, 밥상 위에 올려놓는 바람에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어요. 원래 코숏이 품종 고양이보다 더 활발하대요. 집에서 브리딩 하는 애들은 안정적 환경에서 살던 유전자라, 후대로 내려올수록 얌전한 애들이 많아지거든요. 또 품종 고양이는 약간 인위적으로 만든 거라 몸이 약한 애들도 있는데, 코숏들은 워낙 유전자가 섞이니까 더 건강하기도 하고요.”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은 파란만장하지만 그래도 즐겁다. 마리캣은 동물가게에서 고양이를 사 와서 키우는 것뿐 아니라, 다른 경로로도 얼마든지 데려올 수 있음을 알리고 싶어 했다.

“저는 유기동물 보호소 같은 곳에서 입양을 많이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곳 수용 능력에 한계가 있다 보니, 진짜 조그마한 애들조차 가정 분양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대부분 안락사를 시키거든요. 보호소 입장에서도 그러긴 싫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반려동물을 데리고 오면, 함께 살 동물도 생기는데다가 생명을 구할 수도 있으니까 훨씬 좋은 것 같아요.” 


마리캣은 지금껏 해온 것처럼 실용적인 아트 상품뿐 아니라, 고양이 일러스트와 풍경화가 어우러진 단행본도 조만간 펴낼 계획이다. 그림의 모티브는 언제나 그렇듯이 여행에서 얻는다. 베니스의 가면 카니발, 터키의 재래시장 등 이국적인 장소를 누비며 찍은 사진들이 모자이크처럼 그림 속에 녹아들어가, 현실을 초월한 풍경으로 재조합되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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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그때그때 떠오르는 예쁜 걸 주로 그렸는데, 요즘은 어떤 도시를 그리고 싶어요. 대략 설계도는 이렇고, 광장이 여기 있고, 이 공원에 가면 이런 날개 달린 고양이 조각상이 있고…이렇게 이어지는 거예요. 이게 다 일관된 스토리가 있거든요.”


그는 직접 그린 ‘고양이 도시’의 파란색 지도를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벽에 걸린 고양이 그림들과 대조해 보여주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고양이 박물관도 꼭 세우고 싶다”는 마리캣의 꿈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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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유기동물을 입양할 수 있는 곳

취재를 마치면서, 고양이 동호회부터 동물보호단체에 이르기까지 버려진 동물들을 입양할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유기동물 입양을 할 수 있는 곳은 많으나, 상업적 목적을 띤 분양과 병행하는 곳은 제외했다. 동물보호단체나 동호회에서 유기동물을 입양할 때는 대개 ‘책임비’를 내야 한다. 책임비는 무책임하고 충동적인 입양을 막기 위해 책정되며, 유기동물 포획시 부대 비용과 불임 수술비, 장기 치료가 필요한 동물들의 병원비 등으로 쓰기 위한 기금으로 적립된다.


• 다음넷 카페 ‘냥이네’(cafe.daum.net/kitten)

1999년 8월 개설된 고양이 커뮤니티 ‘냥이네’에서는 버려진 고양이, 장기 치료 또는 보살핌이 필요한 장애고양이 등의 입양과 위탁 양육을 주선한다. 별도의 입양 희망 양식을 작성해야 하며, 입양자에 대한 기준이 상당히 엄격하다. 이곳에서는 길고양이 보호 활동도 활발하다. 특히 아직까지도 길고양이 학대 논란을 빚고 있는 속칭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독립된 게시판을 만들어 진척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여론을 환기하고 있다.

• 다음넷 카페 ‘한국고양이보호협회’(cafe.daum.net/ttvarm)

‘냥이네’ 소모임에서 독립해 2005년 6월 개설된 한국고양이보호협회는 길고양이 사료 제공, 불임 수술, 길고양이 학대 방지 운동 등을 펼치는 이들의 모임이다.  길고양이의 복지 증진과 TNR 정책에 대한 인식 확산을 목표로, 길고양이 상식 전단지, 길고양이 밥그릇용 스티커 등을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 KARA(구 아름품, www.withanimal.net)

동물의 고통을 대변하려는 이들이 모여 2002년 4월 15일 설립한 '아름품'은 '동물과 함께 하는 시민들의 모임(KARA: Korea Animal Rights Advocates)'으로 비영리단체 등록을 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생명존중 의식을 제고하기 위한 캠페인에 주력해왔으며, 올바른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연구 및 제안, 보신탕 반대 캠페인, 실험동물 반대, 농장동물의 복지 증진, 오락 동물의 반대, 채식문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문의전화 02-3482-8835.

• (재)한국동물보호협회(www.koreananimals.or.kr)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 위치한 재단법인 한국동물보호협회는 1991년 설립됐다. 이곳에서 동물을 입양해 가려면 필수적으로 불임 수술을 해야만 데리고 나갈 수 있다. 입양을 희망하는 사람은 타 지역에 살더라도 반드시 대구 보호소로 방문하고 상담한 뒤 입양 각서를 써야 한다. 불임 수술비는 소형견 5만원, 대형견 10만원, 고양이 5만원 등으로 동물병원에 비해 저렴하다. 문의전화 053-622-3588.

• (사)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www.karama.or.kr)

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위치한 사단법인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는 부상당한 야생동물 구조와 밀렵 방지 계몽사업을 우선적으로 해왔으나,  최근 몇년 간 급증한 유기동물 문제가 대두되면서 유기동물 구조, 보호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1998년 건립된 보호센터 내에 유기동물과 야생동물을 각각 분리해 보호하고 있다. 문의전화 031-862-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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