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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고양이 스밀라

'뽀샤시 사진'이 좋아진 이유

by 야옹서가 2008. 9. 20.
나는 '뽀샤시 사진'을 싫어했다. 땀구멍도, 솜털도, 피부의 질감도 없이 그저 뽀얗게 흐려놓은 사진이라니,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뽀샤시 사진'은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결점을 흐리고 뭉갠 다음, 환영처럼 모호한 이미지만 남긴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그 사진에 대한 판단은 엇갈린다. 하얀 얼굴에 구슬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만 남은 얼굴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겐 사진 속의 모습만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뽀샤시 사진'에서 지워진 것들(얼굴의 잡티나, 비뚤비뚤하게 자란 눈썹이나, 눈가의 잔주름 같은)이 자신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김빠진 맥주처럼 닝닝한 느낌밖엔 나지 않을 것이다. 

'뽀샤시 사진'을 거북하게 느꼈던 건, 결점은 없지만 인간미는 결핍된 것 같은 그 사진에 감정이 이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마음에 드는 인물사진의 요소를 묻는다면, 난 그 사람의 개성적인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는 사진이 좋다고 말할 것이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스밀라를 찍으면서 '뽀샤시 사진'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그전까지는 허접하다고 생각했던 그런 사진의 가치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느끼게 됐다.

짬 날 때마다 스밀라를 찍어주는데, 정신없이 찍다 보면 스밀라가 뽀샤시하게 찍힌 사진들이 몇 장씩 나온다. 셔터스피드가 느렸거나, 초점을 못 맞췄거나, 스밀라가 갑자기 움직였거나. 하여간 실수가 만들어준 '뽀샤시 사진'인데, 엉성하게 찍은 그 사진이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이는 거다.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는 더 빛나 보이고, 보드라운 털이 살랑살랑 움직일 것처럼 느껴지는 거다. 이른바 '칼초점'으로 찍은 사진과는 또 다른 몽환적인 매력이 있었다.

좋은 사진의 절대적 기준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결국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진이 가장 좋은 사진이 된다. 얼굴에 잡티 하나 없는 자신의 '뽀샤시 사진'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 사진은 당사자에게 멋진 사진으로 남는 것처럼. 스밀라의 짝퉁 '뽀샤시 사진'도, 내겐 아름답게 느껴진다. 한때 흐린 것은 잘못된 것이고, 작위적인 것이고, 버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사진은 흐려도 눈부시다. 대상에 대한 사랑만 있다면... 그 사랑은 자기애일 수도 있고, 타인을 향한 사랑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스밀라가 내게 준 이해의 선물이다. 언젠가 스밀라의 '뽀샤시 사진'만으로 앨범을 만들어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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