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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 | 칼럼/인터뷰

한시 읽어주는 아빠-한문학자 정민 교수

by 야옹서가 2003. 5. 1.















[좋은엄마 2003년 5월호]
어딘지 모르게 딱딱하고 고루하게 느껴지는 고전문학, 그중에서도 한시를 다룬 책이라면 더욱 까다로울 것 같은 선입견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보림)를 읽다 보면 한시에 대한 서먹함은 어느덧 사라지고, 시 속에 펼쳐지는 오밀조밀한 정경에 푹 빠지고 만다.아이들을 위한 한시 입문서라곤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정민(42) 교수의 책은 단연 눈길을 끈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1996년 한시의 아름다움을 정갈하게 풀어 쓴 《한시미학산책》(솔)으로 고전 읽기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시 속에 숨은 보물찾기
한양대학교 인문관 4층에 위치한 정민 씨의 연구실은 삼면이 책으로 빼곡히 차 있다. 공저와 역서를 포함해 그가 펴낸 스물 일곱 권의 한문학 관련 저서 중 대부분이 이 곳에서 집필됐다. 방 안 어딘가에서 은은한 묵향이 풍기는가 싶더니, 문방사우가 놓인 서탁도 눈에 띈다. 대학 시절부터 서예에 빠졌다는 그는 요즘도 하루에 3백 자씩 글씨를 쓰며 마음을 맑게 다스린다. 부인 변성천(41) 씨도 대학 서예반에서 만났다고. 서예를 좋아하다 보니 전각에도 취미가 붙어, 1998년 대만정치대학 교환교수로 갔을 때 본격적으로 전각을 배우기도 했다.

정민 씨가 한시를 풀어쓰고 한문 산문을 번역해 내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과 과거의 유산 사이에 작은 다리를 놓는 일이다. 초등학교에서 한자검정시험을 치르는 것이 현실이지만, 한자는 무조건 외워야 할 부담스런 대상이 아니라 옛 글에 스며 있는 양질의 문화 콘텐츠를 끌어내는 도구일 뿐이다.

"한자는 이미 용도폐기된 양식이잖아요, 그걸 배우자는 게 아니라 거기 담긴 내용을 삶의 자양분으로 삼자는 것이 목적이죠. 무명의 아버지가 시집간 딸에게 손으로 일일이 베껴 쓴 소설을 보내주며 맨 마지막에 '아버지 그리울 때 보아라' 하고 남긴 글은 지금 봐도 마음을 움직이거든요. 또 귀양지에서 낡은 치마를 잘라 글과 그림을 그려 보낸 다산 정약용의 일화는 가정교육의 본보기라 할 수 있죠. 그런 글들을 아이들에게 전해줘서 '아, 옛사람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느끼게 하고, 또 부모님들은 그걸 통해 부모의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
한시를 감상할 때는 겉으로 드러나는 내용 이면에 담긴 이야기를 짚어가면서 마음 속에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렇게 마음에 그려지는 그림은 읽는 이가 쌓아온 경험의 폭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한시 읽기의 참맛은 그 그림을 얼마나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지에 달렸다. 한시의 행간에 숨은 이야기를 보물찾기 하듯 하나씩 발견해 가는 과정에서 읽는 이의 통찰력도 자란다고 그는 믿는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를 펴낸 것도 그런 통찰력을 길러주고 싶어서다. 연구실에서 매번 늦게 집으로 들어가는 탓에 딸 마루(16)와 아들 벼리(12)에게 자주 시를 읽어주진 못했지만, 이번 책을 준비하며 한시 구절을 골라 화이트보드에 써 놓고 아이들과 함께 감상하곤 했단다.

그의 책을 보다 보면 문득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예컨대 조선시대 기생 홍랑이 애인 최경창과 이별하며 건넨 한시에서, 왜 홍랑은 가락지 같은 정표 대신 버들가지를 보냈을까? 그 속에는 한번 꺾은 뒤 다시 심으면 뿌리를 내리는 버들가지의 속성에 의탁해 이별 후에도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의미가 담겼기 때문이다. 한편 '버들 유(柳)' 자와 '머물 유(留)' 자의 발음이 같다는 데 착안해 '가지 말고 머물러줘요'하며 붙잡고 싶은 마음도 숨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렇듯 한시를 온전히 느끼려면 단순히 원문 해석만 하기보다는 시를 쓴 사람의 상황, 상징물로 쓰인 사물의 속성, 당시의 문화적 배경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한시와 옛 그림 속에 등장하는 새의 형상을 매개체 삼아 한국문화 읽기를 시도한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효형출판)를 쓰고 있다. 새의 종류에 따라 장수, 다복, 부귀영화 등 상징하는 바가 워낙 다양해 두 권으로 나눠 낼 예정이다. 이제 '그림 읽어주는 아빠'로 맹활약할 정민 씨의 모습을 조만간 서점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듯하다.

사진_박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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