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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한겨레 ESC칼럼

여섯 마리 고양이로 남은 당신-루씰과 여섯묘

by 야옹서가 2007.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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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개는 많지만, 자발적으로 산책을 즐기는 고양이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바깥구경이나 시켜줄까 싶어 고양이를 데리고 길을 나서면, 영락없이 진땀을 흘리게 된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나중에는 꼼짝 않는 녀석을 떠메고 돌아오는 길이 무거워서.

집에서는 도도한 걸음걸이로 온집안을 헤집고 다니던 스밀라도, 정작 밖으로 나오면 겁을 먹고 얼어붙어 꼼짝하지 않았다. 아스팔트에 붙은 껌처럼 땅바닥에 납작 몸을 붙이고 요지부동인 녀석을 억지로 일으켜 이동장에 넣고 돌아오면 팔이 후들거렸다. 무용지물이 된 가슴줄을 구석에 던져두고, 다른 사람들의 산책 실패담을 찾아 읽으면서 ‘그래, 고양이는 원래 산책을 싫어해!’ 하고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부정해도, 머리로는 이미 산책 좋아하는 고양이가 있다는 걸 안다. 그것도 한집에 여섯 마리씩이나. 고양이 사진을 찍는 블로거 루씰의 ‘6cat’ 블로그(lucille.tistory.com)를 처음 봤을 때, 매력적인 고양이들의 사진에 반해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앵두·여포·찔레·깍두기·뽐뿌·옹기 등 독특한 이름만큼 개성 넘치는 고양이 여섯 마리가 천연덕스럽게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에 샘이 날 지경이었다. 너무 부러워서 고양이 산책의 비법을 묻는 인터뷰까지 청했지만, 루씰은 “전 고양이들이 다 그렇게 되는 줄 알았는데요” 하고 싱겁게 답할 뿐이었다.

루씰의 사진이 매력적인 건, 단순히 산책하는 고양이가 흔치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루씰의 여섯 마리 고양이는 온전히 평화로운 세계에 발을 딛고 있다. 녀석들은 제집 마당에 나온 것처럼 여유롭다. 그 여유는 믿음에서 나온다. 풀을 뜯어먹고, 풀벌레를 앞발로 툭 쳐서 잡고, 낯선 강아지와 탐색전을 벌이는 짧은 외출이 끝나면, 내 옆을 지키고 선 이 남자와 함께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단단한 믿음 말이다. 루씰은 그 믿음을 바탕으로 고양이들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잡아냈다.  

언제까지나 사랑스런 여섯 마리 고양이들의 사진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5월 중순 갑작스런 루씰의 부음을 들었다. 허둥지둥 블로그에 들렀다. 마치 영정처럼, 텅빈 소파 사진만 덩그러니 떠 있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오랜 지병을 앓아 왔다는 고인은 죽음을 예감한 듯, 세상을 뜨기 전에 키우던 고양이들을 입양보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양이 사진을 찍었던 사람, 현실 세계에서는 ‘만화가 최희연’으로 살았던 루씰이 평화로운 안식을 맞이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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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루씰 | lucille.tistory.com

(*게재된 사진들은 2006년 10월 루씰님과의 인터뷰 때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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