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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박물관 기행

화봉책박물관

by 야옹서가 2005. 12. 13.


[주간한국 | 2005.12. 13]
“열독가가 실용주의자라면 수집가는 낭만주의자다. 수집가는 책의 다양한 효용가치를 좋아하고 책 그 자체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책에서 얻은 지식이나 문자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삶 그 자체로서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책은 그들에게 읽어야 할 대상일 뿐만 아니라 늘 곁에 두고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친구인 셈이다.” 인용구라기엔 다소 길지만 《전작주의자의 꿈-어느 헌책 수집가의 세상 건너는 법》의 저자 조희봉의 이 말은, 책을 좋아하고 모으는 수집가들이라면 충분히 수긍할 만큼 설득력이 있다. 책을 좋아하다 보면, 하나 둘 모은 책이 어느 순간 주체할 수 없이 늘어난다. 종국에는 책꽂이가 넘치고, 미처 꽂지 못한 책이 방바닥에 쌓이다가, 나중에는 간신히 드나들 공간만 남겨지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지극한 책 수집가의 사랑을 씨앗 삼아 책 전문 박물관의 결실을 맺은 곳이 바로 화봉책박물관(www.hbookmuseum.co.kr)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책 (올드 킹 콜, OLD KING COLE)은 가로 세로 각 1m로, 현미경으로 보아야만 책 속 글씨가 보일 정도로 조그맣다

2004년 10월 개관한 화봉책박물관은 고서적을 전문으로 취급해온 화봉문고 여승구 대표가 설립했다. 화봉책박물관의 소장 책 수는 모두 10만여 권. 그러나 전시 공간의 제약과 보존상의 문제 때문에 이를 모두 상설전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특정 주제를 정해 몇 달에 한 번씩 교체 전시한다.

화봉책박물관의 싹은 여승구 관장이 1982년에 개최된 ‘서울 북페어’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여 관장을 찾아온 개인 소장가가 200여 권에 달하는 한국문학작품 초판본의 대리판매를 의뢰했던 것. 여 관장은 고민 끝에 그 책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는 대신 자신이 일괄 구입하고 말았다. 그간 여러 경로로 고서적을 구하러 다니면서 좋은 책을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잘 알았던 그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책들을 차마 넘겨줄 수가 없었다.

한번 책을 대량으로 손에 넣고 보니 가속도가 붙었다. 한국의 고서적 뿐 아니라 서양 고서적이나 현대 화보집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뿐만 아니라 매우 작은 크기로 인해 ‘좁쌀책’이라 불리는 일련의 미니어처 북, 한국의 고지도, 서양과 중국의 장서표 등에 이르기까지 수집의 폭도 넓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큰 책, 가장 작은 책

화봉책박물관 전시실로 들어서면, 푸른 하늘이 그려진 돔형 천장이 있어 마치 드넓은 하늘을 실내로 들여온 듯하다. 전시공간 자체는 협소하지만, 소장품인 책의 특성상 좁은 공간에도 여러 권을 전시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렸다.

소장품 중에서는 개관 기념전 ‘세상에서 제일 큰 책, 세상에서 제일 작은 책’에 소개된 두 책이 이채롭다. 세계 기네스협회가 인증한 세계에서 가장 큰 책 《부탄(BHUTAN)》은 펼쳤을 때의 크기가 가로 2m를 넘고, 높이가 1.5m다. 책의 무게도 50㎏에 달하니 웬만한 힘으로는 이 책 한 권을 혼자 들기도 버거울 정도다. 책이 너무 큰 탓에 읽기는 힘들지 몰라도, 시원시원한 지면 위에 부탄 왕국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올 컬러 수제본 책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세계에서 가장 작은 책 《올드 킹 콜(OLD KING COLE)》은 가로 세로 각 1㎜로, 현미경으로 보아야만 책 속 글씨가 보일 정도로 작다. 스코틀랜드 자장가가 수록된 12페이지 분량의 이 책이 1985년에 만들어졌다니, 벌써 20년 전에 이만큼 뛰어난 인쇄술이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밖에도 다양한 판본의 《천로역정》, 구텐베르크 성서의 인쇄 사본 등 각종 고서와 관련 전시품이 벽면을 따라 빼곡히 줄지은 진열장 안에서 관람자를 기다린다.

화봉책박물관 전시실 전경. 하늘을 담아온 듯 한 그림이 그려진 돔형 천장이 이채롭다.

흔히 소규모의 사설박물관은 상설전 위주의 운영을 하게 된다. 한번 전시품을 교체할 때마다 드는 비용과 인력이 사설박물관으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봉책박물관에서는 특별전시회 형식을 빌려, 가능한 한 다양한 소장품을 교체 전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번 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이, 나중에 다시 한번 방문했을 때 ‘뭐야, 저번에 본 것과 똑같네’ 하는 실망감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색 주제로 화제를 모은 개관기념전에 이어, 독도 문제로 일본과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지난 4월 말부터는 ‘민족과 영토전’을 개최해 역사 관련 서적과 고지도를 전시하기도 했다. 지난 11월25일부터 12월5일까지 잠깐 전시되었던 ‘한국 어린이잡지 100선’ 전시회도 흥미로운 책 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찾는 책이 서점에 없을 때 헌책방과 지방 서점, 심지어 출판사 재고분과 저자 소장본까지도 찾아 헤매 본 애서가라면, 화봉책박물관에서 흐뭇한 책과의 만남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책 사랑의 그윽한 향기만큼은 짙게 배어 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시실 외에도 간단한 목판화 기법을 몸소 시연해 볼 수 있는 고인쇄 체험실, 화봉책박물관의 전신인 화봉문고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화봉사료관이 마련되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책 (부탄BHUTAN). 펼쳤을 때의 크기가 가로 2m를 넘고, 높이가 1.5m다.

 

체험여행 수첩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연중 무휴. 설날, 추석만 휴관)

관람요금 일반 4,000원, 청소년 3,000원, 초등학생 2,000원, 유치원생 1,500원.

문의전화 02-735-5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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