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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인터뷰

가구미니어처 공방 ‘Lifemini’ 주인장 김형규

by 야옹서가 2002. 9. 1.
삭막한 회색 일색의 사무공간에 둘러싸여 지내다보면, 가끔 나만의 빛깔이 깃든 가구를 꿈꾸게 된다. 한번쯤은 직접 만들어보고 싶지만, 공간도 시간도 비용도 부족해 상상 속에서만 끝내기 마련이다. 한데 이런 꿈을 현실로 이끌어내는 사람이 있다. 바로 가구미니어처 공방 ‘Lifemini’(라이프미니)를 운영하는 김형규씨다. 아무리 많은 가구를 만들어도 공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미니어처니까.

섬세하고 정교한 가구미니어처의 세계
가구미니어처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김형규씨의 홈페이지에 들러보자. 섬세하고 정교한 가구미니어처가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그가 즐겨 제작하는 가구 스타일은 컨트리 풍의 앤틱 가구. 소박한 디자인과 생기발랄한 색채가 어우러져, 만드는 이도 보는 이도 유쾌해진다. 그냥 가구미니어처도 아닌, 컨트리 풍 앤틱 가구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중고가구에 대한 인식이 남다른 유럽 사람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죠. 물건을 대물림해 쓰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고 자부심마저 느끼는 모습이 좋았어요. 오랜 기간 손을 타서 마모된 나무의 질감, 시간의 풍화작용에 벗겨진 칠 자국…이 모든 것에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정서가 담겨있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더군요.”

단순하고 소박한 디자인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여유가 그를 가구미니어처의 세계로 인도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처럼 가구미니어처에 애착을 갖는 김형규씨도 처음부터 공방을 차리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성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재학 시절부터 영화 및 CF용 미니어처 제작을 해온 그가 틈틈이 만든 가구미니어처를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만든 것이 그 첫걸음이었다. 알음알음 홈페이지를 찾아온 사람들의 요청이 쇄도해 송파문화원을 빌려 강좌를 시작했고, 2002년 2월부터는 아예 가락시장 근처에 공방을 열어 초·중·고급반 강좌를 개설했다.

한 반 당 12명의 소수정예 강좌, 1대1 지도로 내실 살려
초급반(12주)의 경우 상자, 기본형 의자와 테이블, 액자 등 난이도가 낮은 것부터 시작하고, 중급반(12주)은 서랍달린 사물함, 곡선문양 테이블, 그릇 등을 만든다. 고급반(16주)의 경지에 오른 수강생은 장식장, 흔들의자, 고서 만들기 같은 고난이도의 작품에 도전하게 된다. 가구미니어처의 완성도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소품제작까지 배울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수강료는 월 15만원. 내실 있는 1대1 지도를 위해 한 반 정원이 12명을 넘지 않는다.

수강생의 대부분이 직장인이라 토요일로 강좌가 몰리지만, 점차 평일반도 운영할 계획이다. 아직 가구미니어처를 만드는 작가들이 많지 않아 작품에 적정가를 책정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강좌 운영은 공방을 운영하는데 큰 힘이 된다. 물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가구미니어처를 만들어 주변에 선물하겠다는 갸륵한 동기로 시작하는 분들이 많죠. 그런데 초급과정 끝날 무렵엔 기초적인 상자 하나도 안 만들어 주게된다는군요.그만큼 정성과 시간이 요구되기 때문에 선뜻 주기가 어려운 거죠. 제 작업의 기본정신이 ‘여유’인데, 어째 강좌가 본의 아니게 각박한 관계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하네요, 하하…”

웃음 띤 그의 말속에서 가구미니어처 하나를 완성하는 데 드는 수고가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어엿한 선생님이지만, 처음엔 그 역시 이렇다할 스승도, 마땅한 도구도 없어 수없이 시행착오를 거쳤다. 미니어처용 목 선반도 구하기 어려워 수소문한 끝에 수입했고, 「Art & Decoration」, 「country home」 등의 해외잡지, 18∼19C 시대물영화, 다큐멘터리, 인터넷 상의 자료까지 뒤졌다.

임기응변으로 구한 재료가 멋지게 들어맞기도
그렇게 하다보니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겼다. 그 비결은 바로 ‘꿩 대신 닭’작전. 용도에 맞는 부품이나 도구가 없으면, 인접분야의 것을 활용해 쓴다.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가구미니어처용 부품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닭’이 원래 필요했던‘꿩’보다 더 요긴할 때가 있다.

예컨대 그가 만든 가구에는 가구미니어처의 축소된 스케일에 딱 맞는 앙증맞은 경첩이 달려있다. 특수 제작한 가구미니어처용 부품이 아닐까 싶지만, 사실 이 경첩은 알공예에 쓰는 부품을 활용한 것이다. 간혹 냉장고 장식용 자석으로 쓰이는 미니어처 소품을 떼어내 가구를 장식하기도 한다. 그렇게 이곳저곳에서 공수된 부품들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게 신기할 뿐이다.

그가 공방을 운영하면서 바라는 것은 한 가지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구미니어처를 즐기면서 폭넓게 접근할 수 있도록 체계화하는 것.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분야지만, 유럽이나 미국, 심지어 가까운 일본에서도 생활공예로 자리잡은 걸 보면 아쉬움이 더한다.

정신 없이 내달리는 일상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삶의 여유를 찾고 싶을 때, 가구미니어처 만들기에 한번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뭔가 내 손으로 직접 창조했다는 성취감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02.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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