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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스밀라의 거울공주 놀이 깊은 밤, 책꽂이 동산 위에 올라 발아래를 그윽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스밀라입니다. 저 위에 있으면 아주 작은 스밀라도 무척 키가 커집니다. 높은 곳에 있어서 한층 더 커진 스밀라의 자신감이,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밑에서 올려다보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저 위에서 저를 내려다보는 고양이의 모습은 마치 세상의 이치를 모두 알고 있는 현자 같습니다. 어두운 밤이 되면 이 자리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보게 됩니다. 회색빛 거울 속에는 또 다른 스밀라가 있습니다. 스밀라의 시선은 아득하게 창 건너편, 제 방 안쪽의 어딘가를 향하지만 거울 속의 다른 고양이가 그런 스밀라를 마주봅니다. 이제 책꽂이 캣타워 위에서 스밀라의 거울공주 놀이를 볼 시간도 그리 많이.. 2011. 8. 21.
놀아달라는 스밀라의 표정 연기 원래 쓰지 않고 치워두었던 TV장 자리에 놓았던 고가구인데, 짐을 싸면서 걸리적거려 나란히 붙여서 창가 쪽에 놓아두니, 스밀라가 냉큼 올라가 좋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세로로 길게 놓았던 때와 달리 양 옆으로 넓어진 바람에, 예전보다 더 눕기 편한 캣타워가 되었네요. 스밀라의 표정이 "이건 내 거야!"하고 주장하는 듯 심각합니다. 하지만 자기 땅으로 차지했다 해서 마낭 좋기만 한 건 아니지요. 내 것이 된 그 자리에서, 함께 놀아줄 사람이 있어야 더 즐거워지는 것이니까요.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성채는 내 것이어도 쓸쓸할 테니까요. 급기야 '고개 갸우뚱' 기술을 선보이며 무언의 압박을 합니다. '나 심심한데...안 놀아줄 거야?' 하는 표정이라는 걸 알지요. 처음에만 열광하고 한동안 심드렁했던 털뭉치 장.. 2011. 8. 14.
이사를 앞두고도 한가로운 고양이 마음 이사를 준비할 시간이 주말밖에 없는지라 마음이 바빠집니다. 생각해보니 1997년 여름 이 동네로 이사와서 14년을 쭉 살았네요. 중간에 한번 다른 동으로 이사가긴 했지만 내내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으니까요. 이 집에서 산 지는 올해로 6년째로 접어듭니다. 스밀라도 이곳에서 처음 맞이하게 되었으니 스밀라에게는 첫 집의 기억이 담긴 곳인데, 아직 곳곳에 스밀라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다른 곳으로 떠나려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드네요. 십수 년간 쌓인 살림이 한가득이라 정리가 쉽지 않습니다. 제 생각엔 이것도 저것도 버리고 가면 좋겠는데 며칠째 버리기 작업에 진전이 없네요. 거실 구석에 놓아두었던 장식장을 꺼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합니다. 어머니는 버리지 않는다고 하시고, 이걸 또 다른 집으로 갖고 갈 걸 생각하니.. 2011. 7. 31.
고양이의 한여름 숨바꼭질 가끔 잘 놀던 고양이가 안 보일 때가 있습니다. 스밀라 때문에 문단속을 철저히 하기도 하고, 또 스밀라가 겁이 많다보니 현관으로 데리고 나가는 시늉만 해도 발톱을 내밀며 뛰어내리는지라 밖으로 나갔을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안 보이면 어디 있는지는 확인해야 마음이 놓여서 여기저기 찾아봅니다. 스밀라 은신처로 가장 유력한 곳은 최근에 들어온 물건 근처일 확률이 큽니다. 10월에 있을 이사 준비를 하느라 깨끗한 종이박스를 틈틈이 주워놓고 있는데, 그 상자 중 하나에 희끗한 털뭉치가 보입니다. 스밀라입니다. 자다 일어났는지 게슴츠레한 눈은 아직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응? 웬 소란이냐옹~" 근엄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어 상자 밖을 관찰하는 스밀라입니다. 몸에 딱 맞는 크기의 상자가 좋았는지, 고.. 2011. 7. 30.
가죽부대처럼 늘어진 마음 매월 3~4주는 잡지 마감 때문에 한참 정신이 없습니다. 이번 달 마감하는 도중에 갑자기 선배 기자 한 분이 다른 팀으로 차출되면서 마음이 무겁네요. 단순히 사람 한 명 빠지는 거라고 치부하기에는 아쉬운, 헛헛한 마음이 듭니다. 월요일 출근해서 막 인쇄된 견본 잡지를 받아놓고 나니, 이제야 한숨 돌립니다. 그나마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9월호 기획을 준비해야 되네요. 부쩍 덥고 습한 날씨에 몸도 축축, 마음도 축축 늘어지는 때, 스밀라도 털북숭이 가죽부대가 되어 늘어져 있습니다. 스밀라 소식, 길고양이 소식 전해야 하는데 마음에 여유가 없다보니 글에도 칭얼칭얼, 투덜투덜 무거운 이야기만 담길 것 같아 스밀라를 쓰다듬 쓰다듬하며 지냈습니다. 얼른 이 여름이 지나가서 날도 서늘해지고 폭염에 몸과 마음이.. 2011. 7. 26.
사진 찍을 때 '고양이 키스' 받은 이유 베란다에는 스밀라의 지정석이 있습니다. 층층이 쌓아 둔 공간정리함 2층, 적당히 높아 거실에 앉아 있는 가족들과 눈맞춤을 할 수 있고 또 제 방을 몰래 엿볼 수도 있는 명당자리가 이곳입니다. 가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멀리서 스밀라가 제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것일까, 알 수 없습니다. 제 방을 염탐하는 스밀라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해서 베란다로 나와보면, 저렇게 고개를 쭉 빼고 안쪽을 기웃거리는 모습입니다. 사람이 곁에 있어도 늘 그리운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스밀라의 옆모습에 빠져듭니다. 동그랗게 뜬 눈을 찍으려고 했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면 자꾸만 실눈을 감는 스밀라. 자꾸만 꿈뻑꿈뻑 실눈을 감는 모습에, 처음에는 '사진 찍는 게 귀찮아서 그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2011. 7. 10.