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틀샘터/ 2001. 4.]실물과 꼭 닮은 그림을 보면, 우리는 흔히 “와, 사진같이 그렸네.”라는 표현을 쓰곤 하죠. 호암갤러리에서 4월 29일까지 열리는 '사실과 환영:극사실 회화의 세계'전에서 이런 반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원근법의 도입과 유화 물감의 발명 이후, 평면 위에 재현되는 3차원적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사실주의적 회화가 아무리 대상의 재현에 충실하다 해도 미세한 빛의 변화나 사물의 움직임을 그대로 담아내는 건 불가능했던 반면, 극사실주의 회화는 일차적으로 작가가 대상을 촬영하고, 그 사진을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이용해서 캔버스에 비추면서 확대된 크기대로 옮겨 그리거나, 혹은 사진을 촘촘한 모눈으로 나누어서 기계적인 확대를 하는 방식으로 제작됩니다. 그래서인지, 완성된 그들의 그림을 보면 스트레이트 사진의 속성과 유사함을 느끼게 되죠.

먼저 미국 극사실주의 회화에 대한 감상을 표현하자면, 잘 그렸다는 느낌 이전에 ‘황량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지극히 사실적인 그림들이기는 하지만, 생생하다는 표현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박제된 거대한 동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림 속의 주인공은 사물이 주를 이룹니다. 랠프 고잉스가 그린 일련의 트럭 그림이나, 톰 블랙웰이 즐겨 그렸던 오토바이, 찰스 벨의 껌 자판기, 로버트 커팅햄의 간판 그림처럼 말이죠.

그림에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관람자가 그림 속에 묘사된 대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보다 사물의 부가 가치를 중요시하는 산업 사회의 물신 숭배를 풍자하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1985년에 제작된 리처드 에스테스의 그림 <타임스 광장, 오후 3시 53분, 겨울>은 박제된 시간의 황량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1층 전시실 중간과 2층 전시실에는 서정찬, 이석주, 조상현, 변종곤, 김홍주, 송윤희, 김종학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이어집니다. 미국의 극사실주의 회화가 화면의 마무리를 평평하고 매끈하게 처리해, 마치 사진을 거대하게 확대해 놓은 듯한 느낌을 더하는데 비해, 한국 작가들은 질감의 표현에서 좀 더 다원화된 모습을 보입니다.

예컨대 김창영의 모래밭 그림이나 김강용의 벽돌 그림처럼, 실물같은 느낌을 내기 위해서 캔버스에 모래를 바른다거나, 혹은 고영훈의 <돌 책>에서 배경으로 책의 낱장을 잘라 붙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데, 나란히 늘어서 있는 종이 위에 돌 조각이 가볍게 떠 있는 화면 구성으로 초현실적인 느낌도 강합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미국 작가들의 경우 묘사된 사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어 객관성이 두드러지는 반면, 한국 작가들의 경우에는 그런 경향과 더불어 사물을 아주 가까이에서 포착한다거나, 혹은 배경을 간략하게 처리해서 미니멀한 추상 회화와 같은 인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극사실주의 회화를 표방하고 나섰을 때 반발했던 대상과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있다는 점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가죽 소파의 단추 부분을 크게 확대해서 그린 지석철의 그림 <반작용>이나 돌의 표면을 묘사한 고영훈의 그림에서 그런 특징이 잘 나타납니다.

극사실주의는 1960년대 추상표현주의의 예술지상적 경향에 반기를 든 팝아트의 연장선에서 해석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것이 1970년대 한국 화단에 도입되면서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이를테면 '원조집'과 '전수받은 집'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어 흥미로운 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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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틀샘터/ 2001년 1월]
장욱진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가족, 집, 나무, 해와 달, 가축들의 형태는 아이들이 그린 듯, 쓱 칠하고 그린 붓질로 이뤄져 있어 `예술이라면 뭔가 난해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하고 긴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심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덩치가 작고, 묘사가 단순하다고 그의 그림을 가벼이 평가할 수는 없겠지요. 세계를 손바닥만 한 종이 위에 눌러 담았다고 했을 때, 그 압축된 세계의 밀도라는 건 아마 1:1의 비율로 그린 그림보다 더 크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장욱진이 작은 그림을 고집한 것도 아마 그러한 밀도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첫 번째로 소개할 그림은 장욱진이 종군화가로 활동했던 1951년의 `자화상`입니다. 뒤에 소개될 그림 대부분에서 등장하는 가족이나 집의 모습도 이 작품 속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길동무는 검은 개 한 마리뿐이고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전업 작가로 걸어온 길과, 또 가야할 앞으로의 먼 길...... 인적 없는 황금 들판 사이로 난 황톳길을 따라 걷고 있는 작가의 모습은, 지친 다리를 쉬며 한숨 돌리는 것 같기도 하고, 끊어진 길 앞에 망연자실 서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연미복을 입고 실크햇과 우산을 손에 들고, 붉은 길 위에 서 있는 당당한 모습 뒤로 쓸쓸함이 엿보입니다.

