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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한겨레 ESC칼럼

14살 할아버지 개 '찡이'에게 배운 사랑-동물전문출판사 '책공장더불어' 김보경씨

by 야옹서가 2007.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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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에서 피해야 할 화제로 흔히 정치, 종교, 여성 문제를 꼽는다. 자칫하다가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지기 쉬워서다. 한데 요즘은 여기에 ‘반려동물’ 항목을 추가해야할 판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지만, “잡아먹을 수도 없고, 다 컸다고 효도할 것도 아니고, 오래 살지도 못하는데 왜 키우느냐”며 마뜩찮게 여기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반려동물은 그 ‘쓸모없는 사랑’의 기쁨을 가르쳐준다. 함께 나이를 먹어갈수록 소중해지는 사랑이란 인간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른 생명과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사람들이 처음에는 자기 집 동물에만 관심을 갖다가, 어느 순간부터 야생동물, 유기동물, 동물원 동물, 심지어 실험동물에게도 연민을 느끼는 건, 이미 그 사랑에 중독됐기 때문이다. 길고양이 사진을 찍으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에도 그런 골수 중독자들이 꽤 있다. 앞으로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인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소개할 예정이다.

얼마 전 <고마워 치로리> 출간을 축하할 겸 만난 김보경(37)씨도 그중 하나다. 14살 먹은 시추 ‘찡이’와 함께 사는 김보경씨는 노령견 동호회(cafe.daum.net/withbob4)에서 동물과 이야기하는 스터디 모임을 꾸리면서, 1인 출판사 ‘책공장더불어’를 차려 동물 관련 책을 펴낸다. 몇 만 원짜리 동물용품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는 사람도, 동물 책 사는 데는 망설이는 세상이니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생길이 훤한데도 자본금 2천만 원만 들고 출판사를 꾸릴 용기를 얻은 건, 모두 찡이 덕분이다.

찡이는 인간으로 치면 80대 중반이다. 사람 나이 예순이면 귀가 순해진다는데, 찡이는 입이 순해졌다. 수컷인 찡이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처음 만난 사람은 한번 콱 물어주는 게 인사치레였단다. 하지만 작년에 길고양이와 싸우다 다친 각막이 흐려지고, 관절염까지 오면서 몸놀림도 느려졌다. 노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언제 작별할지 모르기에,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늘 애틋하다.

“잠들기 전에 찡이와 맑은 마음으로 대화하려고 먼저 10분쯤 명상해요. 그날 있었던 일도 얘기하고,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세 번 말해주죠.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저녁 인사를 진심으로 하게 돼요.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해요.”

10년차 잡지 기자로 일하며 쌓은 내공이 내비치는 그의 예리한 눈매도, 찡이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활짝 웃는 초승달 모양으로 변한다. 아무리 낯선 사람도 순식간에 동지로 만들어버리는 ‘동물 사랑 바이러스’를, 김보경 씨의 눈 속에서 다시 본다.

고경원/ 길고양이 블로거 http://www.catsto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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