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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훼손된 육체에 새긴 자기치유의 노정-루이즈 부르주아전

by 야옹서가 2002. 5. 31.

 May 31. 2002
|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6월 30일까지 프랑스 출신의 페미니즘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91)전이 열린다. 부르주아는 사생활이 문란했던 아버지 때문에 상처받은 유년기의 기억을 치유하기 위해,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문제에 깊이 천착해온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손바느질로 만든 섬유조각 ‘부부’, ‘모자상’을 비롯한 근작 20여 점이 전시된다.



신체 이미지를 매개로 고통을 정면돌파하기
“나는 작품을 통해 두려움을 다시 체험하고 거기에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제어할 수 있다."는 부르주아의 말처럼, 그가 자전적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는 고통을 향해 정면돌파를 시도해 안식을 얻는 일종의 치유의식과 같다. 

예컨대 억압 속에 갇힌 인간을 형상화한 ‘밀실’(2000)은 작가의 트라우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붉게 상기된 세 개의 얼굴은 철창에 둘러싸여 숨죽인 비명을 지른다. 얼굴인 동시에 남근인 이 형상은 아버지에 대한 양가감정과 분열위기에 놓인 작가의 자아를 동시에 비춘다. 아버지로 대변되는 가부장제의 폭압은 누덕누덕 기운 헝겊피부 위에 흉터처럼 남았다.

그러나 최근 부르주아가 제작한 섬유조각의 또 다른 경향은 분노의 표출을 넘어 화해와 통합을 지향한다. 이는 변화된 소재나 작품제작방식에서 드러난다. 브론즈나 대리석 같은 단단한 소재를 연마하는 이전의 조각 작업이 파괴적 충동을 승화시키는 방법이었다면, 조각나고 찢어진 자리를 꿰매는 바느질은 보다 직설적으로 치유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화해의 길로 들어선 노작가 
그 대표적인 예가 2001년 제작한 섬유조각 ‘부부’다. 부드러운 보풀로 덮인 천을 이어붙인 피부에는 실밥자국이 여전하지만, 형상에서 격한 감정은 잦아들고 따뜻한 포옹만 남았다. 비록 두 사람의 몸이 가는 줄 하나에 의지한 채 허공에 매달려 위태롭지만서도. 양 팔을 잃은 남자를 자신의 두 팔로 보듬어 안은 여자는, 남자가 자신의 발을 밟고 선 것을 개의치 않는다. 성교하는 모습조차 상대를 공격하는 행위로 보였던 1997년작 ‘부부Ⅲ’와 비교하면 이것이 얼마나 극적인 화해의 제스처인지 실감할 수 있다.

이처럼 구체적인 형상을 띤 신체조각 외에 순수조형미에 보다 치중한 섬유조각 및 작품활동의 근간이 된 드로잉도 함께 소개된다. 특히 수십 개의 섬유오브제를 쌓아 만든 수직조각은 부르주아가 1950년대부터 꾸준히 발전시킨 토템 기둥의 종착점을 보여준다. 남성 성기와 유사한 푸른색과 흰색의 오브제, 여성 성기를 연상시키는 분홍색 오브제, ‘날 버리지 마세요(DO NOT ABANDON ME)’를 실로 수놓은 납작한 입방체 등 다양한 형태의 변주를 볼 수 있다.

국제갤러리 개관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는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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