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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삶의 본질 파헤치는 사실주의적 시선-이상원전

by 야옹서가 2002. 5. 31.

May 31. 2002 | 사실주의 화풍의 한국화가 이상원(67) 개인전이 인사동 갤러리상에서 6월 10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소외된 노인들의 주름진 삶을 그린 ‘동해인(東海人)’연작과 농촌의 황량한 풍경을 담은 ‘향(鄕)’연작 등 35점이 소개된다.

이상원은 간판그림과 초상화로 생계를 유지하다 불혹의 나이에 순수미술가로 전향한 이력을 지녔다. 안중근 의사 영정, 박정희 대통령 초상 등을 위탁받을 만큼 뛰어난 묘사력을 인정받았지만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탓에 학력·인맥을 중시하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1998년 연해주 주립미술관과 중국미술관, 1999년 러시아 국립러시안뮤지엄, 2001년 상하이미술관 초대전 등에서 개인사적 배경과 상관없이 작품만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버려지고 잊혀진 대상에 대한 애정 담아
사실주의 화풍을 내세우는 작가들은 많지만, 이상원의 그림은 리얼리즘을 매개로 소외된 대상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그 자신 역시 미술계의 주변부적인 존재로서 오랜 기간 지내온 만큼, 경험을 바탕으로 한 ‘버려지고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절절한 공감대가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탁월한 묘사력을 자랑하기 위한 소재주의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예컨대 인물연작 ‘동해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 가득 주름을 담은 노인들이다. 바람에 어지럽게 날리는 부스스한 백발, 얼룩처럼 피부를 덮은 저승꽃, 시름을 연기 속에 실어보내려는 듯 담배를 물고 깊은숨을 내쉬는 노인의 얼굴. 소멸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대상에 대한 연민과, 그 대상을 화폭 속에 영원히 안치시키려는 욕망이 한 획씩 그어나가는 붓질에 섞여 더운 피와 살로 살아난다.

먹과 유화물감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초월적 사실주의 
특히 그는 질기고 두터운 장지에 수묵과 유화물감을 동시에 사용하는 제작방식으로 특유의 초월적인 사실주의 화풍을 만들어냈다. 인물의 얼굴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배경은 먹으로 은근하게 흐려 등장인물의 내면세계를 반영하는 것이 그 방법 중 하나다.

풍경연작인 ‘향’ 역시 소외되고 파괴된 대상을 주된 소재로 삼기는 마찬가지다. 작가에게는 산 좋고 물 좋은 수려한 풍경보다, 수확이 끝나고 그루터기만 남은 논밭, 트랙터가 짓밟고 지나간 길이 더 소중하다. 젊은이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운신이 어려운 노인들만 남은 그곳은 중심부에서 밀려난 곳이자, 현대인의 삶에서 잊혀져 가는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이상원의 작품세계를 가리켜 “수묵으로써 사실주의라는 조형개념을 수용하면서 수묵화의 영역을 확대하는 한편, 철학적 성찰을 유도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1천원이다. 보다 자세한 문의전화는 02-73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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