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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더불어 사는 지속 가능한 삶

by 야옹서가 2006. 9. 15.

나를 빤히 바라보는 동물의 눈을 보고 있으면, 뭔가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답답할 때가 있다. 동물의 언어도 번역할 수 있는 능수능란한 번역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동물은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못할 뿐, 몸짓과 눈빛, 행동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동물과의 대화>를 집필한 템플 그랜딘은 이러한 동물 언어를 40여 년간 연구해왔다. 어린 시절부터 자폐증을 앓아온 그는, 학창 시절 정서 장애를 지닌 말들과 함께 지내며 동물 언어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전두엽 발달이 미숙한 자폐인은, 동물과 비자폐인 사이의 중립 지대에 있는 것과 같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자폐증 환자와 동물의 반응은 서로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가 말의 언어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동물의 행동 언어를 이해해 가는 과정은 흥미롭다.

예컨대 그는 소떼가 동요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우리 통로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실제로 소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자세를 하고 우리에 들어가 기어다녀 본다. 이로써 파악된 사실을 통해 필자는 ‘동물은 고유의 언어도 없고 의사 소통 능력도 없는 하등한 존재’가 아님을 설파한다.

동물에게 괴로운 것은 고통보다 공포이다
예컨대 소가 우리 입구에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이유를 저자가 깨닫는 대목을 보자. 인간도 밝은 곳에 있다가 갑자기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일시적으로 눈이 먼 것 같은 상태가 되는데, 이러한 상황은 동물에게 엄청난 공포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동물에게 고통보다 더 괴로운 것은 ‘공포를 유발하는 무엇’이다. 고통은 통제할 수 있지만, 공포는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사슬이 천장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소리나 모습, 심지어 물이 고인 바닥에 반사되는 불빛까지도 동물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몸으로 거부 반응을 보인다. 이럴 때 무심한 인간들은 전기 충격봉으로 위협해 동물을 우리 안으로 밀어 넣지만, 그랜딘은 동물이 불안함을 느끼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그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근본적인 불안 요소를 제거하려 한다.

어떤 인간들이 동물을 함부로 다루는 데에는, 동물은 인간보다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할 거라는 통념이 지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랜딘은 이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한다. 동물 역시 고통을 느끼지만 단지 참고 견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축들은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비좁은 사육장에 갇혀 군살을 늘리다가, 어느 순간 도살되어 밥상에 오른다. 그랜딘은 가슴살이 많고 다리가 튼튼한 닭을 생산하기 위해 형질을 변경한 수탉이, 교배를 거부하는 암탉을 쪼아 죽이는 비정상적 현상의 뒤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단순히 수윌한 교배를 위해 암말의 네 다리를 묶어놓고 숫말이 겁탈하게끔 하는 비인도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일침을 던진다.

인간을 위해 죽어가는 동물들에게 최대한 인도적인 삶과 죽음을 보장해주기 위해, 그랜딘은 동물의 사육 환경 개선과 고통을 최소화한 도살 장치를 연구했다. 현재 미국의 많은 낙농가에서 그랜딘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동물을 키우면서 그들의 심리와 미묘한 언어 표현을 이해하고, 인간과 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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