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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한글 조형미의 탐구자, 안상수

by 야옹서가 2002. 6. 7.

 June 07. 2002
| 자신의 집 대문을 한글 문양으로 장식하고, 짧게 깎은 뒷머리에 이름 석자의 한글자음 ‘ㅇ ㅅ ㅅ’을 새기고 다니는 사람. 우연히 마주친 사물에 숨은 한글의 형태를 발견하고 탁본을 뜨는 사람. 1985년 ‘안상수체’를 개발하며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새 장을 연 안상수는 한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이처럼 독특하게 표시한다.

로댕갤러리에서 7월 21일까지 열리는‘안상수. 한.글.상.상’전은 디자인 경력 25년에 접어드는 안상수(50, 홍익대 교수)의 작품세계를 집약한 전시다. 디자인 분야에는 문호가 좁았던 로댕갤러리가 1998년 개관이래 처음 개최하는 디자인전시인 만큼,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만든 포스터 40여 점을 비롯해 무크지 《보고서/보고서》, 한글 자·모음을 이용한 글자초상(typo-portrait), ㅁ자형 구조물에 새긴 주련 등 다채로운 작품들이 선보인다. 심지어 작가의 집에 달았던 한글 자·모음 문양의 대문까지 고스란히 떼어와 눈길을 끈다.

한글 글꼴의 획일성을 거부한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선도자
안상수는 1980년대 초반부터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갖고 한글의 과학성과 조형미를 부각시킨 글꼴들을 창안했다. 월간《마당》의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며 만든 ‘마당체’를 시작으로 그의 대표작인 ‘안상수체’, 작가 이상의 시에서 착안한 ‘이상체’, 안상수체의 변종인 ‘미르체’와 ‘마노체’ 등이 그것이다.

이중 안상수체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 천·지·인(天·地·人)과 5행(木, 火, 土, 金, 水)에 기반한 조형원리를 현대에 계승한 것이다. 이 새로운 글꼴은 모음과 자음이 초, 중, 종성으로 조합될 때 자모의 위치를 독립적으로 배치해 한글 글꼴에서 네모형의 획일적 틀을 벗겨냈다. 안상수체는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글창제원리의 과학성을 부각시키며 글꼴 개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글꼴을 응용한 포스터는 한글의 조형적 우수성과 그 아름다움을 담고있다. 예컨대 한글자음 ‘ㅅ’을 이용한 문자도 연작은 날카롭게 끊어지는 ‘시옷’발음과 화살표처럼 예리한 글꼴의 특징이 조화된 형상의 변주로 나타난다. 유희하듯 문자를 이리저리 붙이고 떼어 완성된 이미지는 상징적 형상으로 다시 태어나 종이 위를 자유로이 맴돈다.

‘읽는’ 글자가 아닌 ‘보는’ 글자로 
‘읽는’ 글자가 아닌 한글의 조형적 측면에 비중을 둔 ‘보는’ 글자로서 한글 자모를 재구성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안상수 디자인의 전형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988년 국민대 금누리 교수와 함께 창간한 무크지 《보고서/보고서》는 이같은 ‘보는 글자’들의 실험무대다. 이는 ‘한글 만다라’ 등 순수미술에 가까운 작업부터 한글이름을 이용한 글자초상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디자인과 회화적 요소가 교차하는 안상수의 타이포그래피적 유희는 ‘어울림’의 미학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유희행위로서의 구체시(concrete poetry)”라는 철학박사 김인환의 설명처럼, 안상수의 작품은 단지 읽는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오감의 어울림 속에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로댕갤러리 개관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이며, 관람료는 일반 4천원, 학생 2천원이다. 본 전시의 입장권을 지참하면 호암갤러리에서 9월 1일까지 열리는 ‘조선목가구대전’도 함께 볼 수 있다. 문의전화 02-2259-7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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