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와 인간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곳은 정말 없을까요? 섬고양이 780여 마리를 살처분으로 제거하려는 거문도 계획을 듣고, 길고양이로 유명한 일본의 작은 섬 다시로지마(田代島)가 떠올랐습니다. 다시로지마(田代島)는 인구 100여명에 불과한 섬이지만, 지속적으로 길고양이와 인간의 공존을 시행해 온 곳입니다. 섬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을 박해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알리면서 쇠락해가는 섬을 되살리고자 한 다시로지마의 사례를 통해, 거문도 길고양이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로지마(田代島)는 도호쿠(東北) 지방 동남부에 위치한 미야기현(宮城県) 이시노마키 시(石巻市)에서 배를 타고 약 1시간 가까이 들어가는 곳에 있습니다. 총 면적 3.14평방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섬으로 2개 마을이 있으며, 인구는 112명(2005년 인구조사자료 근거)의 아담한 섬입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어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데, 한국의 농어촌에서도 대개 그렇듯이, 다시로지마(田代島)에서도 주민들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평균 연령이 71세에 달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쇠락해가는 다시로지마(田代島)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섬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입니다. 이 섬에서는 예로부터 풍어(豊漁)를 기원하는 대상으로 고양이를 소중하게 여겨 왔으며, 섬의 중심에 고양이를 모시는 신사까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고양이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섬 안으로 개를 반입하는 일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천적 없이 살아온 고양이들에게, 육지에서 들어온 개들이 자칫 해를 끼칠 수도 있다고 판단해서입니다.
다시로지마(田代島)에서 길고양이는 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특히 항구 근처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은 섬의 명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민들은 그날 거두어들인 생선 중에서 상품성이 다소 떨어지는 잡어들을 고양이에게 선뜻 나눠주고, 고양이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먹습니다. 그렇다고 섬 주민들이 이 고양이를 애완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아닙니다. 무심한 듯, 같은 공간을 나눠가지면서 함께 살아갈 따름입니다.먹을것조차 구하기 힘든 각박한 환경 속에서 쫓기듯 살아가는 도시 길고양이의 현실과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다시로지마(田代島)를 찾아온 사람들은 이처럼 섬 주민들과 길고양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며, 도시에서 이미 사라진 시골의 인심과 푸근한 정을 느끼고, 마음을 치유받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지와 동떨어진, 외진 곳에 있는 섬이기에 접근성이 떨어지고, 유명 관광지처럼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것도 아닌, 어찌 보면 관광지로서는 적합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모든 불편함을 무릅쓰고도 굳이 섬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역시 길고양이와 인간의 따뜻한 공존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선사받은 물고기를 입에 물고,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가는 길고양이의 발걸음이 가볍다. ⓒTanaka Nobuya
때문에 다시로지마(田代島)는 고양이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알려졌습니다. 도시와는 떨어진 곳이기에 낚싯꾼 아니면 여름방학 철을 맞이한 청소년들의 야영장소로나 활용되는 정도였으나, 후지TV 프로그램의 인기 코너를 DVD로 제작한 'Nyanko THE MOVIE'에 다시로지마(田代島) 고양이들이 소개되면서, 섬도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특히 다시로지마(田代島)의 유명인사 고양이인 ‘축 늘어진 귀, 잭’(たれ耳ジャック)이 주역으로 등장하여, 애묘인들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젖소무늬를 가진 고양이 잭은 한쪽 귀가 항상 축 늘어져 있어서 이런 별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섬에는 잭의 후손들로 추정되는 젖소무늬 고양이를 비롯해, 다양한 생김새의 길고양이가 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07년 가을 미야기현 관광과에서 주최한 관광상품 공모전에서 ‘새로운 관광 아이디어’ 우수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길고양이를 중심으로 이 섬의 특별함을 널리 알리려는 노력은 계속되어, 올해 9월 14일에는 다시로지마(田代島) 길고양이들을 찾아 떠나는 ‘축 늘어진 귀, 잭’ 탐험대가 조직되었습니다. 섬을 방문해 길고양이 사진을 찍고, 조약돌에 고양이 그림을 그려 고양이 신사에 봉납하는 행사에 '탐험대'라는 재미난 명칭을 붙인 것입니다. 출품작 중에서 금 고양이상, 은 고양이상, 동 고양이상을 뽑아, 입상자에게 민박 숙박권, 해산물, 다시로 섬 왕복 배표 등을 선물로 주기로 하는 등, 고양이섬의 특색을 살린 유머러스한 상품이 이채롭습니다.
물론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 다른 지역에 똑같이 대입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엉뚱한 발상이, 세상을 따뜻하게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과 길고양이가 공존하려는 노력이 헛된 꿈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다시로지마(田代島)의 사례는 마음 깊이 새겨둘 만합니다. 다시로지마의 사례에서 참고할 만한 고양이섬의 원동력으로 다음의 몇 가지를 꼽아 봅니다.
1. 역발상의 힘
도심에서는 불청객 취급을 받는 길고양이를 미워하는 대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섬의 남다른 개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인간과 길고양이의 공존을 통해 느껴지는 인정과 푸근한 인심-이러한 고향의 정서는 인위적으로 만들기 어려운 것입니다. 다시로지마(田代島)에서는 현대사회에서 점차 희박해지는 소중한 가치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보여줍니다.
2. 전통의 새로운 계승
고양이섬과 관련된 민담, 고양이 신사 등을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부정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섬 사람들은 이것 역시 섬의 일부이자 소중한 역사로 받아들였습니다. 섬을 찾아온 아이들에게 민담을 들려주는 할머니도 계실 정도입니다. 일본 고유의 특성을 보여주는 전통문화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고, 이를 현대에 계승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3. 간판 고양이의 선전
고양이로 유명한 장소를 찾아가면 대개 그 지역의 '간판 고양이'가 있습니다. ‘축 늘어진 귀, 잭’(たれ耳ジャック)도 그러한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한쪽 귀에 장애가 있는 고양이로 치부하지 않고, 그러한 장애마저 독특한 개성으로 받아들인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이름과 별명을 붙여줌으로써 특유의 캐릭터를 부각시켜, '그 고양이를 만나러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끔 하는 것도 이 섬의 매력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의 힘 아닐까요? 길고양이와 함께사는 삶은 불가능하다고 모두가 고개를 내저을 때, 이렇게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고 제안했던 사람들의 상상력 말이죠. 물론 그 상상력이 단순한 공상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가 되겠지만요.
다음 글에서는 다시로지마를 비롯한 섬고양이들을 주로 찍어 온 일본의 블로거 다나카 노부야 씨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섬 고양이와 인간의 공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눠보고자 합니다.
* 다시로지마(田代島)의 아름다운 풍경을 이 글에 소개하도록 허락해주신 다나카 노부야(田中 伸哉, Tanaka Nobuya) 씨께 감사드립니다. 글에 쓰인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다나카 노부야 씨에게 있습니다.
*'거문도 길고양이 프로젝트'는 한국블로그산업협회에서 후원하는 블로그 지원사업 '블로거!, 네 꿈을 펼쳐라'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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