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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고양이 여행] 한국

한·일 블로거, ‘거문도 길고양이 프로젝트’로 만나다

by 야옹서가 2008. 11. 3.
 

행복한 길고양이섬, 다시로지마(田代島)를 생생히 소개할 수 있었던 데는, 일본의 길고양이 블로거 다나카 노부야 씨의 도움이 컸다. 다시로지마를 다녀온 경험담을 블로그에 쓴 일본 블로거들은 많았지만, 호기심에 한번 다녀온 사람보다, 섬 고양이들에게 애착을 갖고 꾸준히 그들의 삶을 기록해 온 분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야만 섬 고양이들과 공존하는 주민들의 대응 방식에 대해 들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들어가기 전에-거문도 길고양이에 대한 간단한 정보

현재 거문도에는 길고양이 780여 마리 외에도, 주민들이 기르는 집고양이 100여 마리가 살고 있다.(한국고양이보호협회의 질의에 대한, 영산강유역환경청 직원의 답변에 근거함) 이처럼 길고양이와 집고양이가 공존하는 거문도에서, 늘어나는 고양이의 개체 수를 살처분으로 해결하겠다는 인식은 극히 위험하다. 중성화되지 않은 채, 쥐를 잡게끔 풀어 기르는 집고양이는 평소에 집을 떠나지 않더라도 발정기가 오면 상황에 따라 길고양이 무리로 합류할 수 있다. 또한 집고양이가 낳은 새끼들의 문제가 있다. 길고양이만 새끼를 낳고, 집고양이들은 새끼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므로, 집고양이 새끼들이 태어날 때마다 섬 밖으로 입양 보내는 시스템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주민들이 거두지 못하고 방치한 새끼들 역시 길고양이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개체 수 조절에 대한 노력 없이, 되는 대로 태어나는 고양이를 방치하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에서는, 고양이가 늘어나면 “올해에 몇 백 마리 죽이고, 몇 년 뒤에 고양이가 많이 늘어나면 또다시 몇 백 마리 죽이는” 고양이 수난사가 필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한 주민들의 불편 역시 반복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주민들이 고양이들의 살처분을 반복하는 괴로움을 겪지 않으려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조망이 필요한 시점이다.

거문도 길고양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고, 지금 바로 개선하는 것이 어렵다면, 장기적인 계획 하에 거문도 길고양이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길고양이와 집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을 통한 개체 수 조절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면서, 더불어 섬에서 길고양이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 역시 급선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해서 소개하게 된 섬이 일본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 시에 속한 다시로지마(田代島)이다. 다시로지마 주민들이 오랫동안 고양이와 친화적인 삶을 살아온 반면, 거문도는 30여년 전 인위적으로 섬에 고양이를 들여왔다가, 개체 수 조절에 대한 대책 없이 방치하여 오늘날에 이르렀고, 이를 뒤늦게 살처분으로 해결하려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처럼 간극이 큰 다시로지마와 거문도의 역사적 배경 차이를 인지하고 시작한 취재이므로, "다시로지마의 사례가 이러하니, 거문도에서도 똑같이 대입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로 다시로지마를 소개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에이, 일본이니까 가능한 일이지"라고 말하지만, 일본에서도 분명 길고양이로 인한 갈등은 존재한다. 다만, 그런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또한 다시로지마에서 길고양이와 공존하는 삶이 가능하다면,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싶었다. 그렇게 흔치 않은 공존의 노력 덕분에, 다시로지마가 일본 전역에서 유명한 섬이 되었다는 사실 또한 말이다.   
 
