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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박물관 기행

태백석탄박물관

by 야옹서가 2006. 3. 10.


 

 

 

 

[주간한국/ 2006. 3. 10] 눈꽃축제로 유명한 태백산 초입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곳이 태백석탄박물관(www.coalmuseum.or.kr) 이다. 한때 검은 황금으로 불릴 만큼 부가가치가 높았지만, 이제는 추억 속 산업자원이 된 석탄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기에 진부한 곳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태백석탄박물관에서는 체험자의 참여를 중시한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조선 시대 탄광 현장부터 수백 여 미터를 내려가는 지하 갱도 승강기까지 실감나게 재현한 태백석탄박물관을 찾아가 본다.

총 8개 전시관으로 나뉘는 태백석탄박물관에서는 제1전시관인 지질관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된다. 탄광을 연상시키는 어두운 통로로 들어서면,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바닥이 요동치는데, 이는 45억 년 전 지구의 탄생 순간을 시뮬레이션한 것이다. 정신 없이 통로를 빠져나오면, 꽃보다 더 아름다운 능망간석,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야광석 등 600여 점에 달하는 희귀 암석과 광물, 화석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삼엽충, 암모나이트, 공룡 알 등 화석도 전시되어 작은 지질학박물관을 연상시킨다.

이는 석탄의 생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제2전시관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한국 탄광 산업의 변천사를 관람할 수 있는 제3전시관은 조선 시대 이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채탄 방식의 변천사를 디오라마로 재연해 눈길을 끈다. 전시된 유물 중에서도 연탄의 파란만장한 변천사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전시물이다. 원형 틀에 석탄 가루를 넣고 꾹 눌러 만든 초창기 주먹탄부터, 아홉 개의 구멍 때문에 9공탄이 된 초기 연탄, 9공탄에서 좀 더 개선된 19공탄, 군에서 주로 썼다는 31공탄 등 다채로운 연탄이 연탄 틀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광부들의 애환 어린 막장 인생
제4전시관인 광산안전관에서는 지하 깊은 곳에 매장된 석탄의 특성상 늘 잠재된 위험과 싸워야 했던 광부들의 대비책을 보여주며, 제5전시관 광산정책관에서는 각종 문서와 자료로 기록된 광부들의 검은 막장 인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미세한 석탄 가루 때문에 진폐증에 걸린 광부의 검게 물든 폐 표본은 당시의 열악한 작업 환경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충격을 준다. 광산산업이 부흥한 1970년대 당시 광부들이 어떻게 삶을 영위했는지는 광산 사택을 재현한 제6전시관에서 상세히 볼 수 있다.

특히 늘 탄광 사고의 위험을 염두에 뒀던 탄광 지역 주민들은 몇 가지 금기 사항을 꼭 지켰는데, 오늘날 찾아볼 수 없는 풍습이어서 이채롭다. 즉 도시락은 꼭 청색, 홍색의 보자기로 쌌으며, 도시락에 밥을 담을 때에는 죽을 사(死)자를 연상시키는 까닭에 네 주걱을 담지 않았다 한다. 또한 부녀자가 길을 갈 때 광부를 앞질러 가면 안 되었다고 한다.

제7전시관인 태백지역관은 탄광도시에서 관광휴양도시로의 도약을 꿈꾸는 태백 지역의 간략한 역사를 담은 곳으로 그 규모가 작고 자료도 빈약해 사족 같은 느낌이어서, 본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으로는 다소 약한 감이 있다. 그러나 아직 전시가 끝난 것은 아니다. 태백석탄박물관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체험갱도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7전시관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면, 지하갱도를 내려가는 듯한 실감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가 닫히는 순간 불이 꺼지고, 100m씩 지하로 내려감을 알리는 표시등의 숫자가 지하 1km에 달하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지하 갱도가 시작된다. 실제로는 지상 3층에서 체험갱도관이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간 것일 따름이지만, 관람객들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흥미를 유발한다는 면에서 인상 깊은 장치다.

실제 광산처럼 생생한 체험갱도관
체험갱도관은 일반인들이 보기 힘든 광산 속 풍경을 실감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꼭 빼놓지 말고 들러야 할 곳이다. 곡괭이로 땅을 팠던 조선 시대 이전의 광산 풍경부터, 수레로 석탄을 실어 날랐던 근현대 광산, 기계화된 채탄 산업에 이르기까지 변천사가 동굴 형식의 갱도 속에 연대순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 도시락을 먹는 광부들의 모습이나, 안전제일을 강조하는 사무실의 대화 풍경 등 인간미 넘치는 풍경도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탄광의 붕락 사고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통로 중 어느 한 지점에 다다르면, 실제 탄광에서 사고가 일어난 것처럼 바닥과 천장 부분이 심하게 요동치며 광부들의 절규가 들려온다. 음향 효과에 더해 안개까지 뿜어져 나오는데, 이로써 당시 광부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체험할 수 있다.

석탄은 과거 서민들에게는 저렴한 생활 연료였고, 산업 현장에서는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쓰여 온 한국의 유일한 부존 에너지 자원이었다. 1989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 이후 광산업도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최근 경제 불황을 계기로 연탄 소비가 늘면서 석탄 산업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비단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과거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한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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