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고양이 탐정 김봉규-집 나간 고양이 찾아드려요

by 야옹서가 2006. 12. 20.

[미디어다음 2006.12.20] 함께 살던 고양이가 갑자기 집을 나갔을 때, 구조의 손길이 필요한 고양이를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고양이 탐정’ 김봉규 씨다. 1995년부터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주기 시작한 그는, 올해 여름 터진 소위 ‘한강맨션 사건’ 때도 인도적인 길고양이 포획을 주장하며 현장에서 뛰었다. 급강하한 기온도 아랑곳없이 고양이를 찾아 나선 김봉규 씨를 따라 4시간 30분간의 동행취재를 진행했다.


오후 3시 경, 외대역 근처에서 만난 김봉규 씨는 사라진 지 오래된 고양이를 찾고 있었다. 처음에 그에게 고양이 수색을 의뢰하려다 망설이며 마음을 바꿨던 고양이 주인이, 뒤늦게 마음을 돌려 그에게 다시 한 번 고양이를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단다. 이런 경우 고양이를 되찾을 가망이 점점 희박해지긴 하지만,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감’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고양이를 찾는 중이었다. 김봉규 씨는 그 감을 ‘텔레파시’라고 부른다.


“제가 고양이를 찾는데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세 가지 있어요. 집중력, 순간 포착 능력, 그리고 텔레파시죠. 어떨 때는 고양이에 대한 얘기만 듣고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하는 느낌이 와요. 그래서 너무 쉽다 생각될 때는 겁이 날 때도 있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봉규 씨는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출장 의뢰를 한번 받으면 4~5시간 동안 해당 지역을 샅샅이 훑는다. 그가 ‘텔레파시’라 부르는 결정적 느낌이 오면, 예정한 수색 시간을 훌쩍 넘겨서도 계속 고양이를 찾는다. 어떤 날은 오후 3시에 찾기 시작해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줄곧 쉬지 않고 걸으며 고양이를 찾아내기도 했다.

포획 장비를 들고 나갈 때는 최대 35kg에 달하는 짐을 내내 들고 걷는다. 그렇게 고양이를 찾는 동안에는 밥도 제대로 먹기 힘들다. 자정께 집에 들어와 간신히 한 끼를 먹고, 돌보는 고양이 14마리에게 일일이 밥을 주고, 새벽 서너 시에 잠든다. 지금은 걸으면서 인터뷰를 하기 때문에 발걸음을 천천히 놀리고 있을 뿐, 평소에는 속보에 가깝게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이런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자연히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발에는 세 군데나 금이 갔고, 위염과 식도염을 늘 달고 산다. 그래도 고양이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날이면, 아무리 걸어도 피곤함을 느낄 수 없다. 배고프다는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알 수 없는 힘이 생겨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양이를 찾아달라고 전화하는 분 중에 두 가지 경우가 있어요. 비용이 얼마인지부터 다짜고짜 먼저 물어오는 경우는 힘들어요. 그런데 무작정 그냥 오라는 분이 있어요. 그런 경우엔 대부분 고양이를 찾게 되요. 저부터 먼저 그런 마음에 감동받게 되고, 그 애타는 마음이 고양이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하면 돈 때문에 그런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는 털어놓는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그렇단다. 돈을 생각했다면 직장도 때려치우고 이 일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초기에는 고양이를 찾으러 다니면서 사비를 털었다. 하지만 고양이를 찾는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전세금까지 날릴 지경이 되어, 요즘은 활동비 개념의 일당을 받고 일한다. 일반적인 일당과 견주어도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이다. 먹고 사는 데에는 활동비보다 차라리 사례금이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힘들게 고양이를 찾아주면 당연한 걸로 생각하고, 만약 못 찾아주면 ‘돈만 날렸다’며 그를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울 뿐이지만, 그래도 그는 이 일을 계속하려 한다. 집을 나왔다가 비참하게 길에서 죽어갈 고양이가 불쌍해서다.

