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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묵향에 실려 전해오는 대나무의 춤사위-‘이응노 대나무그림’전

by 야옹서가 2002. 5. 24.

May 24. 2002
| 평창동 이응노미술관에서는 6월 15일까지 ‘이응노 대나무 그림’전을 개최한다. 고암 작품세계의 근간이 된 대나무 그림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고암이 1958년 55세의 나이로 도불한 후 작고하기 전까지 그린 대나무 그림 63점을 선별해 1, 2차 전시로 나눈 것. 지난 12일 끝난 1차 전시에 이어 나머지 작품이 소개된다.

고암 이응노의 작품세계를 논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은 1960, 70년대의 문자추상이나 1980년대의 군상 연작이지만, 정작 고암이 평생을 벗삼아 그렸던 대나무 그림을 주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고암 작품세계의 근간 이루는 대나무 그림
그러나 청년 고암이 해강 김규진 문하에서 동양화를 배울 때 썼던 호가 죽사(竹史)였으며, 1927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에 들면서 작가로서 이름을 미술계에 각인시켰던 첫 작품도‘청죽(晴竹)’이었던 만큼 고암의 대나무 그림은‘서예로 그린 추상화 같다’는 평을 들었던 고암의 작품세계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927년 조선미전 입선 후 7년 간 연거푸 낙선을 거듭하며 정체기를 거쳤던 고암은 비바람이 부는 밤 마주쳤던 대나무숲의 드라마틱한 움직임에서 충격을 받고 전통회화의 관념적 모방을 벗어 던지기에 이른다. 문인화의 전통에 현대적 조형언어를 접목시켜 한국미술의 새 장을 연 고암 예술의 시발점은 이처럼 자연의 말없는 시범에서 비롯됐던 것이다.

전시된 대나무 그림들은 이순의 나이를 훨씬 넘긴 1968년부터 작고하기 1년 전인 1988년까지 제작된 작품들이다. 대나무를 단순히 재현한 것이 아니라, 사물의 형태를 기반으로 생략과 강조의 수순을 거쳐 그 속에 내재된 정신을 포착한 그림은 ‘화가의 붓놀림은 곧 기를 파악하는 일이며 동시에 그 기와 하나가 되는 일’이라는 기운생동 사상의 단적인 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물에 의탁한 기운생동의 사상
예컨대 1976년의 대나무 그림은 갈필로 힘차게 내지른 줄기에 물기를 충분히 머금은 농묵을 듬뿍 적셔 리드미컬하게 강약을 조절하며 잎사귀를 뻗어나갔다. 바람에 뭉쳤다 흩어지는 댓잎마다 춤추는 듯 자유분방한 역동성이 느껴진다. 솔거의 소나무 그림을 보고 참새가 쉬기 위해 날아들었다지만, 고암의 대나무 그림에서는 금방이라도 묵향을 담은 청량한 바람이 불어올 듯하다. 이순을 넘긴 나이에 그렸음에도 흐트러짐 없는 필력으로 묘사한 잎사귀의 동세에서 고암의 대표작인 군상 연작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고암 대나무 그림의 또다른 특징은 서명 외에 인자호죽(人子好竹), 청풍고절군자지상(淸風高節君子之象) 등 작가의 내면을 반영하는 상징적 글귀를 남겼다는 점이다. 이처럼 대나무 형상과 어우러져 그림의 일부처럼 녹아든 화제는 문인화의 서화일치 사상과도 잇닿아있다.

허영완 성신여대 교수는 “한국 회화사에서 대나무 그림을 65년간 그려온 화가는 고암 이응노 외에는 없다”며 “그의 대나무 그림에는 바람과 싸우면서도 꺾이지 않는 불굴고절(不屈高節)의 정신이 담겨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일반 2천원, 학생 1천원(목요일 무료입장). 개관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전화 02-3217-5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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