섬의 고양이를 찾아 여행하는 일본의 길고양이 블로거
그런 점에서, 다나카 노부야(田中 伸哉) 씨의 블로그 ‘野良猫劇場’는 큰 힘이 되었다. 野良猫란 한국의 '길고양이', 혹은 '도둑고양이'에 해당한다. 블로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블로그는 길고양이의 삶을 정감 어린 사진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다나카 노부야 씨는  1년 반 전부터 섬고양이들의 사진을 찍어 왔다. 스스로 아마추어라고 말하지만, 그의 사진에는 특별함이 있다. 생명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그 사진들을 더욱 생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사진에 담긴 시선을 보면, 길고양이를 단순히 애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비록 거리에서 살아가는 삶이지만, 독립된 생명체로서 열심히 삶을 이어가는 모습에 경외심을 느끼고 이를 기록하려 한 마음이 느껴진다. 특별히 섬의 고양이들에 특별한 애착을 갖는 그의 블로그에는 다시로지마 외에도 여러 곳에 산재한 섬의 고양이들을 찍은 사진들이 담겨 있다. 특히 다시로지마의 경우는 올해와 작년 두 차례에 걸쳐 촬영 여행을 다녀올 만큼 애착을 갖고 있다. 그와 나눈 이메일 인터뷰를 질문/답 형식으로 함께 싣는다.
 

Q: 블로그에서 다시로지마를 두 차례나 갔다 오신 사진들을 보았습니다. 교통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다시 방문할 만큼 이 섬에 매력이 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A: 제 블로그를 보면 아시겠지만, 섬의 고양이를 좋아하고, 실제로도 고양이를 만나기 위해서 이곳저곳의 섬에 가곤 합니다. 특히 다시로지마에 가면, 느긋하게 살아가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무척 마음이 놓이게 됩니다. 다시로지마에서는 고양이를 소중히 하자고 하는 의견 일치가 섬 전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개가 없습니다. 심지어 개를 기를 수 없으며 섬 바깥에서 반입하는 일도 허락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섬에는 고양이를 모신 ‘고양이 신사’가 있습니다. 어업의 신으로서 예부터 고양이가 소중하게 되어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섬에 있는 고양이들이 소중하게 사랑받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다시로지마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섬에서 살고 있는 길고양이를 보면 ‘그 존재가 사람들에게 용인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길고양이를 적대시하거나, 배제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의 입장입니다. 섬의 고양이와 사람이 친숙하게 공존하는 모습에 매우 마음이 끌렸습니다.

                                        장작 더미에서 웅크리고 단잠을 자는 다시로지마 고양이.  ⓒTanaka Nobuya

Q: 섬의 어민들과 길고양이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이들을 싫어하는 분들은 없습니까?
A: 많은 사람이 있으면, 그 안에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시로지마에서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역시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길고양이를 배제하는 방향으로는 결코 진행되지 않습니다. 고양이와 사람이 오랜 역사 속에서 함께 공존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도시와 비교하면 섬의 주민들이 너그럽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소리 높여 개인의 권리를 지나치게 주장하지 않으면, 길고양이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섬에 사는 주민들은, 예를 들면 고양이의 머리를 어루만지거나 하는 식으로(옮긴이 주: 어떤 의미로 보자면 애완동물의 의미로) 지나치게 귀여워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길고양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물고기를 나누어 주면서, 결코 고양이들이 굶주리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부 할아버지가 주는 먹이를 기다리는 고양이들. ⓒTanaka Nobuya

항구 주변에는, 언제나 고양이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어부 아저씨나 아줌마에게 물고기를 얻어 먹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저씨를 둘러싸듯이 모여드는 고양이들.
사람과 고양이가 공존하는 섬에서의, 마음 따뜻해지는 풍경이다.       -다나카 노부야 씨의 메모 중에서

Q: 일본에서 다시로지마 외에 길고양이를 홍보하는 섬이 있습니까? 
A: 고양이를 관광의 대상으로 보는 발상이 조금씩은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다시로지마에서도 결코 관광의 대상으로 길고양이들을 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마음에서 우러나 흥미를 느껴, 스스로 다시로지마를 찾아가게 된다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다시로지마는 관광지로서는 상당히 불편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섬의 고양이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여러 가지로 조사하다 보니, 일본의 섬에는 많은 곳에 길고양이가 살고 있어서, 장소에 따라서는 다시로지마에 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의 고양이가 사는 섬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길고양이를 관광 대상으로 내세우는 섬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항구가 가까운 곳에서 죽은 사마귀를 갖고 노는 길고양이의 모습이 여유롭다. ⓒTanaka Nobuya

Q: 최근 한국에서는 거문도에 서식하는 길고양이 780여 마리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섬의 고양이가 대대적으로 문제시되었던 적이 있습니까?