그래도 길이 끝나는 곳에는 늘 작가를 기다려주는 풍경이 있었습니다. 마을 한 가운데 서 있는 둥글고 푸른 나무, 그 위에 까딱거리고 있는 까치, 신비롭게 공존하는 해와 달, 어슬렁거리는 엄마 소와 아기 소, 촐랑거리며 뛰노는 강아지, 그리고 그 익숙한 풍경 사이에 드문드문 서 있는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이들은 언뜻 보기에는 자유분방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 같지만, 각 요소간의 균형이 세심하게 계산되어 미묘한 대칭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77년의 작품 `나무와 까치`를 예로 들면, 흰 나무를 중심으로 화면이 좌우 대칭을 이룹니다. 왼편 하늘에는 붉은 해, 오른편 하늘에는 푸른 달이 떠 있는 것이 그러하고, 화면 아래 왼쪽의 정자와 오른쪽의 원두막이 서로 짝을 이루는 것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칭성은 다른 작품에서도 거의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으로, `서로 다르지만 한 쌍인 것`을 병존시키며 작은 화폭 안에 세계를 축약해서 담게 되는 것이죠.

또한 장욱진의 그림 속에서 유독 집이라는 소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전업 작가로 생활하면서 경제적인 면에서는 변변한 가장 노릇을 할 수 없었던 작가가, 비록 그림이긴 하지만 가족들을 위해 아기자기한 정경이 있는 집을 만들어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집 속의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이 집 그림을 그릴 때 그러하듯, 벽이 없는 저 너머에서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앉아있는데, 간혹 벽을 그릴 때면 꼭 문 앞에 사람들을 모아놓아 빈집이 아님을 확인시키는 듯한 모습도 특이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유작이 된 1990년 작품 `밤과 노인`을 보면, 어두운 언덕 위에 쓸쓸히 서 있는 텅 빈 집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승천하는 듯 지면에서 떠오른 노인과, 놀란 듯 입을 크게 벌리고 달려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아마도 작가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게 아닐까요.

그의 작품 중 194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초까지의 작품들은 앞에 소개한 `자화상`의 경우처럼 다소 두터운 질감으로 마무리한 것이 눈에 띄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물감을 기름에 엷게 풀어 채색하는 기법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유화 물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담백한 표현 기법을 통해 토속적인 정경을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묘사한 장욱진의 그림을 보다보면, 잔잔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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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샘터' 웹진 www.isamtoh.com / 2001. 1]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2001년 1월 25일까지 열리는 ‘이인성 작고 50주기 회고전’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이인성(1912~1950)은 인상주의 화풍을 한국인의 시각으로 탁월히 소화해낸 작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1950년 불의의 총기 오발 사고로 사망하면서 작품 세계가 묻혀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1972년 서울화랑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로, 작품 95점과 당시의 보도자료ㆍ사진ㆍ유품 등이 전시돼, 이인성의 그림과 삶의 궤적을 조망했습니다.

1912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인성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11세에 오늘날의 초등학교 격인 수창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데다, 보통학교 졸업 후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대의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두 차례 입선하고 20세에는 특선을 수상한 그의 자질을 눈여겨본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떠납니다.

낮에는 도쿄의 오오사마 상회에서 일하고, 밤에는 태평양미술학교 야간부에서 그림 공부를 하면서 본격적인 근대 미술 수업을 받게 되지요. 이후 이인성은 일본과 한국에서 잇단 수상 소식을 전하며 1937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 추천 작가가 되는 등 작가적 위상을 굳혔습니다. 그의 왕성한 창작 활동은, 당시 가장 권위 있는 미술제전인 조선미술전람회에 1929년부터 1944년까지 한해도 빠짐없이 출품한 것에서 확인됩니다.

대개 수채화는 종이에 그려지는 것이 보편적인데, 전시된 그림 중에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것도 있어 이채롭습니다. 1934년 작품 ‘여름 실내에서’를 보면 이인성의 작가적 역량을 확인하게 됩니다. 보통 수채화 하면 물의 번짐을 이용한 투명하고 가벼운 효과를 떠올리게 되지만, 그의 불투명 수채화는 엷게 그린 유화로 착각할 만큼 견고한 느낌을 줍니다.

이 그림은 인상주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빛에 대한 관심과 야수파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색채가 돋보입니다. 캔버스 천의 툭툭한 질감 위로 살짝 스며든 물감은 가로 방향의 터치가 살아있어 생동감이 넘치며, 정원이 내다보이는 창 넓은 거실에 놓여진 테이블과 이국적인 식물들은 서양식의 입식 거실을 묘사하고 있어 작가의 서구 지향적 취향을 반영합니다. 이인성은 고딕 풍의 신식 건물들 또한 즐겨 그렸는데, 1930년대 중반에 제작된 수채화 ‘계산동 성당’은 그 예라고 하겠습니다.