“사람들이 고양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쓰는 비용에 비하면, 고양이가 집을 나가거나 잃어버렸을 경우 찾는 데는 인색해요. 고양이의 가출은 죽음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병에 걸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인데…. 어떤 분은 ‘우리 고양이는 품종 고양이니까 누군가 잘 데려가 키울 것’이라 착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 시간에 고양이는 죽어가고 있을지도 몰라요.”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애완동물이라고 부르면 안 되고, 반려동물이라고 해야 한다”며 함께 사는 동물을 가족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막상 그 ‘가족 같은’ 고양이가 집을 나가면 한 달 이상 꾸준히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김봉규 씨에게도 보통 한두 번 수색을 의뢰하다가 끝내고 만다. 그는 그럴 때마다 엄청난 실망감을 느낀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가 몇 년이 지나도 애타게 찾아 헤매는 것과 비교해보면, ‘동물도 가족’이라는 말이 허상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렇게 도중에 일을 끝내면 정말 마음이 아프죠. 찾지 못한 사진 속 고양이가 계속 떠오르고…. 고양이 찾는 일도 보람 때문에 계속했지만, 요즘은 그런 보람도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어떻게 찾아내는지 비결을 궁금해 한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간혹 김봉규 씨에게 고양이를 찾아달라고 의뢰했던 사람이, 그에게 고양이 찾는 법에 대해 배웠다고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아무나 쉽게 고양이를 찾을 리 없다. 고양이의 성격, 고양이가 사라진 장소에 따라,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상황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작정 “방법만 알려주면 내가 직접 찾아보겠다”며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면 김봉규 씨는 답답하기만 하다. 그는 ‘고양이를 찾는 일은 기본적으로 고양이 주인과 내가 함께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의뢰만 하고 주인은 성의껏 찾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가 오면 무조건 고양이를 찾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김봉규 씨는 토종 고양이보다 품종 고양이가 집을 나갔을 때 더 불안하다고 말한다. 토종 고양이를 차별해서가 아니다. 인간에게 친화적으로 개량된 품종 고양이는 토종 고양이보다 길에서 버티는 근성이 약해 더 위태롭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잃어버리면 보통 집을 나간 지 1주까지가 고비다. 가능한 한 빨리 연락할수록 좋은데, 그 시기가 지나면 찾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집 나간 고양이 수색뿐만 아니라 길고양이 구조·포획에도 참여하는 김봉규씨는, 최근 지자체 중심으로 시행되는 TNR프로그램에도 난색을 표했다. 무작정 잡아들이고 중성화 수술을 한 뒤 마구잡이로 다시 놓아주는 과정에서 오히려 길고양이들이 더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TNR프로그램은 고양이의 복지를 위해서 실시하는 건데, 그 과정에서 많은 길고양이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TNR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좋은 사례로 뽑는 스탠포드 네트워크는, 좁은 지역에서 집중 포획하고 그 고양이들을 꾸준히 관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하지만 포획한 고양이 마릿수대로 돈을 받는 구조라면, 실적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길고양이의 복지는 뒷전이 되죠.”

길고양이를 제대로 구조하기 위해서는 원래 살던 곳에서 체계적으로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한 뒤, 회복 기간을 거쳐 방사하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찰을 도맡을 비영리단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인프라가 없다. 특정 지역에 통덫을 수십 개씩 깔아놓고 한꺼번에 수거해 고양이를 포획하는 방식으로는, 잡지 않아야 할 고양이들, 즉 다친 고양이, 임신한 고양이, 새끼가 딸린 어미 고양이도 무차별적으로 잡히고 만다. 관찰 후 개별포획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고양이들이 통덫에 갇혔다가 풀려나는 과정을 반복 학습하면서 영리해지면, 꼭 포획해야 하는 결정적 순간에 강력한 통덫을 쓰더라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마치 한 단계 강한 항생제를 개발하면 할수록 처음에는 편하지만, 나중에 내성이 생긴 바이러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그는 더디지만 꾸준한 걸음을 계속 걸어가려고 한다.

“힘들지만 제 눈에 띈 놈은 끝까지 잡으려고 합니다. 신념이 있으니까요. 제가 특별히 동물을 좋아해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애들이 불쌍해서 하는 겁니다.”

 

동물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된 그의 신념은 굳건해 보였다. 그를 따라 동네를 몇 번이고 도는 동안,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바람이 쌀쌀했지만, 김봉규 씨는 다시 한 번 동네를 돌아봐야겠다며 재래시장 쪽으로 지친 발걸음을 돌렸다. 시계는 오후 7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