A: 일본에서는, 오히려 도시의 길고양이가 있는 곳 쪽이 문제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안락사를 당하는 고양이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Q: 일본에서도 길고양이에 대해 찬성 입장과 반대 입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를 설득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A: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과 고양이를 보호하려고 하는 사람의 사이에는 대화가 성립하기 어려운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논의가 많아지더라도 평행선을 더듬을 뿐··그렇다고 하는 인상입니다.

절충안으로서 고양이를 보호하려는 사람이 자기 부담으로(혹은 자치체의 보조가 있는 지역도 있습니다만··), 고양이의 피임·거세를 실시해, 지금 있는 고양이의 세대에서 끝내는 대신에, 지금 생존하는 고양이의 존재를, 고양이가 싫은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또, 살아있는 길고양이들의 생명을 지키려고 착실하게 활동하는 사람도 있으며, 먹이를 정기적으로 주고 있는 아저씨나, 아줌마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저씨, 아줌마도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눈에 거슬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철없다고 불리거나 심술궂은 취급을 당하지 않기 위해, 숨어서 길고양이에 먹이를 주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다나카 노부야 씨의 길고양이 사진에는 소외된 생명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길고양이를 요괴나 흉물처럼 묘사하는 사진들과는 관점이 다른, 따뜻한 사진들이다. ⓒTanaka Nobu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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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일본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길고양이로 인한 갈등이 존재한다. 단순히 "일본이니까 가능한 일이지"하고 넘겨버릴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갈등은 존재하지만, 그 갈등을 서로의 양해 하에 해결하려 노력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이미 태어난 길고양이들을 다 죽일 수는 없으니, 지금 고양이의 세대에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중성화 수술을 거쳐 개체 수 증가를 막고,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로지마의 길고양이를 만나러 가는 건, 인간이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을 구경하듯, 고양이를 구경거리 삼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야생동물 사파리 관광'을 하듯이 길고양이를 보러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한 관점은 고양이를 쥐 잡는 도구로 취급하는 것만큼이나, 또다시 길고양이를 객체화시킨다. 다시로지마 사람들이 길고양이와 공존하는 모습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길고양이의 삶을 존중하고 공존하고자 하는 섬 사람들의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다시로지마의 사례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그 진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불러모은다. 

결국 도시 사람들이 이 섬에서 보고 싶어하는 모습은 '길고양이와 섬 사람들이 따뜻하게 공존하는 삶' 자체인 것이다. 단순히 길고양이만 보려는 것이라면, 도시 주변에도 널린 동물이 길고양이인데, 굳이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섬까지 올 일이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도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포용의 정신,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평화로운 공존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소망이, 떨어지는 접근성과 불편한 입지 조건에도 불구하고 다시로지마로 사람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블로그를 통해 사진을 보아오기는 했지만, 다나카 노부야 씨에게 직접 연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낯선 블로거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국의 블로거에게서 온 갑작스런 연락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한국 길고양이의 목숨을 구하는데 다시로지마의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면, 선뜻 돕겠다"고 회신을 보내 왔다. 덕분에 1차로 다시로지마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다나카 노부야 씨의 사진을 소개하는 것을 허락받아 게재하였고, 다나카 노부야 씨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섬 고양이를 바라보는 일본 블로거의 시각을 소개할 수 있었다.  

길고양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세계의 길고양이 블로거들과 연대하는 꿈을 꾸곤 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길고양이 블로그를 보면서도, 사진만 보고 올 뿐 적극적으로 말을 건네지는 못했었다. 한데 이번 '거문도 길고양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그 꿈의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블로그라는 매개체를 통해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좀 더 나은 대안을 찾아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길고양이 블로그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다음 주에 업데이트할 글에서는 거문도 현장 답사기를 전하면서, 현재의 거문도 길고양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이를 위해 필요한 준비는 무엇일지 고민해보려 한다. 거문도 길고양이 프로젝트 관련 글은 매주 월요일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고경원, 길고양이 블로거(catstory.kr)

*'거문도 길고양이 프로젝트'는 한국블로그산업협회에서 후원하는 블로그 지원사업 '블로거!, 네 꿈을 펼쳐라'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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