뒤이어 나열되는 정물화나 풍경화 역시, 서양 근대 미술 작가 중 하나의 작품을 갖다놓은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근대 미술의 여러 경향을 무리없이 소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작품이 제작된 1930년대 한국 사회가 그다지 풍요롭지만은 않은 시절이었음을 감안할 때, 일반 대중의 삶과 유리된 지나치게 화려한 삶을 묘사하는 작품들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1934년의 작품 ‘가을 어느날’까지만 해도 여인의 옷차림새나 등장하는 식물들의 모습에서 ‘서구인의 시각으로 각색된 한국’이라는 인상이 짙지만, 마지막으로 그가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했던 1944년의 역작 ‘해당화’는, 불의의 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작가가 다다랐을 향토성의 본질을 짐작케 하는 작품입니다. 해당화가 핀 바닷가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는 세 여인의 모습은 연출된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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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샘터' 웹진 www.isamtoh.com / 2000. 12]   예술의 도시 파리에는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세느강을 가운데 두고 세계적인 미술관 두 개가 마주 서 있습니다. 하나는 그 유명한 루브르 미술관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오르세 미술관입니다. 루브르 미술관은 르네상스와 고전주의ㆍ로코코 양식 건축물로서 고대 유물부터 18세기까지의 미술 작품을 소장ㆍ전시하고 있고, 오르세 미술관은 19세기 말에 지어진 건축물로서 소장 예술품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대표하는 작품들입니다. 두 미술관의 소장품과 건물 자체가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품인 셈이어서 두 미술관의 의미와 가치는 더욱 커 보입니다.

특히 오르세미술관은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을 잇는 사실주의, 상징주의, 그리고 인상주의 작품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어 '19세기 미술관'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립니다. 2001년 2월 27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오르세 미술관 한국전-인상파와 근대 미술’ 전에서는 회화 35점, 드로잉 13점, 사진 21점 및 미술관 모형 1점 등 오르세미술관 소장품 70점을 국내 최초로 소개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은 원래 기차역과 호텔의 용도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멀티플렉스 건물이라고나 할까요. 이 건물은 1878년 파리국립미술학교 건축학 교수 빅토르 랄루(Victor Laloux)가 설계해,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맞춰 개장했습니다. 1939년에 폐쇄됐으나, 1986년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에 의해 현재의 미술관 형태로 변신하였습니다. 19세기의 건축물을 원형과 거의 흡사한 수준으로 복원해 당시 건축 양식에 대한 생생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옛 건물들이 효율성 추구라는 명목 아래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지요.

제1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군요. 인상주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빛과 색채의 관계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빛으로 그린 사람’이란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르누아르의 그림으로 전시를 여는 것은 적절한 선택인 듯 합니다.

르누아르의 그림 뒤로는 작가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있습니다. 정면을 보고 있는 사진도 몇 있지만, 대부분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을 왼편 45도 각도로 올려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중에는 저명한 사진가 펠릭스 나다르(Felix Nadar, 1820~1910)가 촬영한 작품도 있어, 그의 솜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뒤로 에드가 드가의 ‘발레 연습’이나 클로드 모네의 ‘생-라자르 기차역’, 에두아르 마네의 '로슈포르의 탈출'과 같은, 인지도가 비교적 높은 작가의 작품들과 알프레드 시슬레의 ‘루브시엔 설경’, 까미유 코로의 ‘물가의 버드나무’, 그리고 귀스타브 쿠르베의 사실주의적 작품 '샘' 등이 눈에 띕니다.

아,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았음직한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 1814~1875)의 ‘이삭줍기’를 빼놓을 수 없지요. 소형 복제 그림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부분을 자세히 보면서 예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전엔 그냥 농촌의 정경을 그린 차분한 그림으로 생각했는데, 큰 그림으로 보니 지평선 근처에 보이는 풍성한 수확을 거둔 사람들의 무리와, 추수가 끝난 뒤의 황량한 들판에서 떨어진 이삭을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세 아낙의 모습이 뚜렷한 대조를 이루더군요. 비록 전면에 배치된 세 아낙의 형상이 화면의 거의 전체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풍요로운 사람들의 모습과 대조되면서 그들의 쓸쓸함이랄까, 삶의 고단함이 더욱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2전시실에 전시된 그림들은 전체적으로 크기가 작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폴 세잔느의 그림들은 “자연은 원통, 원뿔, 원추로 되어있다.”라고 표현한 그의 말처럼 작은 색면을 쌓아올리면서 입체적인 형태를 표현하는 견고한 면 처리라든가, ‘바구니가 있는 정물’에서 보이는 다중시점 화법이 눈길을 끕니다.

그밖에 빈센트 반 고흐의 ‘생 레미의 생 폴 정신병원’, 조르쥬 쇠라의 ‘푸른 옷의 농촌 아이’, 툴루즈 로트렉의 ‘사창가의 여인’ 등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띄지만 그들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은 전시되지 않았고 그나마 한 점씩 뿐이라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또 전시장 거의 끝 부분의 파리 만국박람회 때의 사진들은 100년 전의 파리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였지만, 전반적으로 사진의 크기가 작아서 보기에는 좀 힘들었구요.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술사 책을 읽거나 작가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림의 맥락을 읽는 눈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림에 대한 앎이 피상적인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원작을 직접 보면서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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