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부터 '거문도 길고양이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도살처분 위기에 놓인 거문도 길고양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은, 단순히 길고양이의 생명권에 대한 언급만으로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간 조사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서, 순차적으로 거문도 현장조사를 병행하여 길고양이와 인간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런 삶은 과연 불가능한지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하려 합니다.
마침 한국블로그산업협회에서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후원하는 “블로거, 네 꿈을 펼쳐라!” 제안공모에 길고양이를 위한 프로젝트가 선정되어,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블로그를 통한 취재, 연구, 조사 등 독창적인 콘텐츠 작성에 50~200만원 사이의 지원금을 지원하는데, 이번 프로젝트에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소요액 중 상당 금액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모자라는 금액은 사비를 털어서 채워넣어야겠지만, 이것만으로도 많은 힘이 됩니다. 지원금 못지 않게 힘이 되는 건, 길고양이를 '죽여 없애도 괜찮은, 하찮은 것들'로 보지 않는 분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일단 거문도 길고양이들에 대한 경과 보고를 하겠습니다. 거문도 길고양이에 대한 첫 번째 글(10월 11일 작성)을 쓰고 나서 불과 며칠도 지나지 않아 거문도 길고양이들의 포획/도살이 시작되었습니다. 10월 16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 지난 14, 15일 포획을 시작하여 25마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잡힌 25마리의 고양이들은 모두 도살처분되었습니다.
10월 5일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측이 시행한 현지조사에서는 "거문도 동도리 유촌마을, 죽촌마을에 고양이 300여 마리"가 확인되었다는데, 이는 이전까지 알려진 780마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입니다. 이에 반해 거문도 주민들은 1천마리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진 채증 등으로 고양이의 정확한 인상착의를 확인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 본 이놈'이 '아까 본 그놈'인지 아닌지 정확히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 맞든 간에, 섬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많은 길고양이들이 사는 것은 사실이고, 그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는 고민해봐야 하겠지요.
참고로 10월 19일자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올해 거문도 길고양이를 도살처분하기 위해 책정한 예산이 280만원인데, 이를 이번 25마리 살처분에 다 소진했다고 합니다. 280만원을 25로 나누면, 1마리를 포획하여 도살처분하는 데 11.2만원이 들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서울시에서 시행중인 TNR(길고양이 포획-중성화수술-방사) 비용인 11만원과 동일한 수준입니다. 단순히 산술적 수치만 비교해도, 포획 후 도살 처분이 TNR보다 비용절감 면에서 특별히 우월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또한 길고양이 도살 처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이미 8년 전 같은 방법으로 50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죽은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 과연 살처분이 해법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주민들이 기르고 있다는 집고양이 100여 마리가 있고, 이 고양이들이 대부분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새끼를 낳을 것이고,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풀어놓고 기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존하는 길고양이들을 모조리 잡아죽인다 해서 절대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저번 글에도 밝혔지만 거문도에서는 길고양이의 개체수 조절을 위한 중성화수술 뿐 아니라, 집고양이에게도 역시 중성화 수술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몇 년 뒤에 반드시 이런 상황이 재연될 테니까요. 그리고 그때 죽게 될 고양이들은, 이번 살처분에서 요행히 살아남은 길고양이의 후손뿐 아니라, 주민들이 미처 거두지 못해 떠돌이 신세가 된 고양이일 것입니다.
거문도 길고양이 살처분이 전격 시행된 상황에서 어떤 것을 우선순위에 놓고 움직여야 할지, 고민이 됐습니다. 거문도에 먼저 가봐야하나, 아니면 대안사례로 소개하려던 고양이섬에 대한 자료조사를 하고 글을 쓰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하나. 한데 거문도 길고양이에 대한 도살처분은, 추가예산이 편성되지 않는 한 올해에는 유보될 것 같습니다. 이미 예산 280만원을 다 썼다고 하니까요. 물론 이것으로 끝은 아니고 내년에도 다시 예산을 책정하여 시행한다지만, 살처분이 유보된 현 상황에서 내년 길고양이 정책에 참고할 수 있는 사례 제시가 시급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해서 길고양이 섬에 대한 글을 먼저 보내려 합니다. 거문도에도 조만간 방문하여 현지 상황을 살펴보고 추가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지지난주에 예고했던 길고양이 섬에 대한 소개글은 이번 주말에 올릴 예정이었지만, 주목도가 떨어지는 주말 오후보다 월요일 오전에 송고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으로 미루었습니다. 내일 오전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거문도 길고양이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프롤로그 형식의 글이어서 짤막하게 쓰려 했는데 본의아니게 길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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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고양이만 불쌍하고, 다른 동물들 죽는 건 안 불쌍하냐"고 하시는 분들께
저는 한 개인이 모든 생명을 다 보살필 수 없다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또 도와주고 싶은 동물을 하나라도 정해서 돕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며 실천 가능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어떤 대상에 쏟아부을 수 있는 노력의 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하는 편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동물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혼자 힘으로는 쟤들을 모두 도울 수 없어!" 하면서 좌절하거나,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방관하는 것보다 생산적이지 않나요. 또 제가 직접적으로 돌볼 수 없는 다른 동물들에 대해서는, 2003년부터 환경단체에 매달 회비를 내는 것으로 간접 지원하고 있습니다. 정말 미미한 금액이지만, 그 돈이 조금이라도 다른 동물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단체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요.
기왕이면, 제 글을 보고 다른 동물들의 사례가 떠올라 그 사례들을 일일이 검색해서 제시할 만큼의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신 분들이, 이후로도 그 관심을 그 동물들을 위해 쏟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나는 길고양이를 왜 살려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이야기한 동물들을 위한 보호활동을 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충분히 존중해드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그런 활동을 할 마음도 없으면서,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사례로 인용한 것이라면...더 드릴 말씀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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